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7] 우리는 욕망을 다스릴 힘을 키워야 합니다(갈라디아서5:22-26)

우리는 욕망을 다스릴 힘을 키워야 합니다.

(갈라디아서5:22-26)

담임목사 장 원규

 

사람은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구를 넘어 자신의 쾌락을 위한 욕심 또한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불행은 욕구를 넘어선 욕심이 이끄는 삶이 될 때 비롯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의 본능 즉 욕구를 죄악시하거나 버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그와 같은 본능을 버리라고 가르치지 않고 그것을 잘 다스리라고 가르칩니다. 인간에게 욕구가 없어도, 모자라도 문제이지만 그것을 잘 통제하지 못하여 욕심이 될 때 더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특히 물질에 대한 욕구가 지나쳐 욕심이 되면 사람은 그로 인하여 온갖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6장10절은 물질에 대해 이런 교훈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 지나쳐서 물질을 사랑하기까지 한다면 그 물질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죄를 생산하는 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육체의 소욕을 잘 다스리지 못할 때 육체의 소욕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인간에 욕구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지만 그 욕구를 다스리지 못하면 욕구는 욕심을 부르고 욕심은 죄를 잉태하여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사망은 영원한 죽음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모든 불행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교회의 이번주 말씀묵상의 본문인 사무엘하11-13장은 두 인물의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그의 장남 암논의 이야기입니다. 부자간의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은 성범죄를 짓고 무너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사람이 저지른 죄는 성욕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성욕은 건강한 남자라면 당연한 욕구입니다. 그런데 그 욕구를 다스리는 힘을 가지지 못할 때 욕구는 욕심으로 이어지고 그 욕심은 죄를 잉태하게 됩니다. 다윗으로부터 잉태된 죄는 너무도 끔찍한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충신이었던 우리야의 아내를 겁탈하였고 그것은 무마시키기 위해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받쳐 싸우는 부하를 살해하는 파렴치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암논은 다윗의 장남입니다. 죄는 유전되는 것인지 암논은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흠모했고 성적인 욕구를 채우고 싶었습니다. 암논의 욕구는 절제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욕정을 다스리지 못하자 자신의 지위와 힘으로 여동생을 성폭행합니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성욕만 채우고 그를 처참하게 버렸다는 것입니다. 암논이 다스리지 못한 성욕은 형제간의 복수극을 불러왔고 그것으로 인해 암논이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론에 의해 살해를 당합니다.

이번주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사무엘하 묵상을 통해 교훈하시길 원하시는 것은 바로 육체의 소욕에 대한 말씀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한 벗어날 수 없는 육체의 욕구를 다스리지 않고는 참된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은 육체의 욕구를 만족하며 사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두 길 중 한 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하나는 목적이 이끄는 인생으로 사는 것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끄는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길은 육체가 이끄는 데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육체가 이끄는 삶이란 곧 욕구를 넘어 욕심이 이끄는 데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영이 이끄는 삶을 사는 자인지, 육체가 이끄는 삶을 사는 자인지 두 길 중 한 길을 선택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길의 결과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육신이 이끄는 데로 살면 그 끝은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이끄는 삶을 사는 자들에겐 생명과 평안의 삶을 보장 받게 됨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육체의 소욕에 이끌리지 않고 오히려 육체를 다스리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 해답으로 바울은 갈라디아서5장16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 말씀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소욕을 거스른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이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려면 성령이 우리를 다스리시도록 해야만 합니다. 성령을 좇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체의 소욕을 다스릴 수 있는 성경의 해답입니다. 인간의 의지와 결단으로 욕구를 끊는 일은 쉽지는 않지만 그런 삶을 시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와 결단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무너짐이 여기에 있습니다.

육체의 욕구가 육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그렇게 얻어진 육체의 에너지는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런 삶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육체를 좇는 그 에너지의 방향을 성령을 좇는 방향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육체의 욕심을 다스릴 수 있도록 성령만을 좇는다면 인생의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 그 믿음의 길을 온전히 걸어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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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たちは欲望を治める力を養うべきです。

人は肉体の健康を保ちたがる欲求があります。また、その欲求を超えて、自分を楽しませたいという快楽の欲も心の隅にあります。人生の不幸は欲求をはるかに超えた欲張る心から始まります。しかし、キリスト教では人間の本能、すなわち、欲求を罪と定めたり、捨てるべきだとは教えません。かえって、それをよく治めなさいと教えます。人間に欲求がないことも問題ですが、それをよく治められなかったゆえに、欲張る人生になることが最も深刻な問題です。特に、金銭に対する欲求が度を過ぎて、欲張り始めると、人はあらゆる罪を犯します。それで、テモテ人への手紙第一6章10節は金銭について、このような教訓を与えています。

