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2] 나는 참 포도나무다 (6) わたしはまことのぶどうの木です (6)

나는 참 포도나무다 (6)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이며 우리는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 그리고 하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를 돌보는 농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고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로소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존재임을 말씀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가 되는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간 가지는 단지 한 줌의 재 이상일 수가 없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로 붙어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농부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귀해서가 아니라 나는 여전히 형편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당신의 가지로 붙들어 주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를 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곧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의 가지가 된다는 것이며, 주님의 가지가 된다는 것은 곧 포도나무와 가지를 관리하시는 농부이신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농부를 함께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농부로 모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과 무한한 능력 안에 거하는 자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를 얻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빚으시는 아름다운 내일을 얻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으며 사는 자와 믿지 못하는 자의 삶이 결코 동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믿음에 굳게 선 믿음의 선진들은 다 새 역사를 창조하는 주인공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소개하고 우리는 그의 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하신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농부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그 증거를 나타내는 것일까요?

첫째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에 감사하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농부는 나무와 가지를 위하여 많은 것을 줍니다. 때를 맞추어 물을 공급합니다. 물론 비료를 주기도 하지만 때론 역겨운 퇴비를 줄 때도 있습니다. 방충 해를 막기 위해 소독약을 뿌려 주기도 합니다. 그것은 숨 막히는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부가 주는 것은 그 어느 것 하나 가지에게 해로운 것이 없습니다.

인생의 농부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 그 결과는 항상 우리의 유익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농부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모든 것이 다 감사할 뿐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바로 나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이 곧 나를 위한 것임을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농부이신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 외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신의 때를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전부 위탁하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면 가지가 비료를 언제 줄 것인지, 소독약은 언제 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겠습니까? 그 모든 시기는 가지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결정해서도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가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가지에 관한 모든 것은 농부의 소관임을 인정하고 오직 그 모든 때를 농부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가지는 다만 매 순간 나무에만 온전히 붙어 있는 일인 집중하고 힘쓰는 것입니다. 그런 가지를 향해 농부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장 좋은 결과에 이르도록 내일을 준비하고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포도나무다.라고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신 그 이유를 분명히 깨달았다면 우리가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갈 때 정말 집중해야 하고 힘써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바르게 정리해야만 합니다. 가지의 목적은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열매 맺는 일은 가지가 힘쓰고 애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목숨을 걸고 붙어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됩니다.

주님의 가지인 우리에게 있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한 매일 주님께 온전한 교제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진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한, 그 이외의 것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의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모두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가지의 본분인 참 좋은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될 것입니다. 가지는 열매로만 농부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지는 모든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얻는 자가 되고 세상을 얻는 복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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わたしはまことのぶどうの木です (6)

イエス様は、御自身をまことのぶどうの木にたとえ、我々は、ぶどうの木の枝、イエス様についている枝にたとえ、そして父なる主はぶどうの木と枝を世話する農夫であるとおっしゃいました。この御言葉は、罪人である我々は、父なる主と直接の関係を結ぶことができず、ぶどうの木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こそ、主との関係を結べる存在であることを示しておられます。従って、キリスト者になる事は、ぶどうの木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の枝になる事を意味します。なので、イエス・キリストから離れてしまった枝は、一(ひと)握(にぎ)りの灰になること以外なにものでもないことがわかります。しかし、イエス・キリストの枝としてついていさえいれば、父なる主が私の人生の農夫になってくださるとおっしゃったのです。わたしたち自身それぞれがそれほど尊い存在だからではありません。ただただ、未(いま)だにどうしようもない罪人であるにも関(かか)わらず、御自身の枝としておつけてくださる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わたしたち自身それぞれがそれほどに大事にされていくのです。

我々が、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ということは、即ち、まことのぶどうの木である主の枝になる事であり、主の枝になる事は、即ち、ぶどうの木と枝を世話する、農夫の父なる主を人生の農夫として得ることを意味します。主を我々の人生の農夫として迎い入れることは、主の愛と、無限の能力の中に居る人になるということです。もっと言えば、主が創られたこの世のすべてを得ることであり、主が私のために御用意された一寸の誤差もなく完璧な明日を得ることであります。

このように我々が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信仰が、どんなに偉大なものであるかを知りたいのです。この事実を信じて生きる者と、信じる事ができない者の人生は、決して同じものにはなれないのです。それで、この信仰のもとに生きた先人達はみな、新しい歴史を創る主人公になる事ができました。イエス様がご自身をまことのぶどうの木とたとえ、我々がその枝であるという事実を教えてくださった大事な理由であります。

それでは、我々の農夫である主を真摯(しんし)に信じる信仰を持って生きることは、どのような証(あか)しで現れるのでしょうか。

一つ目は、今、自分に与えられたすべての環境に感謝する事がその証(あか)しです。

農夫は木と枝のために沢山の事を用意します。的(てき)時(じ)に水を与えます。もちろん肥料を与える事もありますが、時には臭い堆肥(たいひ)を与えることもあります。防虫のために薬をまくこともあります。それが耐え難(がた)い苦痛をともなう時もあります。しかし、農夫が与える物すべては枝にとって害(がい)になる物はございません。

人生の農夫である主と我々の関係もこれと同じです。主が与えてくださる物は、どんな物であれ、その結果が常に、我々にとって有益な物ばかりなのです。なので、まことに主を自分の農夫として迎い入れて生きる人なら、すべてのことに感謝するのです。主を信頼することは、即ち自分に与えられた環境が、自分のための物だということを信じて感謝するのです。なので、我々の農夫である主に、常に感謝する事以外何もないのです。

二つ目は、自分の時を自(みずか)ら決めるのではなく、主にすべてを委(ゆだ)ねる事がその証(あか)しです。

考えてみれば、もし枝が、いつ肥料が与えられ、いつ薬がまかれるのか、自分で決めるとしたら、その結果はどうなるでしょうか。そのすべての時期は、自らは決めることができず、決めてはいけない事なのです。これに関して枝は、何も知ることができないことを自覚し、枝に関するすべては農夫の管轄(かんかつ)であることを認め、時期のすべてを農夫に委(ゆだ)ねなければなりません。

枝は、ただただすべての瞬間において、木にくっついていることに集中し努めればいいのです。そんな枝のために農夫である主は、全能なる能力で一寸の落度もなく、一番良い結果に至るよう、明日(あした)を用意していらっしゃるのです。

イエス様がご自身を「ぶどうの木」と私達におっしゃったその理由を、明確に理解したのならば、我々は荒野のような人生を歩むとき、本当に集中して努めるべき事は何かを正しく整理することが大事です。枝の目的は良い実を沢山結ぶことです。しかし、実を結ぶことは、枝が頑張ることで成し遂げられることではございません。枝はぶどうの木に命を懸けてくっついていることに集中すればよいのです。

主の枝である我々にとって、くっつくことは何を意味するのでしょうか。御言葉の黙想とお祈りを通して毎日主と通じ合うことです。毎日の日常からキリストに繋(つな)がれたキリスト者として生きるためにお祈りするのです。我々がキリストと繋(つな)がってさえいれば、それ以外の物は、ぶどうの木であるキリストが、わたしの人生の農夫である主が、すべてを担ってくださるのです。枝の本来の目的である、よい実を沢山結ぶことができるのです。枝は実によって農夫の心を喜ばせることができます。農夫の主を喜ばせる枝は、この世のすべての創(つく)り主(ぬし)である主を得る者になり、この世を得る祝福を頂(いただ)く者になれるのです。

 

 

「み言葉(ことば)に生(い)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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