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2] 기도로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祈りにて、主の大路を平らにせよ

기도로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새로운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는”(욥28:24)분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항상 온 천하를 살피시는 이유는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세상의 역사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잘 나고 똑똑하고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일을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맡기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막11:17)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교회는 하나님을 향해 항상 기도의 불을 밝혀야 하는 곳임을 말씀한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몸을 이루는 교회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입니다. 교회의 교회됨, 성전의 성전 됨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불을 항상 밝힐 때 가능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강력한 영향을 줍니다. 실패의 사람도 다시 재도약 성공의 주인공으로 서게 합니다. 망한 사람도 다시 일어날 힘을 얻고 새 길이 열리는 기적을 경험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을 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40:3)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십니다. 왜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말씀하는 것일까요? 광야이든 사막이든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 새로운 삶의 회복과 생명의 풍성한 열매가 가득한 곳이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광야이든, 사막이든 그곳에 하나님이 임하시기 위해선 먼저 하나님께서 오실 수 있는 평탄한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이렇게 이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사40:4)

고대 중동의 길들은 대부분 좁고 평탄치 못해 선발대가 앞서 가면서 왕의 행차를 알리고 그 지역 사람들과 함께 왕이 지나가야 할 길을 보수하고 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 움푹 파인 길을 메우고 우뚝 솟은 산과 언덕은 깎아 고르게 한 것입니다.

말씀에 나오는 골짜기, 산, 언덕 등은 지금 우리 마음의 상태를 비유하기도 합니다. 만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길을 세례 요한이 예비하였던 것처럼 우리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선 우리 또한 마음의 길을 기경하여 마음의 시온의 대로를 준비한다면 주님께서 거침이 없이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시온의 대로로 준비하는 길은 성령의 임재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중요한 약속을 하십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1:4)

예수님께선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당부하시면서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4절에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 주님의 약속하신 것 곧 성령의 세례를 받기를 간구할 때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이렇게 순종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4)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함께 모였고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을 다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선 오로지 기도에 힘쓰고 있는 그 무리들에게 이렇게 역사하셨습니다.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2:4)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바로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이 성령 충만은 모든 사람의 심령을 변화시켜 부흥을 일으킵니다. 부흥은 단순히 성도의 숫자가 갑자기 늘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은 ‘영이 다시 살아난다.’라는 의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부흥은 생명력 없이 사는 그리스도인이 다시 예수의 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이 의무감이 아닌 자원하고 기뻐함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율법적인 삶이 아닌 오직 은혜 안의 삶을 살게 됩니다. 모든 삶이 이익을 추구하는 욕심이 아닌 주님만이 삶의 목적이 되고 주님만 사랑하는 삶이 됩니다. 이런 삶이야말로 참 행복한 인생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인생을 산다면 그는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뿌리를 물가에 뻗은 것 같이 그 어떤 더위와 가뭄이 찾아온다 하여도 두려움과 염려가 없이 항상 시절에 따라 결실을 맺는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인생은 더 이상 세상에 휘둘리는 삶이 아닌 세상을 주도하는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꼭 이런 인생을 살고 싶고 그런 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인생, 이런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길 축원합니다.

 

祈りにて、主の大路を平らにせよ

全能(ぜんのう)なる主(しゅ)は世(よ)の全(すべ)ての歴史(れきし)を司(つかさど)るお方(かた)です。新しい歴史を成しどけるために主がなさることは、地(ち)の隅々(すみずみ)まで見渡(みわた)す”(ヨブ記28:24)ことです。主の御目が常に地の隅々まで見渡される理由は、“その心がご自分と全く一つになっている人々に御力をあらわしてくださる”(Ⅱ歴代誌169)ためです。人の目には世を動かすのは頭がよくて何でもやりこなす財力と権力を持っている者たちだと見えるかもしれません。ところが、世の歴史を司る主は世を変える偉大な事を祈る人たちに託されます。ですから、主は教会にむかってこのように仰います。“わたしの家(いえ)は、すべての民(たみ)の祈(いの)りの家(いえ)と呼(よ)ばれる。”(マルコの福音書1017)

