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19] 나는 선한 목자이다 私は良い羊飼いである

 나는 선한 목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세상을 창조하셨을까요? 창조의 목적은 무엇이며 창조의 중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담 곧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복된 세상에서 영원히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 거신 조건은 ‘선악과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그 복된 삶을 빼앗는 그 길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한 그 하나의 조건인 선악과를 따 먹게 하여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그 점을 집요하게 유혹했고 결국 그 덫에 걸린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게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인간은 삶의 목적과 중심이 하나님에서 자신으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것을 삶의 의미와 목적으로 삼지 않고 자신의 뜻을 이루고 채우는 욕심을 삶의 의미와 목적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불행의 고통은 우리의 욕심이 끝까지 채워지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없이 우리를 목마르게 하고 배고프게 하는 형벌과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만족이 없고 모든 것이 부족한 삶이 되고 말았습니다.

행복은 우리의 뜻을 이루고 우리의 욕심을 채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채워 드리는데 있습니다. 자기를 비우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살기 시작하면 세상은 점점 아름다워지고, 세상은 점점 부족함이 없는 만족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시편 23편을 쓴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 즉 주인을 삼고 걸어갔을 때 부족함이 없는 삶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가 살아가는 세상이 죄로 말미암아 파괴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아진 세상이라도, 하나님으로 자신의 목자를 삼은 사람은 부족함이 없는, 두려움이 없는, 불안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무엇보다 우리를 향해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는 그 의미는 자신만을 믿고 따르면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과 영원한 쉼이 있는 하나님 나라에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소개하신 것은 양인 우리가 왜 자신을 선한 목자로 믿고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그 근거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선한 목자는 양인 우리의 이름을 각각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는 우리 안에 있는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불러내어 인도하십니다. 이 말의 의미는 선한 목자는 많은 양 가운데 어느 한 마리의 양이 아닌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소중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양은 자신의 소유물이지만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만일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이 나 하나밖에 없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셨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둘째로 선한 목자는 양인 우리의 인생을 복된 곳으로 끝까지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불러내신 선한 목자는 그 양들 앞에서 그 양들을 인도하여 가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 앞에서 모든 위험을 자신이 먼저 겪으며 양들을 보호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십니다. 체휼하신다는 말은 ‘단순히 맛만 보신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다 가져가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문둥병자를 고치셨을 때 그 문둥병이 예수님에게 옮겨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혈우병 앓던 여인을 고치셨을 때 그 혈우병이 예수님 것이 된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이렇게 앞서 우리의 모든 질고와 연약함을 다 가져가시고 우리의 미성숙함과 실패와 실수를 예수님 자신이 완성시켜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주님이 바로 이런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 어떤 의심 없이 주님을 선한 목자를 믿고 우리 인생 전체를 다 맡기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선한 목자는 양인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시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지켜준다’라고 하지 않고 ‘버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들을 살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임을 알고 자발적으로 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러고도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시는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한 목자가 어디로 우리를 인도하든지 기쁘게 따라가야 합니다. 그 목자를 통해서만이 구원을 얻고 꼴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다른 무엇이 아닌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창세 때 에덴동산 안에 주셨던 창조의 생명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 주신 목자에게 나를 맡길 때 하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이 누리시는 깊은 앎과 사랑의 사귐에 우리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제사장적 삶을 살게 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의로 다스리는 왕 노릇 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어두운 세상을 진리의 빛으로 인도하는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私は良い羊飼いである

私たちが神様(かみさま)を信じるという時、その信仰は初(はじ)めに神が天と地を創造した”という創造主の神様を信じることです。それでは神様なる主(しゅ)はなぜこの世界をお創りになったのでしょうか。創造の目的は何で、創造の中心とは何なのでしょうか。それはアダム、つまり人(ひと)です。主(しゅ)はあなたのために世界を創られたのではなく、人のために世界を創られました。そのような祝福された世界で、永遠の幸福をもって生きられるように、主(しゅ)が人間に提案した条件は善悪(ぜんあく)の知識(ちしき)の木(き)の実(み)を食(た)べてはいけない”ことでした。

サタンはアダムとイヴに与えられたその祝福された生活を奪う方法を正確に知っていました。主(しゅ)が人間に要求したただ一つの条件である善悪の知識の木の実を食べさせ、人間が自ら神になるようにするということでした。その点でサタンはイヴをしつこく誘惑し、結局その罠にかかってしまったアダムとイヴは善悪の木の実を食べてしまいました。善悪の木のみを食べた瞬間、人間は生の目的と中心が主(しゅ)から自分へと変わってしまいました。主(しゅ)の意を叶(かな)えることを人生の意味と目的とせず、自分(じぶん)の志(こころざし)を遂げ、満たす欲を人生の意味と目的としてしまいました。

