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1] 새 일은 묵은 땅을 기경할 때 가능합니다 新しいことのためには耕地を開拓するのが先決です

새 일은 묵은 땅을 기경할 때 가능합니다

건강한 몸을 위해선 반드시 바른 생활습관과 바른 식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인 원리도 동일합니다. 건강한 영적 상태를 위한 메카니즘이 있습니다. 건강한 영적 습관을 형성해야 합니다. 건강한 영적 습관은 오직 말씀이 삶의 원리와 방식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는 예레미야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의 모습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존재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반응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었는지를 의심할 정도입니다. 이런 상태에 이르게 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진단은 이렇습니다.

‘유대와 이스라엘 사람에게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묵은 땅을 갈고’(3)

유대 나라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완전히 떠나버렸고 영적으로 완전히 타락해서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진 그 이유를 묵은 땅 같이 굳어 버린 마음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삶의 대한 결과는 하나님의 혹독한 심판이었습니다. 유대백성들이 이런 묵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오래된 잘못된 영적 습관이 만든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묵은 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잘못된 영적 습관은 무엇일까요? 잘못된 영적 습관이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인도하신 말씀을 버리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산 불순종이 삶의 습관이 된 것입니다. 죄의 행위가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하면 그것은 묵은 땅과 같이 단단한 마음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벌인 죄의 습관은 무엇입니까?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2:13)

유대백성들이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범한 두 가지의 죄의 성향이 무엇인지 좀 더 쉽게 표현해 준 선지자가 호세아입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저희를 징계하리니 저희가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저희를 치리라”(호10:10) 유대백성들이 범한 두 가지의 죄가 무엇인지 호세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10:13)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지속적으로 지은 죄 하나는 ‘네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거부하고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죄는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한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용사가 많음 즉 강한 군대가 자신들을 지켜줄 힘으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죄는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높인 교만한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 불신의 마음으로 산 것입니다. 교만과 불신의 죄는 영적 건강도를 해치는 거침돌이자 치명적인 장애물로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탄의 날카로운 무기입니다. 이런 죄의 습관이 우리의 마음 밭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우리의 마음 밭을 쟁기질을 해서 땅을 갈아엎어야 옥토의 마음 밭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럼 쟁기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해야 될 마음의 쟁기질은 무엇입니까? 이 대답으로 주님은 바울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빌립보서313-14절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

농부는 반드시 묵은 땅은 기경하듯 우리의 마음도 단단한 마음의 되지 않고 항상 옥토와 같은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3가지의 쟁기질이 필요함을 말씀합니다.

첫째는 인생의 바른 목표를 항상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난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셋째는 앞의 푯대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입니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는 반드시 바른 생활습관과 바른 식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건강한 영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른 영적인 습관을 형성해야 합니다. 바른 영적 습관을 위해서는 마음의 쟁기질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마음을 기경할 때 하나님은 이런 약속하셨습니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10:12) 이와 같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혜의 단비를 맞을 때 우리의 삶은 이런 은혜를 받게 됩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저희는 곡식 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될 것이니라.’(14:7)

이렇게 묵은 땅을 기경한 후 하나님으로부터 내리시는 은혜의 비를 맞는 마음의 밭은 평강과 생명 넘치는 하나님의 풍성한 에덴동산의 마음이 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 밭을 가질 때 모든 하나님 말씀에 앞에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광야의 길을 내고 사막을 생명의 강을 흐리게 하여 하나님의 새 일을 이루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新しいことのためには耕地を開拓するのが先決です

 

新しい(あたら)ことのためには、耕地(こうち)を開拓(かいたく)するのが先決(せんけつ)です。

健やかな体を作るためには、良い生活習慣と良い食習慣が必要です。霊的な原理も同じです。健やかな霊の状態のためにはメカニズムがあります。 健やかな霊的な習慣を作るのが大切です。健やかな霊的習慣はただみ言葉にあって生活の原理と方式を築き上げることです。最近、私たちはエレミヤを黙想しながら父なる主を信ずる者として理解に苦しむほどユダの民たちが主に対して不信仰な姿を示すのを見ています。ユダの民たちが主の存在に対して、主を認識もできないのです。主を全く知らない人のように反応している姿が見られます。実にユダの民たちが主を信じたひとたちであったか疑われるほどです。このような状況に陥ったイスラエル民たちに対する主の診断はこうです。

‘まことに主(しゅ)は、ユダの人(ひと)とエルサレムとに、こう仰(おお)せられる。「耕地(こうち)を開拓(かいたく)せよ。」’(3節)

ユダは主から完全に離れてしまい、霊的に完全に堕落して回復不能の状態に陥ったその理由が開拓してない耕地のように頑(かたく)なな心のためだと仰っています。このような心の結果は主の厳しい裁きでした。ユダの民たちがこのような耕地のような心を持つようになったのは、長年の誤った霊的習慣が齎した結果です。

