[2016.08.21] 용서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의 열매입니다(사무엘하19:11-23)

용서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의 열매입니다.

(사무엘하19:11-23)

담임목사 장 원규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하고 있는 임자도라는 섬에 우리 교단 교회인 진리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6.25전쟁 때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이판일 장로와 그 식구 13명 그리고 성도 48명이 순교한 당합니다. 당시 목포에 살고 있던 이판일 장로의 장남인 이인재씨가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이곳에 왔다가 죽음 당한 아버지와 식구들을 보고 자신도 여기서 죽어야 하는가 고민하던 중 아버지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원수를 사랑으로 갚으라.” 그 순간 살아남아야겠다는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자도에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죽은 사람들을 수습하기 위해 해군이 이 섬에 진입하였는데 해군은 당시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기 위한 참관인으로 이판일 장로의 큰 아들인 이인재 씨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이인재씨는 마을을 돌며 태극기가 붙어 있는 완장을 나누어주었는데 그 완장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인재씨는 자신의 아버지와 가족을 죽인 공산주의자들에게 태극기 완장을 나누어주어 그들을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그 계기로 온 동네가 부흥의 불이 일어나 마을 전체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좌익에 있던 사람들도 대부분이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용서가 얼마나 놀라운 일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예입니다. 용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아주 중요한 성품 중 하나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통해 비롯되는 열매입니다.

사무엘하 19장은 압살롬이 죽고 다윗이 다시 환궁하는 과정에서 다윗에게 반기를 들었거나 또는 저주한 아마사와 시므이라는 두 인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분명 다윗이 복수를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들을 복수를 하지 않고 용서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이 사건을 기록하신 이유는 다윗을 비롯하여 이 세상을 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정확히 알려주고 싶으신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이 다윗과 같은 긍휼의 마음을 회복하여 악한 세상을 용서와 사랑의 세상으로 변화시켜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세상을 구원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 아래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동안 반드시 회복해야 할 성품 하나가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 혈통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시고 인간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긍휼은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 긍휼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약2:13)

    이 말은 남에게 용서를 베풀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만일 용서하지 않는다면 나도 용서 대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도 어떻게 긍휼의 성품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용서의 동기를 나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용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4장32절입니다.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용서의 기준은 언제나 하나님과 주님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용서하심과 같이 하나님이 용서하셨기 때문에 나 또한 다른 모든 사람을 용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용서의 동기는 오직 하나님께 있고,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절대적 기준에서 인간간의 모든 용서는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온 세상은 긍휼의 마음이 말라버렸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도, 민족과 국가 간에 긍휼의 마음이 말라버렸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계층 간에, 사람과 사람 간에, 가족 간에, 교인들 간에 끝임없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원수 맺는 일들로 인해 세상은 온통 죽고 죽이는 고통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닿는 곳마다 화합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갈등의 혼란한 삶에서 하나 됨과 자유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시기와 반목의 현장이 용서와 사랑으로 불같이 일어나 새로운 변화의 아름다운 일들이 우리 삶의 주변에 일어나게 될 것을 말입니다.

용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쉬운 일이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용서는 어렵습니다. 용서는 힘든 것이지만 용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로 서로 용서할 때 세상은 생명을 살리는 부흥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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赦しは神様のあわれみを受けた者の実です。

 

全羅南道新安郡(チョンラナンド,シンアンクン)に位置している荏子島(イムザト)と呼ばれる島に私たちの教団の教会である真理教会があります。この教会は朝鮮戦争時に共産主義者によってイ・パンイル長老とその家族13人と信徒48人が殉教しました。当時木浦に住んでいたイ・パンイル長老の長男であるイ・インジェさんがお父さんのことが心配になって、荏子島に来て亡くなった父と家族を見て、自分もここで死ぬべきか悩んでいる時、父の声が聞こえました。 「愛する息子よ、敵を愛で報いなさい。」

