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03] 예수님의 오심은 의를 이 땅에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イエス様のご臨在は、義をこの世に成し遂げるためです

예수님의 오심은 의를 이 땅에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삶의 불행을 돈과 권력, 명예 등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불행을 세상 나라의 것들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우리는 결코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불행의 원인이 세상 나라의 것들을 소유의 유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상실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속에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면 우리는 초막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높은 산과 거친 들에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으면 우리는 궁궐에 살아도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위해 세상 나라를 주시기 위함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왜 주님께서 이토록 하나님나라에 집착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위함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만이 이 세상은 진정한 평화가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했던 그 하나님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하나님께서는 의로 통치되는 하나님나라를 통해 평강과 희락으로 가득한 새로운 세상으로 우리들에게 주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지난 주간 에스더서가 끝나고 시편97편을 묵상하면서 제 시선을 고정시킨 것이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자 하나님께서 그토록 세우려하시는 나라입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반드시 회복하고 싶으신 나라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모든 인간에게 꼭 주고 싶고 누리게 하고 싶은 나라였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아브라함의 부르심에 대해 묵상을 했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18:19)

성경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식과 그의 속한 권속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은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여호와의 도’를 지키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걸어가는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자신의 걸어가는 그 길을 걷기 위해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걸어가고 계신 그 길이 어떤 길입니까? 이어진 말씀이 ‘의와 공도를 행하며 걸어가시는 길’입니다. 시편971-2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그 기준과 기초가 바로 의(쯔다카)와 공도(미쉬파트)였습니다. ‘의’라고 말하는 ‘쯔다카’는 법을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공도(公道)’란 ‘모든 사람이 행하는 올바른 도리’를 말하는 것으로 공도로 번역된 미쉬파트는 서로가 서로를 형제로 대우하는 것으로 차별이 없는 사랑과 인간다운 대우를 하는 모습을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약속은 곧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룰 나라로서 의와 공도의 기초 위에 세워질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나라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목적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처럼 주님께서 걸어가신 것처럼 하나님과 함께 의와 공도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중심이 되는 삶 즉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삶은 도대체 어떤 삶입니까?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3:23)

여기서 ‘그의 계명’을 이렇게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의 도’ 즉 하나님께서 우리와 걸어가시길 원하신 그 길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즉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인생의 주가 되게 하고 그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삶의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6-18)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공도가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우신 하나님 나라는 죄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신 십자가사랑으로 이루어 나라로서 말과 혀로만이 아닌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イエス様のご臨在は、義をこの世に成し遂げるためです

 

主を知らない人達は、不幸の理由をお金と権力と名誉を所有できなかったからだと思います。「人生の不幸は、世の中の物を自分の物にできなかったからだ。」これを皆さんはどう思われますか。我々は騙されてはいけません。人間の不幸の原因は、世の中の所有物の有無でなく、主の御国を失ったからなのです。我々の心と考えと暮らしの中に、真の御国の回復があるのならば、藁葺(わらぶき)小屋の中でも幸せに暮らすことができます。深い山の中や荒れた野原でも幸せになれます。しかし、我々の心と考えと暮らしの中に主の御国が失われると、宮殿の中の暮らしも不幸になるのです。イエス様がこの世に人間の身になって来られた目的は、我々のために世の中をくださるためではなく、御国をくださるためでした。

なぜ主は、これほど御国を強調されるのでしょうか。それは我々のためなのです。

御国を頂くことで、この世のまことの平和が訪れるからです。では、主がくださる御国とは、なんでしょうか。

「神(かみ)の国(くに)飲食(いんしょく)ではなく、義(ぎ)と、平和(へいわ)と、聖霊(せいれい)における喜(よろこ)びとである。」

ローマ人への手紙14章17節

主は、義によって治められる御国をとおして、平和と喜びに満ち溢れる新しい世の中を我々にくださることを望んでおられます。先週、エステル記の黙想を終えて詩編97編を黙想しながら、私の視線を固定させたのが、主の「御国」でした。御国は主がこの世を創られた目的であり、主があれほど建てようをする国です。独り子を捧げてでも必ず回復させようとした国です。何より主が自らの姿でお創りになった人間に、なんとしても与えて暮らしてほしい国だという事を気づき、改めてアブラハムをお召しになったことを黙想しました。