そうなら、ここで開拓されていない耕地のような頑なな心にならざるを得なかった彼らの誤った霊的習慣は何でしょうか。誤った霊的習慣というのは、主が教えられて導かれたみ言葉に背いて自分が主導的に生きた不従順が生活の習慣になったのです。ユダの民たちが犯した罪の習慣は何でしょうか。

わたしの民(たみ)(は二(に)つの悪(あく)を行(おこ)なった。湧(わ)き水(みず)の泉(いずみ)であるわたしを捨(す)てて、多く(おお)の水(みず)を、水(みず)をためることのできない、こわれた水(みず)ためを自分(じぶん)たちのために掘っ(ほっ)たのだ。”(エレミヤ書2:13)

ユダの民たちが持続的に主の前で犯した二つの罪が何だったかホセアにもっと易しく表現されています。

わたしは彼ら(かれ)を懲らしめよう(こ)と思う(おも)。彼ら(かれ)が二つ(ふた)の不義(ふぎ)のために捕えられる(とら)とき、国々(くにぐに)の民(たみ)は集められて(あつ)彼ら(かれ)を攻める(せ)。”(ホセア書10:10) ユダの民たちが犯した二つの罪が何だったのかホセアはこのように言います。

あなたがたは悪(あく)を耕し(たがや)、不正(ふせい)を刈り取り(か   と )、偽り(いつわ)の実(み)を食べて(た)いた。これはあなたが、自分(じぶん)の行ない(おこ)や、 多く(おお)の 勇士(ゆうし)に拠り頼んだ(よ  たの)からだ。”(ホセア書10:13)

イスラエルの民たちが主の前で持続的に犯した罪の一つは、‘自分の行い’に拠り頼んだことです。主が導かれた道を拒み、自分の行いに頼る道を選んだということです。
もう一つの罪は‘多くの勇士に拠り頼んだ’ことです。イスラエル民たちは多くの勇士、即ち強い軍隊が自分たちを守ってくれる力だと信じたのです。

この二つの罪は主の前で自分を高らかにした傲慢な心と主のみ言葉を信頼しない不信の心で生きたことです。傲慢と不信の罪は霊的な健康度を損なう引っかかるものであり、致命的な障害物で私たちの心が主に集中できないようにさせるサタンの鋭い武器です。このような罪の習慣で私たちの心の地が頑なになります。ですから、私たちは毎日私たちの心の地を開拓して地をすき返してこそ良い心の地として維持することができます。

では、開拓というのは具体的に何を意味しますか。私たちがすべき心の開拓は何でしょうか。この答えを主はパウロを通してこのようにおっしゃいました。ピリピ人への手紙3章13-14節です。

‘兄弟(きょうだい)たちよ。私(わたし)は、自分(じぶん)はすでに捕えた(とら)などと考えて(かんが)はいません。ただ、この一事(いちじ)に励んで(はげ)います。すなわち、うしろのものを忘れ(わす)、ひたむきに前(まえ)のものに向かって(む)進み(すす)、キリスト・イエスにおいて上(うえ)に召して(めして)くださる神(かみ)の栄冠(えいかん)を得る(える)ために、目標(もくひょう)を目指して一心(いっしん)に走って(はし)いるのです。’

農夫が耕地を開拓するように私たちの心も頑なな心にならないでいつも良い地のような心を維持するためには三つの開拓が必要だと仰います。

一つ目は、人生の正しい目標を常に心に刻むことです。

二つ目は、過ぎた過去に縛られない心を持つことです。

三つめは、前の目標に向かって最善を尽くすことです。

健やかな体を作るためには、必ず良い生活習慣と良い食習慣が必要です。健やかな霊的な状態を維持するためには良い霊的習慣をつけるのが必要です。良い霊的習慣のためには心の開拓が必ず必要です。心を開拓するとき、主はこのように約束されました。

あなたがたは耕地(こうち)を開拓(かいたく)せよ。今(いま)が、主(しゅ)を求める(もと)時(とき)だ。ついに、主(しゅ)は来て(き)、正義(せいぎ)をあなたがたに注(そそ)れる。’(ホセア書10:12)このように主から正義が注がれるとき私たちは恵みの中にいます。

‘彼ら(かれ)は帰って(かえ)来て(き)、その陰に(かげ)住み(す)、穀物(こくもつ)のように生き返り(いきかえり)、ぶどうの木(き)のように芽(め)をふき、その名声(めいせい)は レバノン(ればのん)のぶどう 酒(さけ)のようになる。’(ホセア書14:7)

このように耕地を開拓した後、主から正義が注がれる心の地は、平安といのちが溢れる主の豊かなエデンの園の心になるでしょう。このような心の地になると、すべての主のみ言葉に聞き従う道を歩むことができます。このような信仰の人たちは荒野に道を、荒地に川を設けて主の新しい事を成す人生にな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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