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6] 지금은 우리도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今は祈る時です

지금은 우리도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이든 한계가 있고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은혜를 구하는 것은 바로 기도의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흔히 성도들이 게을러서 또는 시간이 없어 기도를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기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사실 알기에 결코 기도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나님 외에 믿을 만한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그리스도인은 기도의 자리를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존 번연은 기도는 내 영혼의 방패요.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재물이요. 기도는 사탄을 향해 휘두르는 채찍이다.”라고 말했고 그는 기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 기도는 호흡으로 생명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도는 성도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축복이자 능력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통하여 역사를 이끌어 가시며, 그 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우리교회는 에스더서를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 속에 개인의 역사와 공동체의 역사를 어떻게 섭리하시는지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한 개인의 인생을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하며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죽음 앞에 서 있는 유다 공동체를 다시 살려내시고 페르시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포로였던 유다인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는 이 놀라운 일들이 어떻게 가능하였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두 번 경험하게 되는데 하나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 유월절이고 또 하나가 에스더서에서 기록하고 있는 부림절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부림절과 유월절의 시기가 아비달 십사일로 같은 날에 지킨다는 점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두 절기를 이렇게 절묘하게 같은 시기로 연결시킨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는 과정에서 이루진 구원입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그 어떤 수고와 노력이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주어진 값없는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기념하여 이스라엘 매년마다 아비달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과정에서 또 한 번 주어진 구원의 은혜가 바로 부림절입니다. 이 부림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삶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믿고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자시며,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시는 분임을 온전히 믿고 오직 말씀만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에스더서의 역사적 배경은 페르시아의 총리가 된 하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살 계획을 세워 왕의 허락을 받아 전국에 공포하므로 유대인들이 진멸을 당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그때 유대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두 인물을 주목하셨고 그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며” 즉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4:1)

그리고 모르드개로부터 양육을 받아 자란 에스더는 당시 왕후였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로부터 유대인들이 처한 상황을 들고 그 또한 이런 태도를 취합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4:16)

에스더 또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민족의 위기 앞에서 선택은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기도의 자리였습니다. 그들 안에는 이기주의도, 이성적 판단도, 자신만을 위한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을 버리고 오직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만을 바라고 의지하겠다는 믿음만이 작동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금식하며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철저한 자기부인입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그런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만을 삶의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당시 포로의 신분임에도, 유대인들의 위기를 끌어안고 목숨 건 기도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의 삶은 그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의 거룩한 도구가 되었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들어내는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오직 의인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분임을 우리들은 이 역사의 무대에서, 이 일본 땅에서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일터에서 증명해 보이는 증인들이어야 합니다. 이런 멋진 인생을 꼭 살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처럼 십자가만을 인생의 자랑과 힘으로 삼고 살아가는 그 인생 앞에 하나님께 어떤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는지 그 주인공이 꼭 되었으면 합니다..

 

今は祈る時です

人間が作ったものは、どのようなものであれ、限界があり、弱点があります。ですから、私たちはこのような事実を常に認識して主の前で自分を低くしてへりくだり、主の恵みで生きる存在です。主の前でへりくだって恵みを求めるのは、ひざまずいて祈ることです。多くの信徒が怠って若しくは時間がなくて祈ることができないと言います。私はこの言葉に同意できません。私たちが祈らない理由は驕り高ぶっているからではないでしょうか。

私たちが一瞬も主の恵みがなくては生きられない存在だと信じていれば、祈りは選択の問題ではなく生存の問題であることを知っているため、決して祈ることを諦めたりはしません。私たちが祈らない理由は、意識であれ無意識であれ、主以外に頼れるものがあるからです。だからこそ、へりくだっているキリスト者は祈りの場を決して離れません。ジャン・バニヤンは“祈りは魂の盾です。祈りは主に捧げる宝物です。祈りはサタンに振り回す鞭です。”と言い、祈りの生活を営みました。

主を信じている民にとって祈りは呼吸に値して命と直ちにつながる最も重要な問題です。祈りは信徒がこの世で味わう最高の祝福であり、力です。何故なら、主は祈る者を通して歴史を率いられ、主の御業に必要なすべてを与えてくださるからです。

