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9] 남충성 선교사 ‘우리가 받은 영적인 복’ 장원규 목사 ‘한 해에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감사하라!’ ナム・チュンソン 宣教師 「 賜った霊的祝福 」  チャン・ウォンギュ牧師「今年、主が行った奇跡を感謝せよ!」

[2017.1119] 남충성 선교사 ‘우리가 받은 영적인 복’ 

장원규 목사 ‘한 해에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감사하라!’ 

 

에스라3장에서 보면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절기를 지키도록 한 것이 초막절 즉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절기에 담긴 영적 의미를 바르게 깨닫고 살아갈 때 복된 삶을 사는 중요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절기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속의 은혜와 하나님의 백성다움의 회복 그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감이라는 하나님나라의 완성의 핵심인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은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시편107편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과 감사의 고백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앞에 어떤 악한 상황을 만나도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의 증명이자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를 걸어가는 우리를 향해 바라시는 것이 바로 이 믿음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일하시는 근거입니다. 인생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문제는 곧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의 능력 안에서 거룩한 생존의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인생은 마침내 약속의 땅에 이르는 것입니다. 2017년 가운데 동일하게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 여정 또한 항상 함께 하셔서 역사하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세우는 이 시간이 되길 하나님께선 원하십니다. 시편107편에 소개되고 있는 삶의 현장은 어떤 모습이었고 그런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광야에서 방황할 때였습니다.(107:4)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했다는 말씀은 삶의 안정을 찾을 수 없는 늘 불안한 가운데 삶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기본 욕구는 안정감입니다.

우리 가운데 지나간 일 년을 돌이켜 볼 때 ‘마치 광야의 사막 길의 방황과도 같았다.’ 이런 느낌을 갖는 분들이 아마도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안정을 위해 직업을 찾아 방황했던 한 해를 보냈던 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이러했습니다.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7)

둘째는 죄의 사슬에 속박되었을 때였습니다.(107:10)

이스라엘 백성들의 70년의 바벨론 포로생활 그 자체는 사슬에 묶여 있는 삶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런 사슬에 묶이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 죄의 사슬의 고통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사슬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나의 어리석은 결정이, 나의 과오가, 나의 죄가, 내 잘못된 부도덕한 결정이 만든 사슬이었습니다. 그러나 죄악의 사슬에 묶여 죄의 종노릇 하는 절망적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은혜는 이러했습니다. 14절입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

셋째로 질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입니다.(107:18)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병을 얻고 식욕을 상실하고 음식조차 먹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제 거의 죽음을 느끼고 죽음의 문턱 앞에 도달한 모습을 발견 합니다. 식욕을 잃어버릴 정도의 심각한 질병에 빠져 죽음의 문턱 앞에 도달한 그 순간 하나님의 은혜는 이러했습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20)

넷째로 풍랑을 만났을 때입니다.(107:25)

인생을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깊은 풍랑 속에, 바다의 한 복판 속에 빠져서 어쩔 줄 모르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생의 풍랑의 순간들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위기 가운데 처하자 이런 절망적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역사했습니다.

“그들이 이리 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27)

이것이 우리가 살아온 한 해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걸어 온 지나 인생은 누군가에게 사막과 같은 고통이었고, 감옥과 같은 고통이었고, 병상의 고통이었고, 폭풍을 만난 고통이었습니다. 그런 오늘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겁니다. 물론 아직도 그 고통이 진행 중이 분들로 있겠지만 어제 죽을 것 같은 그 고통에서 오늘 우리는 이 은혜의 자리에 이렇게 함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로에서 돌아와 고향에 왔지만 모든 것이 황폐된 그 땅에 내일이 전혀 보장 되어 있지 않는 그 현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편107편1절을 통해 이런 결론의 고백과 선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도 사막에서, 감옥에서, 병상에서, 폭풍이 이는 바다에서 나올 수 없는 그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는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이 지금 이곳에 계시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지금까지 걸어온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며, 지금 이 순간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더 나아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삶의 좌표를 수정하고 새로운 결단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이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중요한 의미임을 기억하고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새로운 마음의 결단을 가지고 주님의 손을 잡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복된 시간이 되길 축원합니다.

