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5] 나는 양의 문이니라 [3] わたしは羊の門である(3)

나는 양의 문이니라 [3]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삶의 삶이란 절름발이 인생인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그의 도움을 받으며 평생 그와 더불어 동행하는 여정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없으면 목숨을 걸고 꼭 가져야 하고 가졌으면 목숨을 걸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 하나가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산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세상을 사는 동안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았다는 겁니다. 주어진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면 그들은 세상을 이겼고 그들의 삶의 발자취는 많은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그런 위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 하나가 바로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아야만 합니다. 그 앎이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의 삶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향하여“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을 왜 양의 문이라고 하셨는가? 그 말이 가져다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세우는데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양은 아주 연약한 동물입니다. 양들은 시력이 나빠서 자기 앞의 양들도 제대로 보지 못해 자주 길을 잃는다고 합니다. 게다가 양은 공격무기도 없어서 파리 하나도 쫓지 못하고 파리가 콧구멍에 알을 낳아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연약한 짐승입니다. 그리고 양은 자기를 지켜주는 목자가 없으면 무서워서 눕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듬직한 목자가 곁에 있을 때만 푸른 초장에 눕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인들을 각기 제 길로 다니다가 길을 잃은 모습을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이라고 양에 비유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신비한 능력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청력입니다. 그만큼 양은 주인의 음성에 민감합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 10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양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방황하는 연약하고 무력한 죄인이었던 성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자연스럽게 양들을 부르는 목자 또한 바로 우리 주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 땅에는 마을마다 양들을 공동으로 관리할 수 있는 양 우리를 만들어놓는다고 합니다. 양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우리의 담이 3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양들이 그런 담을 넘어 우리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양은 반드시 문을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가야만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안전하게 쉼과 필요한 꼴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양은 곧 우리 자신이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언제나 부족하고 불결하며, 무능한 한 마리의 양일 수밖에 없는 우리를 향하여 주님께서는 “나는 너의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데 주님은 그것도 모자라 “나는 양의 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어떤 혹한 속에서도 내 생명을 지키고 보호해 주시는 나의 문 되신 주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

예수님께서 양과 같은 아주 연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 인간들이 궁극적인 삶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를 본문을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문이 되신 주님께서 자신을 문으로 삼고 그 문으로 드나드는 자에게 주시는 두 가지 중요한 약속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약속은 ‘구원을 얻고’입니다.

성경 자체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성경이 쓰여진 목적 또한 우리에게 구원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오셔서 우리에 주신 가장 값진 선물은 구원입니다. 그 구원은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자유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한마디로 곧 자유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고 했는데 그 자유는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한 것입니까? 구원은 죽음으로부터 자유입니다. 구원은 율법으로부터 자유입니다. 구원은 모든 상황으로부터 자유입니다. 구원은 자신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 자기로부터의 자유, 탐욕과 이기심의 자기 독성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 약속은 ‘꼴을 얻으리라’입니다.

꼴이란 양이 먹는 양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목자의 중요한 역할은 양을 꼴이 풍성한 곳으로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이 굶주리지 않도록 양이 지속적으로 꼴을 취하여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데 집중합니다. 꼴은 양에게 있어서 생명인 것입니다. 꼴은 삶의 동력인 것입니다. 구원의 문이신 주님 안에 들어가게 되면 삶의 모든 동력을 공급받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구원의 문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그 분 안에 거하면 어떤 상황, 어떤 순간, 언제라도 주님의 꼴을 얻고 먹게 될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아담의 죄성으로부터, 가인의 죄성으로부터, 다윗의 부도덕한 죄성으로부터, 베드로의 이중성으로부터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이 세상사는 동안 하나님의 생명의 도구가 되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 많은 영혼을 살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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わたしは羊の門である(3)

主(しゅ)に対する信仰(しんこう)を持って生きるという事とは、まるで片足で生きる我々が主を迎え入れ、主の助けを頂(いただ)きながら、一生、主と共に歩んでいく旅路(たびじ)を行く事にたとえることができます。我々が人生の中で、命を懸けて必ず求めるべき事、そして守るべき事の一つが、主に対する真の信仰であります。この信仰を持って生きた人々の共通点は、この世を生きる間、そのようにその信仰を後悔(こうかい)することなく生き抜いたことです。

授かった人生を、決して無駄にすることなく、彼らは世に勝利し、彼らの足跡は、沢山の人々を永久のいのちへと導かれた主を喜ばす人生でありました。

ならば、我々がまた、そのような偉大な信仰の道を生きて行くために、必ず知っておくべき事の一つは、信仰を下さったイエス・キリストを正しく知ることです。それこそが、主に対する真の信仰を持つことに繋(つな)がるからです。