最近、本教会ではエステル記を黙想しています。エステル記は主の巨大な歴史の中で、個人の歴史と共同体の歴史をどのように治めてくださるかをドラマチックに見せてくれます。何が一人の人生をあんなにドラマチックにして偉大にしてくださるのか、そして、死の前に立っているユダの共同体を再び生かしてペルシヤ人が捕虜であったユダヤ人が信じている主を信じるようになる驚くべきことがどのように可能であったかを教えてくれます。

イスラエルは歴史的に主の救いの恵みを二回経験しました。一つはイスラエルの歴史の中で最も大切な日である過越しの祭りであり、もう一つはエステル記に記録されているプリムの日です。面白いことは、プリムの日と過越しの祭りの時期がアビブの月の十四日で同じ日に定め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歴史を治める主が二つの大切な日をこのように絶妙に同じ時期に繋がれた理由は何でしょうか。過越しの祭りはイスラエルの民たちが出エジプトする過程で行われた救いです。この過程においてイスラエルはどのような労苦も努力もしていません。ただ主の絶対主権の下で対価なし恵みで与えられたことです。これを記念してイスラエルは毎年アビブの月の十四日を過越しの祭りに定められて守っているのです。

イスラエルの歴史の過程でもう一回与えられた救いの恵みがプリムの日です。このプリムの日は主の民たちの人生はただ全能である主が治められていることを信じ、ただ主だけが救い主であり、すべてを担って下さる方であるのを信じてただ御言葉に聞き従う道を歩む者であることを示します。

 

 

 

 

 

 

 

 

 

 

エステル記の歴史の背景は、当時ペルシヤの総理になったハマンがイスラエル民を滅ぼす計画を立てて王の許しを得て全国にその事実を布告し、ユダヤ人たちが滅ぼされる危機に陥ったところです。その時、ユダヤ人を救われる主の歴史が記録されています。この過程において主は二人の人物に注目されて、彼らを通して救いの歴史を成し遂げられます。

 “モルデカイは、なされたすべてのことを知った。すると、モルデカイは着物を引き裂き、荒布をまとい、灰をかぶり、大声でひどくわめき叫びながら町の真ん中に出て行き、”(エステル記4:1)
ここで、モルデカイは祈っているのです。そして、モルデカイの下で育てられたエステルは当時王妃でした。エステルはモルデカイからユダヤ人が陥った状況を聞いてこのような態度をとります。

“行って、シュシャンにいるユダヤ人をみな集め、私のために断食をしてください。三日三晩、食べたり飲んだりしないように。私も、私の侍女たちも、同じように断食をしましょう。たとい法令にそむいても私は王のところへまいります。私は、死な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したら、死にます。”(エステル記4:16)

エステルも主に祈るのです。この二人が民族の危機の前で取った選択は、主を求めて祈ることでした。彼らには利己主義も理性的な判断も自分の幸せを追う気持ちもありません。ただ、自分を棄ててすべての歴史を治められる方である主を仰いで頼るという信仰だけがあるのです。

彼らが断食しながら叫ぶ祈りは、主以外に他のものを頼ることはしないという徹底した自己否認です。モルデカイとエステルがこのような道を歩むことができたのは、主だけを人生の中心としたからです。モルデカイとエステルがこのような道を歩むことができたのは、祈りを通して聖霊に満たされていたからです。だからこそ、モルデカイとエステルは当時捕虜であった身分にもかかわらず、ユダヤ人の危機を自分の問題にして命を懸けた祈りを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このような信仰は、異邦の地で主の恵みと力の管になり、主の救いの聖なる道具になり、生きておられる主が歴史のあるじであることを現す証人になるようにしたのです。

今の時代を生きている私たちが是非覚えてほしいのは、義人は私のために死なれ、再びよみがえられた天の父なる主の御子イエス・キリストだけを信じる信仰によって生きる者です。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だけが私たちを救われる唯一の方であることをこの歴史の舞台で、この日本の地で、そして、今生活している場で証しする証人です。このような素晴らしい人生を生きることを願います。モルデカイとエステルのように十字架だけが誇りと力になる人生を主がどのように救いの働きを起こしてくださるか経験する主人公になることを願います。

Posted in 主日説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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