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5] 새 일은 묵은 땅을 기경할 때 가능합니다(3) 新しいことのためには耕地を開拓するのが先決です(3)

새 일은 묵은 땅을 기경할 때 가능합니다(3)   

세계에서 가장 크고 최고의 군사력을 갖춘 항공모함이 미국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니미츠호입니다. 이런 거대한 항공모함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배 끝에 있는 작은 키입니다. 또한 그 키는 한 항해사의 조종에 의해 그 큰 배가 이리 가기도 하고 저리 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라는 작은 키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주인이시면 말씀을 사랑하여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삽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주인이 세상이면 세상을 사랑하고 욕심을 따라 삽니다. 사람은 성도이든지 불신자이든 마음의 주인이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배, 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킬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음은 생명의 근원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세상을 헛되게 살고 그 불행한 삶을 넘어 사울 왕처럼, 가룟 유다처럼 망하는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 밭은 옥토와 같은 마음이 있고 나쁜 마음인 길가와 같은 마음, 돌밭 같은 마음,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십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가시밭과 같은 묵은 마음 밭에 대해 주님은 마태를 통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마13:22)

가시떨기 속에 떨어진 씨는 우선 흙 속에 파묻히고 싹이 틉니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은 말씀을 들은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의 씨가 땅에 떨어져 움이 트고 싹이 자라듯이 한동안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가시떨기 속에 떨어진 씨앗은 발아과정성장과정에는 문제가 없지만 결실과정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땅에 뿌려진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씨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헛됨을 끝납니다.. 그러니 결실과정의  문제는 아주 심각한 결과에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 밭을 항상 잘 살펴야 하고 악에 익숙해져 황폐해지고 굳어져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진단은 세상으로부터 받는 두 가지의 유혹 때문임을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이생의 염려’의 유혹입니다.

주님은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생의 염려’는 말씀은 듣고 있지만 계속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을 사는데 육신에 마음이 빼앗긴 사람들입니다. 육신의 문제에 대한 집착은 신앙의 결실을 치명적인 장애물입니다.

둘째로 ‘이생의 유익과 쾌락’의 유혹입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물질의 부족함에 오는 염려뿐만 아니라, 소유를 즐기려는 쾌락도 하나님 말씀이 결실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임을 말씀 합니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둘 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면에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물질에 더 집착할 수 있습니다. 물질의 여유가 있기 때문에 그 물질을 가지고 누리고 싶은 유혹에 더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세상을 사는 동안 이 육신의 연약함을 약점으로 삼이 사탄은 그 유혹의 공격의 고비를 늦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합니다. 굳어진 마음이 회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중요한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36:26)

성령만이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기경시켜 부드러운 마음 즉 옥토와 같은 마음 밭으로 회복시켜주시는 유일한 분입니다. 우리 마음이 성령님의 강력한 지배를 받아야만 우리 마음은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기경되고 옥토와 같은 마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성령님이 우리에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누가복음11장13절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기도하는 자에게 하늘 아버지께서 왜 좋은 것 많은 데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육신을 가진 우리들이 자주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자꾸 앞서다보니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저버리는 단단한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이 성령님이시며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이 욕심이 아닌 오직 말씀을 따라 가도록 인도해 주시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에 이미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의 마음을 기경하고 새 마음으로 변화시켜줄 것입니다. 더 이상 나의 뜻과 욕심을 이루려고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닌 오히려 잘못되고 이기적인 내 뜻과 욕심을 꺾고 자원하고 기뻐함으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이런 신앙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고 싶습니다. 정말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삶에 목숨을 걸 수 있는 그런 멋진 신앙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新しいことのためには耕地を開拓するのが先決です(3)

 

世界で一番大きく、最高の軍事力を備えた航空母艦は、アメリカ海軍が保有する「ニミッツ」です。この巨大な空母の方向を動かすのは、船の端にある小さい舵です。また、その舵をとる、一人の航海士の操縦によって、巨大な空母はあっちへこっちへと進みます。

我々の人生も同じです。一人の生涯を左右するのは、心という小さな舵です。また、その心の主人が主であるのなら、御言葉を愛し、従順する生き方を選びます。しかし、その心の主人が世間であるのなら、世間の波にのまれ、欲望の向くままに生き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人は、聖徒であっても、そうではなくても、心の主人がすべての思いと行動を操縦します。