その瞬間生き残るという力を得たといいます。そして、荏子島には共産主義者による死者を収拾するために海軍がこの島に進入していましたが、海軍は当時共産主義者を探し出すためにイ・パンイル長老の長男であるイ・インジェさんを参観人として選びました。イ・インジェさんは町を回って太極旗が付いている腕章を配りました。その腕章によって生死が分かれる状況が起こったのです。ところが、イ・インジェさんは自分の父親と家族を殺した共産主義者に太極旗の腕章を配って、それらを生かしてあげたのです。それをきっかけにその町に復興の火が起きて、町全体がイエス様を信じるようになりました。さらに左翼にいた人々のほとんどもイエス様を信じる働きが起こりました。

一人の赦しがどれほど素晴らしい働きを作り出したのかを示す非常に重要な例です。 赦しはクリスチャンが備えるべき非常に重要な気立ての一つです。真の赦しは神様のあわれみによる実です。

    サムエル記第二19はアブシャロムが死んで、ダビデが再び還宮する過程で、ダビデに反旗を挙げ、または呪詛したアマサとシムイという二人の人物を紹介しています。彼らは明らかにダビデが復讐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人々です。ところが、ダビデは彼らに復讐をせずに赦します。

神様が聖書にこの事件を記録した理由は、ダビデを始め、神様の人々への神様のみ心と思いを正確に知らせたいだけでなく、神様のすべての人がダビデのようなあわれみの心を回復して、邪悪な世界を赦しと愛の世界に変化させることを願われているためです。世界に向けた神様のご計画は世界を救うこと、すべての人が神様のあわれみによって罪の赦しを受けて、神様の完全な支配下にとどまることです。そして、神様に哀れまれた神様の人々が世界のすべての人々を哀れみ、神様の恵みを受けさせ救いに至るようにすることです。

神様の人々が生きている間必ず回復しなければならない気立ての中の一つが神様のあわれみです。ダビデは神様に哀れまれた人生がどうあるべきかを見せてくれた代表的な人でした。その血統で世の中に来られたイエス・キリストは神様のあわれみです。神様のあわれみは、イエス様が十字架で亡くなられ、人のすべての罪を許したのです。十字架の恵みで救われたクリスチャンの特徴はあわれみですべての人々を許すことです。ヤコブ使徒はこのあわれみがどれだけ重要な問題であるかをこのように述べています。

「あわれみを示したことのない者に対するさばきは、あわれみのないさばきです。あわれみは、さばきに向かって勝ち誇るのです。」(ヤコブの手紙2:13

このみ言葉は他人に赦しを施すことができる人だけが神様から許されることを意味します。非常に恐ろしいみ言葉です。もしも許さない場合は私が赦しの代わりに神様の裁きを受けるしかないということです。

問題は、私たちもどのようにあわれみの気立てを持つことができますか。私たちが他人を許すことができない最大の障害は、赦しの動機が私から始まるからです。聖書は赦しについて次のように述べています。エペソ人への手紙432です。

「お互いに親切にし、心の優しい人となり、神がキリストにおいてあなたがたを赦してくださったように、互いに赦し合いなさい。」

赦しの基準は常に神様と主を基準にする必要があります。主が赦されたように神様がお赦しになったので、私はまた他人を許すしかありません。このように赦しの動機はただ神様にいて、十字架にいるのです。まさにこの絶対的な基準から人間関係のすべての赦しはなされるべきことです。

今、全世界ではあわれみの心が乾いています。自宅で、職場で、社会でも、民族と国家の間であわれみの心が乾いてしまいました。なので、世界は階層間、人と人との間に、家族の間で、信徒の間で絶え間なく、妬んで敵を作ることにより、世界は殺し合う苦しみに満ちています。神様のあわれみがある所ごとに和合の実を結ぶようになり、葛藤で混乱した生活の中から1つなることや自由を味わうことができるという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嫉妬や反目の場が赦しや愛が火のように起きて、新しい変化の美しい出来事が私たちの生活の周りに起きるようになります。

赦しは決して容易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簡単なことであったら、イエス様が十字架でお亡くなりになる必要はなかったと思います。赦しは難しいことです。赦しは難しいことですが人を変化させる力を持っています。神様から受けた赦しで互いに赦し合う時、世界は、命を生かす復興の働きが火のように起こります。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Posted in 主日説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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