 

 

ナム・チュンソン 宣教師 「 賜った霊的祝福 」  チャン・ウォンギュ牧師「今年、主が行った奇跡を感謝せよ!」

 

エズラ3章を見ると捕虜から帰ってきたイスラエルの民が最初にすべきことは例祭を守る事、仮庵の祭り、すなわち感謝祭を守ることでした。例祭に込められた霊的な意味を正しく悟って生きていくことが幸いを生きる重要な道だからです。

例祭は主が与えた“救いの恵みと主の民としての回復”そして“約束の地へ入る”という主の御国の完成の核心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の影です。イエス・キリストで充ちることこそ荒野を生きる全てのキリスト人の人生です。

詩編107編はバビロン捕囚生活を終えて帰ってきたイスラエルの民の讃美と感謝の告白です。バビロン捕囚生活を終えて本国に帰ってきたイスラエルの民が神に讃美と感謝することは、決して簡単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しかし、私たちの前にどのような悪状況に会ってもどのような態度をとるのかがすぐに主への私たちの信仰の証明であり、実です。主が荒野を歩いてる私たちに向かっておられるのが、まさにこの信仰の実だからです。信仰は、主が具体的に働かれる根拠です。 人生のすべての問題は、主が働けばすべての問題が解決されます。だから、人生の問題は、すなわち主への信仰の問題です。信仰の主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主の能力の中で聖なる生活をすれば、私たちの人生は、最終的に約束の地に至ることになります。2017年の中で同じように働いたその主の恵みを讃美し、これから生きて行かなければなら人生の旅も常に一緒におられる主への信仰を丈夫に立てる時間になることを主は望んでおられます。詩篇107篇に紹介されている生活の現場はどのような姿であり、それの中で主の恵みは何でしたか?

 

一つ目は荒野で道を迷う時です。(詩編107:4)

砂漠の道をさまよって泊まる場所見つけなかったの御言葉は、人生の安定を見つけることができない、常に不安な中で生活の様子を語っているのです。人の基本的な欲求は安定感です。

私たちの過ぎ去った今年を振り返ってみると「まるで荒野の砂漠の道のさまよいのようだ。」こんな感じを持つ方が、おそらくあったと思います。生活の安定のために仕事を探してさまよっていた一年を送った方があったでしょう。ところが、生きておられる主の導きは下記のようでした。

“また彼らをまっすぐな道に導き、住むべき町へ行かせられた。”(7節)

 

二つ目は罪のに縛られた時です。(詩編107:10)

イスラエルの民の70年間のバビロン捕囚生活そのものは鎖に縛られている生活でした。イスラエルの民がなぜこのような鎖に縛られたのでしょうか?それは罪のせいでした。この罪の鎖の痛みは、他の人が作ってくれた鎖ではなく、自分で作った私の愚かな決定が、私の間違いが、私の罪が、私の誤った不道徳な決定が作った鎖でした。しかし、罪の鎖に縛られて、罪の奴隷になっている絶望的生活をする時、主の恵みは下記のようでした。14節です。

“主は彼らをやみと死の陰から連れ出し、彼らのかせを打ちかれた。”

 

 

 

 

 

三つ目、病で死ぬことになった時です。(詩編107:18)

私たちが人生を生きる時、病気を得て、食欲を失い、食糧さえ食べることができない状況の中で、今ではほとんどの死を感じ死の顎前に到達した姿を発見します。食欲を失ってしまうほどの深刻な病気に陥った死の顎前に到達したその瞬間、主の恵みはこう注がれました。

“主はみことばを送って彼らをいやし、その滅びの穴から彼らを助け出された。” (20節)

 

四つ目、嵐に出会った時です。(詩編107:25)

人生を生きていると、ある日突然、深い暴風の中、海の真ん中の中抜け仕方を知らず、何もできない、暴風の瞬間を迎えることがあります。このような危機の中、絶望的状況にまで至りますが、主の恵みは、このように働きました。

“彼らはった人のようによろめき、ふらついて分別がれた。(27節)

これは我々が生きてきた一年の様子でした。私たちが歩いてきた人生は誰かには砂漠のような痛みであり、刑務所のような痛みであり、病の痛みであり、嵐にった痛みでした。そんな今日は、今この場にあることでしょう。もちろん、まだその痛みが進行中の方もいらっしゃるでしょう。しかし、昨日の死ぬようなその痛みを持って今日、我々は、この恵みの座に一緒にいるということです。その理由は、「主のいつくしみと人生に行われた不思議なことを行われたからです。」だから捕虜から帰ってき故郷に来ましたが、すべてが破壊され、その土地に明日が全く保証されていない、その現実の前で、イスラエルの民は、詩編107編1節で、このような結論の告白と宣言をしているのです。

  “主に感謝せよ、主は善であり、その哀れみが永遠に続くでしょう。”

過ぎ去った一年の間、私たちも、砂漠で、刑務所で、病床で、嵐の海で抜けることができない、その絶望と恐怖の中から救って下さいました。だから、私たちが望む唯一の望みは、「主が今、ここにおられることです。

 

感謝祭は、これまで歩んできた人生がどんな人生だったのかを振りかえる時間であり、今、この瞬間何の実を結んでいるかを調べる時間です。さらに、ただイエス・キリストに人生の座標を変更し、新たな決断と心構えを持って約束の地に向かって進む時間を持つことが感謝祭を守る重要な意味であることを覚えて、今日は礼拝を通して、新しい心の決断を持って、主と手をつないで、新しい生活に向かって進む幸いな時になるようにお祈りいた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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