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4]하나님이 내시는 길이 지름길입니다 主(しゅ)の示す(しめ)導き(みちび)が近道(ちかみち)です

하나님이 내시는 길이 지름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현실은 녹녹하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다들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한 사람 때문에 한반도 정세가 마치 살 어름 판을 걷고 있는 듯합니다. 그 어떤 전문가들도 이런 혼란한 국제 정세에 대해 뚜렷한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인간들 수준에서 문제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수준에서는 이런 현실은 전혀 이야기 다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고”(43:16)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다’와 ‘큰물’은 출애굽 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때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길에 홍해바다 에 가로막혀 있었고, 뒤에서는 자신들을 죽으려고 애굽의 친위대 3000명의 군사들이 달려오고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 이스라엘이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고안해 낼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이란 고작 모세를 원망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하나님이 내시는 길은 도저히 길을 낼 수 없는 큰물로 가득한 바다에서 길을 내신다고 말씀합니다. 그것도 그냥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신 길은 지름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항상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좋은 미래가 이 길 저 길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우리의 경험과 지식으로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지으시고 나의 갈 길을 친히 계획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모르지만 도저히 연결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길들을 연결해서 반드시 약속된 그 좋은 목적지까지 이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바다에도, 광야에도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향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을 무엇입니까?

첫째는 창조주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길을 걸으면서 항상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지식을 갖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우상숭배를 하고 세상의 길을 걸어가게 된 그 근본적인 원인은 이스라엘 인도하시는 분이 누구인지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43:15)

둘째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미래를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갈 때 꼭 기억하며 가야 할 것은 과거의 길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나쁜 습관들, 후회, 죄책감, 실패에 대한 열등감, 성공에 대한 자만심 모두를 확실히 끊어버릴 때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즌을 향해 첫 발걸음을 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반드시 지난 과거를 청산해야만 합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끊어 버려야 합니다. 새롭게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길로 가려면 과거에 대해 확실한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43:18)

셋째는 하나님의 길을 열려면 반드시 믿음의 첫 발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바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이 되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43:19)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새 일을 언젠가 행할 것’이라고 하지 않고 이미 ‘새 일을 행하셨다.’고 이미 시작 되었다는 현재진행형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을 듣고 ‘아멘’ 하기 전부터 이미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움직임을 볼 수 없는 우리의 믿음 없는 눈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우리는 기도와 말씀으로 영적인 눈이 흐려지거나 닫히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따라가면 때로 그 길이 죽을 것 같은 광야지라도, 그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돌아가는 길처럼 보일지라도 그 길은 반드시 지름길이 되어 우리에게 약속한 목적지까지 가장 안전하고 가장 빠르게 도달하게 하는 길입니다.

꼭 기억합시다. 지금 어떤 처지에 있든 세상을 지으시고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지난 과거에 묶이지도 집착도 말고 오직 현재 나와 함께 계셔서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만 바라 봅시다. 무엇보다 그 새일 일을 행하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모든 말씀 앞에 오직 순종의 길을 걸어가도록 합시다.

 

主(しゅ)の示す(しめ)導き(みちび)が近道(ちかみち)です

 

今日(こんにち)を生きる我らの現実は、決して満たされてい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どの国も経済的に苦しいとわめいております。キム・ジョンウン一人の人間のために、朝鮮半島の情勢がまるで、薄氷を踏むがごとしの状況にあります。どんな専門家も、今の国際情勢の混沌を治める、これといった解決策を示すことができません。道が見えないのです。しかし、これは人間の目線からの問題なのです。全能なる主において、この現実は違うように見えるのです。

「海(うみ)のなかに大路(おおじ)を設け(もう)、大いなる(おお)水(みず)の中(なか)に道(みち)をつくり」(イザヤ書43章16節)

主のおっしゃる「海」と「大いなる水」は、エジプトから逃れたイスラエルの民が、紅海という障壁に妨げられたことを指します。当時、イスラエルの民が行く道は、前は紅海によって塞がれ、後ろから攻めてくるエジプトの精鋭軍三千名の兵士に挟まれた、絶体絶命の状況にありました。その最中、イスラエルの民がその危機を脱する術(すべ)は、何があったのでしょうか。

彼らにできることは、ただ、モーセを恨む事しかありませんでした。しかし、主は彼らにこのようにおっしゃったのです。「海のなかに大路を設け、大いなる水の中に道をつくり」。主がお造りなる道は、到底、道ができそうもない、沢山の水で溢れている海に道を造られるとおっしゃっています。しかも一番都合の良い、近道だとおっしゃいます。

私達の人生は、常に我らをお創りになった主の目線から物事を考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わたし達のより良い未来が、どの道を辿れば行き着くのか、私達の経験や知識からはわかることができません。しかし、私達を創られ、私達の行く道を自ら計画してくださった主は、私達には知りえない道と道の繋ぎを成し遂げ、約束された最良の目的地へと、必ず導いてくださるのです。

それでは、海でも、荒地でも道を造られる主に向かって、私たちがすべき事は何でしょうか。

一つ目は、創造主の主を信じる信仰を持つことです。

人生の道を歩みながら、我々は常に、我々が信じる主が、どんな方なのか、知識を得るように努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イスラエルの民が、主に反して偶像を信じ、世の中の道を歩んでしまったその原因は、イスラエルを導いてくださる方への正しい知識がなかったからです。主は、我々に向けてこのようにおっしゃいます。

「わたしは主(しゅ)、あなたがたの聖者(せいじゃ)、イスラエルの創造者(そうぞうしゃ)、あなたがたの王(おう)である」。(イザヤ書43章15節)

二つ目は、過去に執着することなく、主に導かれる未来を期待することです。

我々が主の導く道を歩むとき、過去の道に執着してはならないことを心得てください。我々の過去の悪しき習慣、後悔、罪意識、失敗による劣等感、成功経験による傲(おご)り、それらを断ち切る時にこそ、未来に進むことができます。新しいステージへと踏み出すことも大切ですが、それだけでは足りないのです。必ず、過ぎた過去の清算を成し遂げなければなりません。また過去に戻る余地を完全に断ち切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新しく開いてくださる主の道に進むため、終止符を打た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あなたがたは、さきの事(こと)を思い出して(おも  だ)はならない、また、いにしえのことを考えて(かんが)はならない。」(イザヤ書43章18節)

三つ目は、主の道を開くには、必ず信仰の最初の一歩を踏み出さないとならないのです。

今も生きておられ、全能なる主を信じる信仰は、新しい事をなす主に遣(つか)わされる歴史の主人公になれる唯一の道です。

「見よ(み)、わたしは新しい(あたら)事(こと)をなす。やがてそれは起る(おこ)、あなたがたはそれを知らない(し)のか。わたしは荒野(あらの)に道(みち)を設け(もう)、さばくに川(かわ)を流れ(なが)させる。」(イザヤ書43章19節)

この御言葉をよく吟味すると、主が「新しい事を何時かなす」ではなく。すでに「新しい事をなしている」という、事がすでに始まっているということがわかります。主は、我々が御言葉に「アーメン」と答える前から、すでに事をなしておられるのです。即ち、主が動いてないのではなく、その動き(御業)を目にすることができない、我々の信仰に問題があるのです。なので、我々は日々の祈りと御言葉によって聖霊に満たされ、視野が濁り暗むことがないよう努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主の導く道を歩む時、一見死に満ちた荒地であっても、その道は命の道なのです。前が見えず、遠回りに思えても、その道は必ず近道となって、我々を約束された目的地まで、一番速く導いてくれる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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