ここより、人間のすべての不幸が始まりました。その不幸の苦しみは私たちの欲望が満たされることは決してないということにあります。人間の欲は限りなく、私たちを飢えさせ乾かせる刑罰のようなものです。そこには満足はなく、すべてが乏しいものとなってしまいました。

幸せは私たちの意を遂げ、私たちの欲を満たすためにあるのではなく、主(しゅ)の善い御心(みこころ)にかなうようにそれを満たすことにあります。自分を捨て、欲を捨て、主(しゅ)こそ主(しゅ)なのだと、主(しゅ)こそ自分自身とこの世すべてを助(たす)け治(おさ)める方として認め、主(しゅ)の意(い)に沿って生き始めると、世界はますます美しく、ますます欠けることのない満たされた世になるのです。それを経験した人こそ詩編の23編を記したダビデです。ダビデは主(しゅ)こそ自分の牧者、つまり己の神とし歩んだ時に欠けることのなかったと告白しています。たとえ彼が生きる世界が罪によって壊され、死の陰の谷のようになってしまった世界であったとしても、主(しゅ)をこそ己の羊飼いとした人は乏しいことのない、不安のない、恐れのない道を生きていくという御言葉です。

今日の本文はイエス様自身を次のように紹介しています。私(わたし)は良(よ)い牧者(ぼくしゃ)です”。何よりも私たちに向かって良い牧者であると語られるその意味は、主(しゅ)を信じ従えば、荒れ野のようなこの世界で乏しいことのないようになることと、永遠の安らぎがある主(しゅ)の御国(みくに)にまで私たちを安全に導かれるという約束が含まれているのです。
特に今日の本文を通じて主がご自分を良い牧者であると紹介されたのは、羊である私たちがなぜ主(しゅ)であるイエスを良い牧者として信じ従わ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について、その根拠を語られています。

一つ目に、良(よ)い牧者(ぼくしゃ)は羊(ひつじ)である私たちの各々の名(な)を呼ばれるためです。

良い牧者は私たちの中にある羊の名の一つ一つを呼び、導かれます。この言葉の意味は良い牧者は多くの羊の中の一匹としてでなく、羊の一匹一匹を大事な存在としてみな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羊は自分の所有物であるのですが、自分の満足と利益のための手段などでなく、その目的それ自体として見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そのため、ある神学者は“万一、この世で主(しゅ)の民が私一人のみであったとしても、主(しゅ)は私一人を救われるためにあなたの息子を十字架につけられたであろう”と語ったこともあります。

二つ目に、良(よ)い牧者(ぼくしゃ)は羊(ひつじ)である私たちの人生を最後まで祝福(しゅくふく)された所に導(みちび)かれるためです。

羊の名を一つ一つ呼ばれた良い牧者はその群れの先で羊を導いていきます。良い牧者は羊の前ですべての危険を先に迎え、羊を保護します。その方は私たちの弱さに寄り添われます。 寄り添うと訳された言葉の原語は‘単純に味見するだけでなく、自分がすべてをもっていく’という意味を持つ言葉です。つまり、イエス様がハンセン病を治癒されたとき、そのハンセン病がイエス様に移ったのです。イエス様が出血の止まらない病気を患っていた女性を治癒されたときも、その病気がイエス様のものになったのです。良い牧者はこのように私たちの先で私たちのすべての疾病と弱さを持ち行かれ、私たちの未熟さと失敗と間違えをイエス様が完成させ、私たちに渡してくださる方なのです。主がまさにこのような方であるために、私たちはどんな疑いもなく、主を良い牧者として信じ、私たちの人生すべてをゆだね従うだけで良いのです。

三つ目に、良(よ)い牧者(ぼくしゃ)は羊(ひつじ)である私たちのためにそのいのちをも捨(す)てられるためです。

良い牧者である主は、“私は良い牧者です。良い牧者は羊のために命を捨てます。”良い牧者は羊のために危険な目にあってまで“守る”のではなく、“捨てる”といっています。羊たちを助けるために必要なものが自らのいのちを犠牲にすること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り、自分から先に捨てるという意味です。それでも惜しむことなく、むしろ喜ばれる牧者であります。そのために私たちは良い牧者がどこに私を導いていっても、喜びをもってついていかねばなりません。その牧者を通じてのみ、救いを得、草をはむことができるためです。この世の何かではなく、ただイエス様を通じてのみ、創造時にエデンの園で下さった創造の生命を今一度回復することができるためです。私のために命さえも下さった牧者に自分をゆだねる時、父(ちち)なる主(しゅ)と御子(みこ)のイエス様の深い知と愛の交わりに私たちも参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そのときになって初めて、この世を治癒し、回復させる祭司(さいし)としての生を全うすることができます。そのときになって初めて、私たちはこの世を義によって統治する王のような者にな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そのときになって初めて、私たちは暗闇の世界を真理の光へと導く預言者の使命を全うすることができます。

 

「み言葉(ことば)生(い)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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