「わたしは彼(かれ)が後(のち)の子(こ)らと家族(かぞく)とに命(めい)じ主(しゅ)の道(みち)を守(まも)り、正義(せいぎ)と公道(こうどう)とを行(おこな)わせるために彼(かれ)を知(し)ったのである。これは主(しゅ)がかつてアブラハムについて言(い)った事(こと)を彼(かれ)の上(うえ)に臨(のぞ)ませるためである。」                        創世記18章19節

聖書は、アブラハムとその子孫と彼の家族に向かって主に召された目的は、「主の道を守らせ、義と公道を行わせるために彼を選ばれた」と記しています。

主は、アブラハムに「主の道」を守らせたのです。「主の道」とは「主が歩む道」です。つまり主は、アブラハムと一緒に歩くその道を歩ませるためにお召しになったのです。主の歩む道は、どんな道でしょうか。続く御言葉が、「義と公道を行って歩む道」です。詩編97編1節-2節にこう記されています。

主(しゅ)は王(おう)となられた。地(ち)は楽(たの)しみ、海(うみ)に沿(そ)った多(おお)くの国々(くにぐに)は喜(よろこ)べ。雲(くも)と暗(くら)やみとはそのまわりにあり、義(ぎ)と公道(こうどう)とはそのみくらの基(もとい)である。」      詩編97編1節-2節

主がこの世を治めるその基準と基が、義(ツタカ)と公道(ミシュパト)です。「義」と訳される「ツタカ」は、法を意味するよりも「主との正しい関係」を意味します。「公道」とは、「すべての人の正しい道理」を意味し、公道と訳された「ミシュパト」「互いに兄弟とみなし、差別のない愛と人間らしい待遇を施す姿」を表す単語です。

主がアブラハムと交わされた「アブラハムとその子孫の主になる」という約束は、即ちアブラハムの子孫が成す国が、義と公道を基とし建てられ、揺らぐことのない御国であることを意味します。これが、主がアブラハムをお召しになり、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アブラハムの子孫をお救いになった目的なのです。

それでは、今、私たちに向けて主がお召しなる目的は何でしょうか。その目的は、アブラハムをお召しになったように、主が歩んだ主と共にする義と公道の道を歩むことを望まれるからです。主の義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だけが中心となり、その教えを守って生きることです。

その教えを守って生きることは、どんなことでしょうか。

その戒(いまし)めというのは、神(かみ)の子(こ)イエス・キリストの御名(みな)を信(しん)じ、わたしたちに命(めい)じられたように、互(たがい)に愛(あい)し合(あ)うべきことである。」       ヨハネの第一の手紙3章23節

ここで「その戒め」は、「その道」に代える事ができます。即ち主が我々と歩むことを望まれたその道を、主の義であられる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イエスキリストが我々の人生の主になって、その御子を通して我々に教えてくださった十字架の愛で、お互いに愛しながら生きようとおっしゃっています。お互いに愛する姿はどんな姿でしょうか。

主(しゅ)は、わたしたちのためにいのちを捨(す)てて下(くだ)さった。それによって、わたしたちは愛(あい)ということを知(し)った。それゆえに、わたしたちもまた、兄弟(きょうだい)のためにいのちを捨(す)てるべきである。世(よ)の富(とみ)を持(も)っていながら、兄弟(きょうだい)が困(こま)っているのを見て、あわれみの心(こころ)を閉(と)じる者(もの)には、どうして神(かみ)の愛(あい)が、彼(かれ)のうちにあろうか。子たちよ。わたしたちは言葉(ことば)や口先(くちさき)だけで愛(あい)するのではなく、行(おこな)いと真実(しんじつ)をもって愛(あい)し合(あ)おうではないか。」

ヨハネの第一の手紙3章16節-18節

御国は義と公道によって治められる国です。イエスキリストがこの世に来られ建てられた御国は、罪人のために自らの命を捧げた十字架の愛で成し遂げられた国であり、言葉と口先だけではなく互いに自分を捧げる愛によって建てられ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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