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27] 사데 교회- 깨어 있으라! (요한계시록3:1-6)

설교: 장원규 목사

마지막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늘 깨어 있는 일은 너무 중요합니다. 깨어있지 못하면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없고, 주님 오심을 맞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어있지 못해 책망 받은 교회가 바로 사데 교회입니다. 사데 교회는 깨어 있지 못해 주님께 책망을 받았고 위기를 만났습니다. 사데 교회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한 데에는 환경적인 요인이 있었습니다. ‘사데’라는 지방은 난공불락의 요새를 갖추고 있고, 사금과 풍성한 농산물로 인해 사데는 외형적으로 평화롭고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이런 환경적인 영향을 받고 있던 사데 교회는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했고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이런 책망을 받았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사데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다르게 이단들도 없었고 공권력의 핍박도 없었습니다. 교회의 넘치는 부로 멋지고 커다란 예배당을 갖추었고 화려한 종교 활동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교회라는 칭찬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교회를 ‘살아있는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주님은 ‘실상은 네가 죽었다’고 하십니다. 행위는 풍성했는데 문제는 그런 모든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죽은 행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데 교회를 향해 ‘깨어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깨어서 오늘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항상 깨어 오늘을 사는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이 두 명 있습니다. 하나는 에녹이고 하나는 엘리야입니다. 그 중 에녹이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승천하게 된 그 이유를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임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삶이 하나님과 동행한 삶인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에녹은 아들을 낳자 아들이름을 ‘무드셀라’라고 지었습니다. 무드셀라 라는 이름의 뜻은 ‘창 던지는 자’라는 뜻과 함께 ‘이가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고대 시대에는 전쟁을 할 때 각 부족이나 마을에 창을 제일 잘 던지는 사람이 전투의 가장 선두에 섰었습니다. 그가 창을 던져 적장이나 적의 왕을 죽이면 더 이상의 전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장군이나 왕이 죽으면 나머지 군사들이 기선을 제압당해 전쟁할 의지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고대의 전쟁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창 던지는 자가 먼저 죽게 되면 그 전쟁은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드셀라가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는 뜻을 담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녹에게 아들을 낳자 이름을 ‘무드셀라’로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에녹은 무드셀라가 태어난 날로부터 언제 죽을지 모르는 무드셀라를 보면서 ‘오늘 무드셀라가 죽을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아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병에 걸려 죽을지, 돌에 걸려 넘어져서 죽을지, 맹수에게 물려 죽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마지막 날처럼 산 것입니다. 그렇게 산 사람을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고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이 마지막 날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후회가 되지 않도록 오직 하나님만을 소망하며 사는 자를 가리켜 깨어있는 자라고 한 것입니다.

사데 교회는 이렇게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환경적인 요인들로 인해 세상에 치우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아 때와 롯의 때처럼 먹고 마시고 집 사고 장가들고 시집가는데 그런 세상의 일에 치우친 삶을 살다가 망한 것처럼 사데 교회 성도들은 세속화에 취해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안전하다 평안하다’라고 스스로에게 속고 있었고 더 깊은 영적의 잠에 빠져 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늘 깨어 있는 삶을 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처방을 주님께서 3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가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이 구절에서 주목해야 하는 세 개의 동사가 “생각하라, 지키라, 회개하라”입니다. 이것을 다시 둘로 요약한다면 깊이 생각하고 깨어 지신을 지키던가 아니면 그렇게 못한 것을 지금이라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데 교회를 향한 권면의 키(Key)는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깨어 있음의 자리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은 하나님의 시간을 인지하지 못하고 세상에 취해 있거나 세속화에 빠져 여전히 잠들어 있는 우리를 향해 ‘너희도 깨어 있으라!’라고 도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이 주되심의 삶을 살고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대와 설램으로 빛 되신 주님이 중심이 되는 낮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예”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없다면 지금은 깊이 생각할 때입니다. 회개할 때입니다. 깨어날 때이고 깨어 있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교회에게 중요한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12월1일부터 21일 특별새벽기도회입니다. 2016년 얼마 남지 않은 한 해의 삶을 돌아보며 새벽마다 회개의 눈물로 자신들의 영혼을 정결케 하고 영혼을 깨우며, 민족을 깨우며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우리 자신과 교회를 다시 흔들어 깨울 때입니다. 우리가 깨어 있어야 잠들어 있는 영혼을 깨워 살릴 수 있고 우리 교회가 깨어 있어야 잠들어 있는 교회들을 깨워 함께 영광스럽게 주님을 오심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サルデス教会目を覚ませ!

