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30]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いま、私たちに最も大切なのは信じる心です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요한복음21장은 요한복음에 결론의 장이자 기독교의 새 역사를 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장입니다. 요한복음21장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친히 찾아오셔서 그들의 믿음의 견고히 세우며 부활의 주님을 믿는 자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21장을 여는 중요한 키인 1절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여기서 “그 후에”는 요한복음 20장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셨고 그 날 저녁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의 다락방에 나타나셨으며 그로부터 8일 후 다시 다락방으로 제자들을 찾아오신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디베랴 호수에 다시 자신을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제자들이 왜 이때 갈릴리에 있었는지, 갈릴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규명되어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씩이나 자신을 들어내신 그 의미를 바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자들이 갈릴리에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의해서였습니다. 마가복음16장7절에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천사를 통해 이렇게 전했습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왜 갈릴리로 가라 하셨을까요?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음은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으로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서 곧 바로 땅 끝으로 보내시지 않고 왜 제자들을 과거의 삶의 터전인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을까요? 제자들에게 있어서 갈릴리란 어떤 곳입니까? 제자들에겐 삶의 터전이자 생존의 현장이었습니다. 바로 그 삶의 터전, 생존의 현장에서 부활의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그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또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다시 정확히 정립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릴리로 돌아간 제자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요21:3)

제자들은 아무 생각 없이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왜 고기를 잡아야 하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무도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베드로의 행동에 부화뇌동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나가 그물을 던졌지만 단 한 마리의 물고기를 잡지 못한 헛된 수고를 하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 그것도 세 번씩이나 만남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이고, 무의미한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은 결과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성경은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4절입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제자들이 갈릴리에 간 이유는 분명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고 그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갈릴리에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금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은 다시 만날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제자들은 그들 앞에 주님이 이미 나타나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신 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이며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정작 죽을힘을 다해 붙잡아야 할 주님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런 현상들이 나타난 것일까요? 그것은 제자들이 밤을 새워 가며 추구했던 것은 물고기였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물고기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이 추구한 그 물고기는 바로 세상의 재물, 세속적인 부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21장을 여는 1절인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다.는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의 연륜이 아무리 길다 해도, 이전에 아무리 많은 신앙의 체험이 있다 할지라도 지금 나와 함께하고 계신 주님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변화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참된 믿음은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좋은 것들이든, 소중한 것들이든 곧 찾아올 죽음 앞에서 그 모든 것들은 다 빈 그물과 같은 헛되고 무가치 한 것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들, 수고한 모든 일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 이 모든 것들은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이 되신 주님 안에 있고 주님 함께 있을 때만이 헛되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생명의 거룩한 도구가 되어 영원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우리 인생 가운데 항상 함께 하신다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 결코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기도와 말씀 가운데 온전히 거하십시다. 우리가 주님께 꼭 붙어 있는 한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더 얻어 모든 상황 가운데서 승리로 이끌 것이며, 새로운 삶의 문들을 여는 기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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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ま、私たちに最も大切なのは信じる心です

 

ヨハネの福音書21章は、ヨハネの福音書の結論章であり、基督教の新しい歴史を開く重要な意味を持っている章です。ヨハネの福音書21章はよみがえられた主が弟子たちの所に御自ら来られて彼らの信仰を堅く立たせ、よみがえりの主を信じている者たちがどのような道を歩むかを導いてくれる御言葉です。ヨハネの福音書21章を開ける重要なキーになる1節はこのように述べられています。

この後、イエスはテベリヤの湖畔で、もう一度ご自分を弟子たちに現された。その現された次第はこうであった。”

ここで、“この後”はヨハネの20章にイエスのお墓に来たマグダラのマリヤに先ず現れて、その日の夕方に恐れおののいていた弟子たちが居る屋上の間に現れ、その日から8日後再び弟子たちがいる屋上の間に来られた、この後、イエスはテベリヤの湖畔にご自分を現されたという流れを表しています。

それでは、この時点で、弟子たちがどうしてこの時ガリラヤにいたか、ガリラヤで何をしていたか、疑問が生じます。この疑問が明らかにされないと、イエスが弟子たちに3度も御自分を現された意味が分かり難くなります。今、弟子たちがガリラヤにいたのはイエスの命令による行動でした。マルコの福音書16章7節によみがえられた主はご自分のよみがえりを最初に目撃したマグダラのマリヤに御使いを通してこのように伝えられました。