教会の頭である主は、教会は主にあって常に祈りの灯を灯すところだと仰いました。信徒は主の体を成す教会です。信徒は主の神殿です。教会が教会らしく、神殿が神殿らしくなるのは主にあって常に祈りの灯を灯す時こそ可能です。祈りは生活の全ての領域に強力な影響を与えます。失敗した人をも再び跳び上がって成功の主人公として立たせます。倒産した人も再び立つ力を得て新しい道が開かれる奇跡を経験します。主の御心が成される新しい世を開くこともします。ですから、主は預言者イザヤを通してこの時代を生きて行く私たちにこのように仰います。

荒野(あらの)に呼(よ)ばわる者(もの)の声(こえ)がする。「主(しゅ)の道(みち)を整(ととの)えよ。荒(あ)れ地(ち)で、私(わたし)たちの神(かみ)のために、大路(おおじ)を平(たい)らにせよ。」”(イザヤ40:3)

荒野で主の道を整えよと仰います。何故荒野で主の道を整えよと仰ったのでしょうか。荒野であれ、荒れ地であれ、どこでも主のご臨在があってこそ、新しい人生の回復といのちの豊かな実が結ばれるところになるからです。問題は荒野であれ、荒れ地であれ、その所に主が臨まれるためには先ず主が来られる平らな道を整えるのが大切です。そういうわけで、預言者はこのように引き続き言われています。

 “すべての谷(たに)は埋(う)め立(た)てられ、すべての山(やま)や丘(おか)は低(ひく)くなる。盛(も)り上(あ)がった地(ち)は平地(へいち)に、険(けわ)しい地(ち)は平野(へいや)となる。”(イザヤ40:4)

古代中東の道は大体狭くて平らではなかったので先発隊が先に行って王のお出ましを知らせ、その地域の人たちと共に王が通る道を補修して整えたと言います。窪んだ所を埋めて、丘は低くして整えたのです。

また、聖書に登場する谷、山、丘などは、今私たちの心の状態を喩えてもいます。万物の王として来られるイエスの道をバプテスマのヨハネが用意したように私たちの王して来られる主を受け

入れるために私たちも心の道を開拓して心のシオンの大路を整えると、主は妨げられることなく来られます。私たちの心がシオンの大路に整えられるのは聖霊のご臨在がある時のみ可能です。ですから、主は天に昇られる時、弟子たちに大切な約束をしてくださいます。

彼(かれ)らといっしょにいるとき、イエスは彼(かれ)らにこう命(めい)じられた。「エルサレムを離(はな)れないで、わたしから聞(き)いた父(ちち)の約束(やくそく)を待(ま)ちなさい。ヨハネは水(みず)でバプテスマを授(さず)けたが、もう間(ま)もなく、あなたがたは聖霊(せいれい)のバプテスマを受(う)けるからです。」”(使徒の働き1:4-5)

イエスは弟子たちにエルサレムを離れないように仰いながら、もう間もなく聖霊のバプテスマを受けるようになることを約束なさいました。ここで重要なのが4節に“いっしょにいる”事です。いっしょにいて主の約束、即ち聖霊のバプテスマを受けるのを求める時、その約束が成し遂げ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すると、弟子たちは主のみ言葉通りにこのように行いました。

 “みな心を合わせ、祈りに専念していた。”(使徒の働き114)

弟子たちは主のみ言葉通りに心を合わせて祈りに専念しました。そうすると、主は祈りに専念していた人たちにこのように働かれました。

“みなが聖霊に満たされ、”(使徒の働き24)

主に切に求める者に与えられる主の贈り物こそ、聖霊に満たされる、なのです。聖霊に満たされることはすべての人の心と霊を変えてリバイバルを起こします。リバイバルは単に信徒の数が急に増えることを意味するのではありません。リバイバルは‘霊が生き返る’という意味です。

どういう意味でしょうか。リバイバルはいのちの力のないキリスト者が再びイエスの霊で生き返ることです。主を信じる信仰が義務ではなく進んで喜んで生きるようになります。律法に縛られているのではなく、ただ恵みの中で生きるようになります。
利益だけを追っていた人生が主だけが目的になり主だけを愛する人生になります。このような人生こそ、幸いです。このように生きて行くと、まるで水路のそばに植わった木のように、暑くてもききんが訪れても、恐れず思いわずらわず、いつも時が来ると実がなる美しくて幸いな人生になるでしょう。このような人生はもう世に左右されるのではなく、世を主導する力ある人生になります。わたしは是非このような人生を営み、このような信仰の道を歩みたいです。私たちすべてがこのような人生、このような信仰の道を歩むように祝福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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