「金銭を愛することが、あらゆる悪の根だからです。ある人たちは、金を追い求めたために、信仰から迷い出て、非常な苦痛をもって自分を刺し通しました。」

金銭に対する欲が度を過ぎて、愛に変わってしまうと、その金銭のゆえに、人間が犯せるあらゆる罪を生み出す根元になります。人間が欲を治めきれないと、その欲が私たちの生活を治めてしまいます。人間の欲求はあまりにも正常的なものですが、その欲求を治められないと、欲求が欲を呼び、欲は罪を生み出し、ついには死に至ってしまいます。死は永遠の死でもありますが、人生のあらゆる不幸をも意味しています。

今週のみ言葉黙想の本文はサムエル記第二11~13章でした。ここでは二人の人物について記しています。ダビデとその長男のアムノンの話です。しかし、親子の美しい話ではなく、父のように息子も同じく性的な罪を犯して、生活が崩れてしまう話しです。この二人が犯した罪は性的な欲望から始まりました。性的な欲求は健康な人なら当たり前のことです。しかし、この欲求を治める力がない時にこの欲求は欲に繋がり、罪を犯してしまいます。ダビデから生まれてきた罪はあまりにも恐ろしい結果を生み出しました。

ダビデは自分の忠臣だったウリヤの妻を奪い、それを隠すために命をかけて戦う部下を殺害する恥知らず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

アムノンはダビデの長男でした。罪のDNAが遺伝されたのでしょうか。アムノンは腹違いの妹タマルのことが好きになり、性的な欲求を治めきれなかったのです。自分の地位や力で妹に性暴力をふるいました。更に、自分の性欲を満たした後、妹を捨ててしまいます。アムノンが治めきれなかった性欲のゆえに兄弟間に復讐の風が引き起り、それゆえにアムノンはタマルの兄あるアブサロムにより殺害されます。

今週の黙想を通して神様はロゴスライフ教会の信徒のみなさんが肉の欲を治めることを願っておられます。肉を持っている限り、逃れられないのが肉の欲求です。この欲求を治めずには誠の信仰の道に進めないのです。クリスチャンの生活は肉の欲求に満足するのではなく、信仰を持って生きることです。

私たちの人生は二つの道の中で一つを選んで進んで生きます。一つ目の道は目的が導く人生です。目的が導く人生とは、神様の御心と栄光のために生きる人生です。神様の御霊に導かれる人生とも言えます。二つ目の道は肉が導く人生です。肉が導く人生とは、度が過ぎてしまった欲が導くままに生きることです。それでは、私たちの人生は神様の御霊に導かれているのでしょうか。肉の思いに導かれているのでしょうか。聖書では二つの道の結果をこのように教えてくださいます。

「肉に従う者は肉的なことをもっぱら考えますが、御霊に従う者は御霊に屬することをひたすら考えます。肉の思いは死であり、御霊による思いは、いのちと平安です。」(ローマ人への手紙8章5節~6節)

肉が導くままに生きるとその終わりは死です。しかし、神様の御霊に導かれる人生には命と平安が約束されています。それでは、どうやって肉の欲に導かれずに、肉を治める人生になれるのでしょうか。その答えをガラテヤ人への手紙5章16節を通して、このように教えてくださいます。

「私は言います。御霊によって步みなさい。そうすれば、決して肉の欲望を満足させるようなことはありません。」

肉の願いは御霊に逆らい、御霊は肉に逆らうと聖書に書いてあります。肉の願いが私たちを治めないようにするためには、御霊が私たちを治めるようにすべきです。御霊に従いましょう。これが肉の願いを治められる聖書の答えなのです。人間の意志と決断だけでは肉の欲を断ち切ることはあり得ません。自分の力で肉の欲を断ち切ろうとするクリスチャンもいますが、これは不可能なことです。多くのクリスチャンの信仰が崩される理由もここにあります。

肉体の健康に保ち、そこから得られたエナジーで、神様に栄光を捧げてください。このような人生になるためには、ひたすら一つのことに集中すべきです。それは肉に従うエナジーの方向を御霊に向けることです。

私たちも私たちの中にある肉の欲を治めるために、御霊に従いましょう。人生の道であり、真理であり、命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全き信仰の道を全うしましょう。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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