“ですから行って、お弟子たちとペテロに、『イエスは、あなたがたより先にガリラヤに行かれます。前に言われたとおり、そこでお会いできます。』とそう言いなさい。”

よみがえられた主は弟子たちに何故ガリラヤに行きなさいと言われたのでしょうか。主が弟子たちを呼ばれたのは地の果てまで福音の証人として立たせるためです。では、そうであるなら、エルサレムで直ちに地の果てに送らず、いったいどうして、弟子たちを過去の生計を立てていた場であったガリラヤで会いましょうと言われたのでしょうか。弟子たちにとってガリラヤはどのような意味がある場所でしょうか。彼らには生計を立てていた場であり、いのちを保つ場でした。即ち、生計を立てていた場であり、いのちを保つ場において、よみがえりの主を信じることが何を意味し、よみがえりの主の証人になるということがどのような意味かをもう一回しっかりと立たせる時間が必要だったのです。ところが、ガリラヤに行った弟子たちはそこで何をしていたでしょうか。

“シモン・ペテロが彼らに言った。「私は漁に行く。」彼らは言った。「私たちもいっしょに行きましょう。」彼らは出かけて、小舟に乗り込んだ。しかし、その夜は何もとれなかった。”(ヨハネの福音書21:3)

弟子たちはただ何も考えず、漁に行きました。漁に出る理由や意味も考えずにただペテロの行動に合わせただけだったのです。漁に出て網を降ろしましたが、たった一匹も取れない、成果で見ると、無駄な時間を過ごしてしまいました。弟子たちがよみがえりの主に出会って、しかも三回も会ったのにもかかわらず、盲目的で無意味なことにエネルギーを傾けた挙句、彼らが如何に大事なのを失っていたかを聖書ではこのように明らかにしています。4節です。

   “夜が明けそめたとき、イエスは岸に立たれた。けれども弟子たちには、それがイエスであることがわからなかった。”

弟子たちがガリラヤに行ったのは、確かに主が言われたからであり、彼らはみことばに従ったからです。ですから、彼らが今、ガリラヤですべきことは、再び会える主を待つことでした。ところが、弟子たちは彼らの前に現れた主にまったく気が付きません。弟子たちに今、最も重要なのは、よみがえりの主に会うこと、そして、主のみことばを聞くことです。しかし、死ぬ気で集中すべき主が眼にすら入ってきません。では、どのようにして、このようなことが起きたのでしょうか。それは、弟子たちが夜を明かしながら求めたのが、魚だったからです。弟子たちは主に気が付かないほど、魚に心を奪われていました。言いかえれば、弟子たちが求めた魚とは、世の財と世俗の富など彼らが慕い求める世の価値を表わしているのです。

では、ヨハネの21章の出出しの1節、“この後、イエスはテベリヤの湖畔で、もう一度ご自分を弟子たちに現された。”が、私たちにくれる教訓は何でしょうか。信仰が長く続いたとしても、以前数多い信仰の体験があったとしても、今、私と共におられる主に気が付かないなら、今、この瞬間、父なる主を信じる信仰はどのような意味があり、また、まことのキリスト者として真の変化がどうして起こったと言えるでしょうか。

信徒の皆様、まことに信じる心は、私と共におられる主を信じる心から始まります。今、この瞬間も、私と共におられる主を信ずる心がないなら、今、手に持っている素晴らしいものや大切なものなどは、直ちに訪れる死の前で空の網のような無駄で無価値なものになりかねません。世で生きる間、わたしたちが歩む道、力を注いでしたすべてのこと、そして、大切な人たちとの出会い、このようなことはよみがえられて永遠なるいのちである主の中にいて、主とともにいる時こそ、無駄で無意味なことに終わらず、いのちの聖なる道具として用いられ、永遠につながっていくのです。

主こそ私たちと共におられるなら、世を生きる間、決して乏しいことはありません。主から離れないように常に祈りとみことばの中に留まりましょう。私たちが主にくっついている限り、主から力を益々得て、どのような状況に置かれても勝利の道に導かれ、新しい人生の戸を開く奇跡に会うでしょう。

「み言葉(ことば)に生(い)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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