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6] 두아디라 교회- 이세벨을 무너뜨려라(2) (요한계시록2:18-29)

설교: 장원규 목사

지난 주일에 두아디라 교회를 좀 먹고 있던 이세벨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삶과 예배의 목적이 아닌 자신의 세상적인 유익을 위해, 자기의 배를 위해 신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 하느니라.”(롬16:17-1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목적은 열방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통해 알리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가를 이스라엘의 삶을 통해 알려서 모든 민족들이 더 이상이 우상에 빠져 살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와 진정한 복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스라엘 택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그들을 보호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은혜로 주시는 모든 편의를 목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그러한 것을 채워 주는 잡신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게 여호와든, 금송아지든 자기들의 필요만 채워주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은 일이 교회 안에서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통일시키시는 것입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그 길에 하나님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적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자기들의 필요에만 관심을 갖는 신앙생활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인생은 하나님 나라라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짧은 여정일 뿐입니다. 우리 성도의 삶은 영원 속에서 끝없이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삶을 바라보며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좇아 이 대장정의 길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아디라 교회릍 통해 배워야 할 건강한 교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1세기의 두아디라 교회에서 배우는 건강한 교회 핵심은 순결함입니다. 우리 교회가 순결한 교회가 되고 우리 교회 성도들이 순결한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다시 순결한 공동체, 순결한 성도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는 매일 회개하며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를 붙들고 있는 이중적인 기준, 가치들을 포기하셔야 합니다. 주일과 월요일이 다른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셔야 합니다. 교회와 가정에서의 태도가 다른 모습을 회개하셔야 합니다. 교회와 직장에서의 모습이 다른 것을 회개하셔야 합니다. 숨겨진 죄가 없어야 합니다. 은폐하고 있는 어둠이 없어야 합니다. 자신과 이웃에게 투명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셔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버려야 합니다. 죄를 떠나야 합니다.

둘째는 돈의 유혹을 거절해야만 합니다.

이세벨의 목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대신 바알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바알은 남편이라는 뜻이요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바알은 섬기면 세상에 필요한 모든 물질을 책임져 준다는 것입니다. 두아디라 성도들에게 현재 가장 절실한 것이 있다면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을 살 수 있는 돈입니다. 그들은 돈이 있어야 주님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세벨의 집요한 유혹은 남편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주인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주님만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의 모든 타락은 주님이 아닌 다른 무엇이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다. 주님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인생인 것을 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나의 사랑, 나의 소망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이것이 바로 순결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고 회개의 마음과 오직 주님만이 주되심과 주님만으로 만족한 삶을 사는 깨끗해진 인생, 거룩한 공동체를 사모하고 세워가야만 합니다. 거기에 생명의 빛이시며, 생명의 떡이신 주님이 함께 하셔서 이 땅의 어둠을 몰아내고, 죽은 영혼들을 살리시는 생명의 풍성한 역사가 이 땅을 덮게 될 것입니다.

 

 

ティアティラ教会 - イゼベルを倒しなさい(2

前回にテアテラ教会を汚したイゼベルの教えについて説明しました。テアテラ教会に異教的信仰行為をしていた者が大勢いました。今とあまり変わりありません。 その理由は何ですか。ぜひ同じような行為をしながらも、一方ではイエス・キリストという福音を根拠にした行為であり、もう一方では、イエス・キリストとは何の関係もなく、自己満足を満たすための宗教行為であるからだと先週話しました。このように、イエス・キリストを知らない堕落した人間は神様を仕えると言いながらも、本当の目的は自己の世界的な利益や自分の欲のためにでたらめな神を作っておいて、その神を神と呼んでいるのです。次のような人々です。

(ピリピ人への手紙 318-19「私はしばしばあなたがたに言ってたし、今もをもって言うのですが、多くの人がキリストの十字架の敵としてんでいるからです。彼らの最後は滅びです。彼らの神は彼らの欲望であり、彼らの光は彼ら自身の恥なのです。彼らの思いは地上のことだけです。」

このように礼拝堂の中で自分の欲のために、神様を偶像化させて、仕える者たちを、私たちはイゼベルの教えに陥った者と言います。なぜこのように堕落した人間は自分の欲のためだけに生きますか。さらに礼拝堂でも自分の必要に応じて、自分が作った神に名前を付けて呼ぶとんでもないことをするのでしょうか。神様は人間を創造する時、人間を絶対に一人で生き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創造なさいました。神様は人間を神様に絶対依存的な存在で造られました。また、人間が神様を追い出してしまい、人間はその時から自分自身を守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文明と文化というものを作って自らの幸せを追いかけて自らを守っていき始めました。

堕落した人間がこのように文明と文化を作って、自分自身を守ろうとする努力にもかかわらず、人間は時々、自分たちの力で解釈が不可能な現象や事件を見た時に、つまり、地震や暴風や洪水や日食や月食や死のような、自分の力でコントロールできないそのようなことを見た時、彼らは神様と完全に断絶されたにもかかわらず、驚異的な力を持つ存在のことを考え、そのたびに人間は神様ではなく、自分たちに利益を与える自分たちを保護してくれる神様を作りました。

今日も同じことが礼拝党で行われています。神様の究極的な目的は、天や地のことや、すべてイエス・キリストの中で再統一させることです。目的地までいく道に神様の子たちの必要性を満たすことです。ところが、目的地とは何の関係もなく、ただ自分たちの必要なことだけ関心を持つことが正しい巡礼者でしょうか。私たちはどこでも足が届くところに行く巡礼者ではありません。私たちは、正確な目的地がある巡礼者たちです。信徒の人生は、神様のみ国と呼ばれる目的地に向かっていくの短い旅にすぎません。信徒の人生は永遠の中で延々と続きます。私たちは、その生活を眺めながら熱心に神様のみ心を追ってこの大長征の道を誠実に行くだけのことです。

クリスチャンの巡礼の道に必要なのは、神様がすべて供給されます。私たちはその天の本部から供給される支給品が少し不便で、少し好きではなくても目的地に向かって歩き続けるべきです。私はナイキがほしくても本部ではその十分の一の価格である「ノイキ」を与えたとしても、私たちは笑って向かって行くべきです。歩くのに不便でも、私たちが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目的地の栄光は靴に比較することができないため、その目的地に向かって黙々と進むのです。

ところで、神様を信じると言いながら、この地の巡礼道で必要なものだけをねだる人々を指して偶像に仕える者といい、彼らイゼベルの教えに陥った人だといいます。では、あなたが本当の巡礼者であるかイゼベルの教えに陥った偽の巡礼者であるかを確かめる方法を教えます。

まず、あなたは、あなたの必要性よりも神様をより愛するのかを確認すべきです。

ハバクク預言者は、本当に神を愛したので、このような告白をしました。 「私は聞き、私のはらわたはわななき、私のくちびるはその音のために震える。腐れは私の骨のうちに入り、私の足もとはぐらつく。私たちを攻める民に襲いかかる悩みの日を、私は静かに待とう。そのとき、いちじくの木は花を咲かせず、ぶどうの木は実をみのらせず、オリーブの木も実りがなく、畑は食物を出さない。羊は囲いから絶え、牛は牛舎にいなくなる。」(ハバクク書3:16-17)

「み言葉に生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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