最後の時代を生きる私たちに常に目を覚ましていることはあまりにも重要です。目を覚ましていなければ、正しい信仰の道を歩いて行くことができず、主がいらっしゃる時、迎え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す。だから目を覚ましていなくて非難を受けた教会がサルデス教会です。 サルデス教会は目を覚ましていなかったから主に責められて危機に会いました。サルデス教会が霊的に目を覚ましていなかった事には環境的な要因がありました。「サルデス」という地方は難攻不落の要塞を備えており、砂金と豊かな農産物のためにサルデスは外形的に平和で豊かな都市でした。このような環境的な影響を受けていたサルデス教会は霊的に目を覚ましていなかったので、主から、このような責めを受けました。

‘わたしは、あなたの行いを知っている。あなたは、生きているとされているが、実は死んでいる。’(ヨハネの黙示録3:1)

サルデス教会は他の教会とは違って異端者もなかった公権力の迫害もありませんでした。教会のあふれる富でオシャレで大きな礼拝堂を備えており華やかな宗教活動を通じて多くの人々に良い教会という賞賛を受けていました。 だから、信徒は、自ら自分の教会を「生きている教会」と思っていたが、主は「実像君は死んだ」とおっしゃっています。行為は、豊かしたが問題は、そのようなすべての行為が神様の目には、死んだ行為でした。だから主はサルデス教会に向かって「目ざめよ!」と叫んだのです。目を覚まして、今日を生き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

そうすれば、いつも目を覚まして、今日を生きる人生とは何を意味するのでしょうか?聖書の中で死を見ずに空に上った人が二人います。一人は、エノクであり、もう一人はエリヤです。その中で、エノクが死を経験せずに昇天になったその理由を聖書は「神様と同行」したからであることを語っています。であれば、どのように生きる人生が神様と同行した生活なのか、私たちは知るべきです。

エノクは息子を生むと息子の名前を「メトシェラ」と名付けました。メトシェラという名前の意味は「やりを投げる者」という意味で「この人が死ぬと審判が臨む。」という意味です。古代には、戦争をするときに、各部族や村にやりを一番よく投げる人が戦闘の最も先頭に立ちました。彼がやりを投げ敵将や敵の王を殺すとそれ以上の戦争をする必要はありません。すでに将軍や王が死ぬと残りの兵士たちは戦争する意志を喪失するからです。これが古代の戦争の方法でした。ところが、逆にやりを投げる者が最初に死ぬと、その戦争は負けることになります。だから「メトシェラが死ぬと審判が臨む。」という意味を込めたものです。

神様はエノクに息子を生むと名前を「メトシェラ」と名付けさせました。エノクはメトシェラが生まれた日からいつ死ぬかわからないメトシェラを見ながら「今日メトシェラが死ぬかもしれない」という考えをして、今日が最後の日という気持ちで生きたかもしれません。息子がいつ死ぬか分からないから病気にかかって死ぬか、石にかかって倒れ死ぬか、猛獣に譲っ死ぬかわからないのです。だから、毎日、神様だけを見つめ頼って最後の日のように生きたのです。そのように生きた人を聖書は「神様と同行した者」と書きました。つまり、今日が最後の日だからこそ、神様の前に後悔がないように、ただ神様のみ希望して生きる者を指し、目を覚ましている者だと言いました。

サルデス教会はこのように目を覚ました信仰生活をすることなく、環境的な要因により、世間に追われて生きていました。ノアの時とロトの時のように食べて飲んで家を買って、結婚するのに精一杯で生きて滅びたようにサルデス教会の聖徒たちは、世俗化され、霊的に死んでいる状態だったにもかかわらず、自分たちは「安全である平安である」と自分自身にだまされて、より深い霊的なの眠りに落ちていたのです。問題は、どうすれば我々が常に目を覚ました生活をすることが出来るかということです。その処方を主は3節でこう言われました。

“だから、あなたがどのように受け、また聞いたのかを思い出しなさい。それを堅く守り、また悔い改めなさい。もし、目をさまさなければ、わたしは盗人のように来る。あなたには、わたしがいつあなたのところに来るか、決してわからない。”

この節では注目する必要がある三つの動詞が「思い出しなさい、守りなさい、悔い改めなさい」です。これを再度二つに要約すれば思い出して目を覚まして自分を守るか、またはそのように出来なかったことを今でも悔い改めることです。再び一言で言えばサルデス教会に向けた券面のキー(Key)は、「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目を覚まして生き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生きておられる主は主の時間を認知していない世の中に生きている私たちに、俗化にまだ眠っている私たちに向かって「あなたがたも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と挑戦しているのです。主が私たちの主になる生活を過ごし、再び来られる主の期待と胸騒ぎで光である主が中心となる昼のような人生を生きているのかをお聞きしています。その質問に「はい」と堂々と答えできないのであれば、深く考えるときです。思い出す時です。悔い改める時です。目覚めるときです。目を覚ましているべき時期です。

それで、神様が今、私たちの教会に重要な機会を与えられたと思います。12月1日から21日まで特別早天祈会があります。2016年、残り少ない一年の生活を振り返りながら、夜明けに悔い改めの涙で自分たちの魂を清めて魂を起こし、民族目を覚まさせて祈る私たちの姿をぜひ見たいです。今は私たち自身の教会を再び目を覚まさせるときです。私たちが目を覚ましていなければ眠っている魂を目覚めさせ生かすことができないし、私たちの教会が目を覚ましていなければ眠っている教会を起こして一緒に栄光の主の再びいらっしゃることを迎え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す。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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