そこで、イエス・キリストは弟子たちに、自分の心を固く守ることをお告げになりました。

心は生命の源です。心を守ることができないと、虚しい人生を生きることになり、その不幸な生涯は、サウル王、イスカリオテのユダのように、滅亡の人生を迎えるからです。

イエス様は、我々の心の畑は、良い土のような心と、悪い心である、道端のような心、岩場のような心、茨の中のような心があり、これらは主を逆らう心だとおっしゃいます。先週に引続き、茨の中のような固い心についてお話しいたします。主の御言葉です。

「いばらの中(なか)にまかれたものとは、御言(みことば)聞く(き)が、世(よ)心づかい(こころ)富(とみ)惑(まど)わしとが御言(みことば)をふさぐので、実(み)結ばなく(むす)なる人(ひと)のことであ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1322節)

茨の中に落ちた種は、まずは土の中で芽を出します。そこまでは問題ございません。しかし、イエス様はこのような者は、御言葉を聞いた者とおっしゃいます。御言葉の種が土から芽生え、暫くは問題ないように見えます。茨の中で芽生えた種は、発芽過程と成長過程は大丈夫ですが、実を結ぶ過程で問題が生じます。

土に蒔かれた種が成長して実を結べないのなら、その種は何の意味があるでしょうか。我々の信仰も実を結ぶことができないのなら、虚しい信仰生活の末になります。実を結ぶ過程の問題は、深刻な結末を迎えるのです。なので、我々は常に心の畑の状態を顧み、悪にのまれ荒廃して固くなって実を結ぶことができなくなったのならば、その理由を、正確に突き止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について主は、世間による二つの誘惑に起因するとおっしゃいます。

一つ目は、人生の思い煩い(おも わずら)誘惑(ゆうわく)です。

主は、「人生の思い煩いや富や快楽に覆いふさがれて」実を結ぶことができないとおっしゃいます。ここで「人生の思い煩い」とは、御言葉は聞いてはいるが、絶えず何を食べるか、飲むか、着るかを煩う心のです。人生を生きる上で、肉体に心を奪われた人達です。肉体の問題に執着してしまうと、信仰の実りの妨げになります。

 

 

 

 

二つ目は、富(とみ)快楽(かいらく)誘惑(ゆうわく)です。

人生を生きる中で、金銭の乏しさゆえの煩いだけでなく、富からの快楽も御言葉の実を結ぶ妨げの原因になります。表れ方は異なりますが、二つとも御国よりも世間を愛しているという面では同じ問題を抱えた人たちです。貧しさゆえに物に執着し、豊かさゆえにそれに溺れ、快楽の誘惑に陥りやすいです。我々が肉体の内に身を置いて生きる間、この肉体の弱点をサタンは見逃さず誘惑と攻撃を緩めないのです。

我々は、このためにお祈り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固い心を回復することは、主の御恵みによってこそ成し遂げられます。それについて主(しゅ)は、このようにおっしゃいました。

「あなたがたに新しい(あたら)心(こころ)を与え(あた)、あなたがたのうちに新しい(あたら)霊(れい)を授ける(さず)。わたしはあなたがたのからだから石(いし)の心(こころ)を取り除き(と のぞ)、あなたがたに肉(にく)の心(こころ)を与(あた)える」(エゼギエル書3626節)

唯一、聖霊様により我々の固い心は耕され、柔らかい心、良い土のような心を回復する事ができるのです。我々の心は聖霊様の強い治まりにより、良い土の心となり、また常に維持することができます。問題は、聖霊様が我々をどう治めるかになります。

「あなたがたは悪い(わる)者(もの)でありながらも、自分(じぶん)子供(こども)には良い(よ)物(もの)与える(あた)ことを知って(し)いる。まして天(てん)父(ちち)求める(もと)者(もの)聖霊(せいれい)与え(あた)てくださる。」(ルカによる福音書1113節)

祈る者に主は、なぜ他でもない聖霊様を与えるとおっしゃるのでしょうか。それは、肉体に宿る我々が、くり返し失敗してしまう理由が「欲」にあるからです。欲が出ると、信仰の本質を失い、主を背いて固い心をまた持ってしまうのです。そんな我々の心を治める事ができる聖霊様は、我々の心が「欲」ではなく「御言葉」に従うよう導いてくださいます。

皆様、祈りましょう。祈りによって既に共におられる聖霊様が、我々の心を耕し、新しい心に変えてくださいます。自分の意思と欲のための信仰ではなく、むしろ自分の意思と欲を打ち下し、自ら喜んで主の御胸と御言葉どおりに生きようとする人になりましょう。私は、愛する聖徒の皆さんと、この信仰の道を歩んでいきます。本当に主お一人で心を満たし、その御言葉を命のように大事にして従順する、そんな素晴らしい信仰の人生を歩んでいき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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