イエス様はご自身に向けて「わたしはいのちのパンである。」「わたしは世の光である。」そして、今日の御言葉では「わたしは羊の門である。」と紹介しておられます。イエス様は、なぜ御自身を羊の門に例えられたのでしょう。その御言葉の意味を知ることは、我々が主に対する信仰を築(きず)くために、とっても大切なことです。

羊はとても弱い動物です。羊は視力が弱く、自分の目の前の羊さえ見失い、よく道に迷ってしまうといわれています。また、羊は身を守る武器が何もなく、蠅(はえ)さえも追い払うことができず、蠅が鼻の穴に卵を産んでも、なすすべなくやられるだけの弱すぎる動物であります、そして、羊は自分たちを守ってくれる羊飼いがいなければ、怖くて横になる事すらできないそうです。なので、頼もしい羊飼いがそばにいる時だけ、青草の野原で横になります。そこで聖書は、罪びとたちが各自の道に向かい、さまよう有様(ありさま)を「わたしたちは羊の群(む)れ、道(みち)誤(あやま)り、それぞれの方向へ向かっていった。」(イザヤ書53:6)と羊に例えているのです。

しかし、そんな彼らにも優れた能力が一つあって、それは聴力(ちょうりょく)です。それほど羊は、主人(しゅじん)の声に敏感(びんかん)に反応します。ヨハネの福音書10章で紹介している羊は、行先(ゆきさき)を失い、暗い世の中をさまよう微弱で無力な罪びとだった信徒たちを象徴しているものです。即ち、羊を呼び戻す羊飼いこそが、我々の主であることがわかります。

ユダヤでは、村ごとに羊たちを共同で管理する羊の囲いを設けていたそうです。羊を守るために設(もう)けた囲いは、高さが約3メートルだといわれます。羊たちは、そんな囲いを飛び越えることはできません。羊は、門をくぐって囲いの中に入ってこそ、自分を襲(おそ)ってくる獣から身を守り、安全な安らぎと牧草を得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羊は我々であり、我々を救いへ導く門こそがイエス様であります。主の前では、常に物足りなく、不潔で、無能な一匹の羊である我々に向かって、主は「わたしはあなたの羊飼い」だとおっしゃいました。それだけでも感激ですが、そのうえ、「わたしは羊の門」とおっしゃいました。どんなに酷(こく)な状況下でも、わたしのいのちを守り、保護してくださる、わたしの門になってくださった主(しゅ)は、今日の御言葉でこのようにおっしゃっております。

「わたしは門である。わたしを通って入る者は救われる。その人は、門を出入りして牧草を見つける。」(ヨハネの福音書10:9)

イエス様は、羊のようにひ弱い我々人間が、日々抱えてる問題をどのように解決すればよいのかを御言葉から教示してくださいました。人生の門になってくださった主(しゅ)は、御自身を門とし、その門をくぐって出入りする者たちに、二つの大事な約束をしてくださいました。

一つ目の約束は、「救(すく)われる」です。

聖書自体が人間に向ける主の救いの歴史であります。聖書が書かれた目的こそが、我々の救いであることを悟らせようとおっしゃいました。イエス様がこの地に来られて我々にくださった一番の宝物は救いです。その救いは、罪の下部であった我々が、自由の身となったことです。

なので、救いは即ち、自由の身であります。主は、「真実を知り、真実があなたたちを自由にする」とおっしゃいました。では、イエス様は「わたしは門である。わたしを通って入るものは救われる」とおっしゃいましたが、その自由とは、何からの自由を得ることを意味していますでしょうか。救いは、死からの自由を意味します。救いは律法(りっぽう)からの自由です。救いはすべての状況からの自由です。救いは自分自身からの自由を意味します。

唯一、キリストの中に留(とど)まる者だけが、自分からの自由、欲望(よくぼう)と自己(じこ)中心(ちゅうしん)である自分の毒性(どくせい)から自由を得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二つ目の約束は、「牧草(ぼくそう)を見つける」です。

牧草とは、羊の食糧を意味します。なので、羊飼いの大事な役目は、羊を豊かな牧草に導く事であります。そして、羊が飢えることがないよう持続的に牧草を与え、健やかに育てることに集中します。牧草は羊にとっていのちです。いわば、牧草は暮らしの力の源であります。救い主である主の中に入ることで、暮らしのすべての力の源を与えてもらいます。

ですから、これから我々は、永久に変わることなく救いの門である主を仰(あお)ぎ、頼り、その中で暮らしていけば、どんな状況、どんな瞬間、どんな時も主の牧草を頂くことができます。その時、我々はアダムの罪から、カインの罪から、ダビデの不道徳(ふどうとく)の罪から、ペトロの二重性から、本質的な変化をもたらすことができ、この世を生きる限り、主のいのちの道具となり、世の中を照らす光として、沢山の魂(たましい)を救うことができるのです。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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