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7] 인생의 수고와 짐은 주님만이 해결자입니다 主こそが人生の苦労と重荷の解決者です

인생의 수고와 짐은 주님만이 해결자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빈부격차를 떠나 모든 사람들에게 붙일 수 있는 보편적인 별명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일 것입니다. 그만큼 인생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 하나가 수고이며, 무거운 짐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모든 수고와 피곤함이 환경의 문제라고 보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환경의 문제가 아닌 믿음의 문제라는데 있습니다. 세상의 수고스러움과 무거움은 믿음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별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세상은 똑 같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것을 느끼는 우리의 마음이 전혀 달라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을 때 세상은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 좋은 예가 다윗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었을 때 다윗 앞에 골리앗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굳게 서 있으면 골리앗 같은 세상이 전혀 두렵지 않지만 그 믿음이 없으면 세상을 살면서 겪어야 하는 삶의 무게는 공포요 두려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서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 수고와 무거운 짐이 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수고와 무거운 짐의 문제는 다분히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수고와 인생의 무거운 짐의 문제를 육신적인 수준에서 덜어 보거나 해결하려고 애를 쓴다는 데 있습니다. 인생의 수고와 무거운 짐의 문제는 세상과 사람이 해결할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삶의 수고와 고단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육체의 쉼을 진정한 쉼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근본적인 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 쉼과 안식에 속아 열심히 쫓아다니지만 우리 삶의 수고는 그와 같은 쉼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은 한 우리의 고단한 삶의 순례는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하나님이 인생의 수고와 짐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쉼과 평안을 주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든 세상에서 참 평안과 안식을 얻으려면 세상과 씨름하지 말고 하나님과 씨름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고단함과 피곤함의 문제를 경제와 과학과 또는 환경을 개선하는 것으로 풀려고 합니다. 삶의 무게는 그와 같은 경제와 과학으로는 줄어들지도 해결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인생의 모든 짐을 해결자시기에 우리가 진정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면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과 평안이 삶에 넘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언제나 생명과 능력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과 법에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기도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는 참으로 쉽지 않고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원죄로 인해 말씀의 순종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부담스러워 하고 말씀의 순종을 멍에로 생각하게끔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치명적인 착각이며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거운 짐이 아니며 부담스러움이 아닌 참 평안과 안식과 생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은 무거 운 것이 아니로다.(요한일서5:3)

이 말씀을 꼭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나를 죄에서 구원하여 참 자유를 주시고 영생과 평안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나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은 곧 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참된 쉼과 평안과 기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지금 우리는 대림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대림절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며 고단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긍휼이며,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 순종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이 오히려 우리의 인생의 모든 짐을 가볍게 하는 생명의 길임을 믿고 더욱 주님을 찾고 구하는 자리로 더 깊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主こそが人生の苦労と重荷の解決者です

 

世の中のすべての人に、地位や貧富の差を問わず、どんな人にも普遍的にみられる特徴は「苦労と重荷(おもに)を背負った者」であると考えます。それぐらい、人生の中で避けられないのが「苦労」であり、「重荷」ではないでしょうか。問題は、多くの人々がすべての苦労と重荷が環境のせいだと考えることです。しかし、人生の苦労と重荷は、環境ではなく、信仰の問題です。世の中の苦労や重荷は、信仰がある人と無い人で、差があるようには見えません。

しかし、我々を苦しめる世の中が同じでも、主に対する信仰の有無によって、それを感じる我々の心は、全く異なるのです。全能なる主の信仰がある時、世の中の問題は我々を苦しませるものではなくなります。その良い例がダビデです。全能なる主が共におられることを真心から信じた時、ダビデの前のゴリアテは、何の問題ではなくなりました。これは、世の中を生きる我々に、同様に用いられます。全能なる主への信仰が揺るぎないものになると、ゴリアテのような世の中も恐れるものはないです。しかし、信仰がない人にとって世の中を生きる重みは、恐怖と恐れ以外、何物でもないのです。

イエス様は「すべて重荷を負って苦労している者は、わたしのもとにきなさい。」 とおっしゃいます。ここでまず考えるべき事は、そもそも人生の苦労と重荷になった原因が何であるのかを探ることです。それは、人間の罪から始まります。ですから、人間の苦労と重荷の問題は、多分に霊的な問題である事がわかります。しかし、人々は、苦労と人生の重荷を自分自身(肉身のレベル)で減らそうとしたり、解決しようと試みます。人生の苦労と重荷の問題は、世間や人が解決できるものではないのです。それは、主のみが解決できます。大体の人々は、肉体の休ませることを「休み」と考えます。それは主が人間に与えてくださった元々の「休み」ではありません。多くの人が、偽りの休みと安息に騙されて、一生懸命求めても、私達の苦労は、それによって報われることはないのです。主に向かって、主の下に帰える事以外に我々の苦難は終える解決策がないのです。主は、人生の苦労と重荷を自らの力では解決することができない我々を憐れみ、我々に安息と平安を与えるために、人間の体をもってこの世に訪れてくださいました。なので、我々がこの厳しい世の中で真の安息と平安を得るためには、世の中で悩むのではなく、主の前で悩まなければなりません。

 

 

 

 

 

 

 

 

人々は、人生の苦労と疲れの問題を経済的に、科学的に、もしくは環境を改善することで、解決しようとします。しかし、人生の重荷は、このような経済的、科学的に減らすことはあっても、解決はできないのです。主のみ、人生のすべての重荷を解決できるため、我々が真に心得るべき事は、主と共にいることです。主が共におられると、いつも我々の人生が喜びと平安に満ち溢れるものになります。即ち、常に我々に命と能力と希望をくださる主と共にい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は、主と共にいるとはどんな事でしょうか。

それは、主の御言葉(おことば)とみ旨(むね)と戒め(いまし)に聞き従い生きることを意味します。主の御前で自分自身を伏せしめる事、主だけを頼りお祈りする事を意味します。

しかしそれは、我々にとって容易い事ではありません。なぜなら、我々は罪によって、御言葉を従い主に頼る事を心苦しく思い、御言葉に聞き従うことを「重り(おも)」と考えるようになったからです。しかし、それは我々の致命的な錯覚であり、サタンのまどわしであります。主の御言葉は、決して重荷ではなく、負担になる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それは、真の平安と安息であり、命なのです。

「神(かみ)を愛(あい)するとは、すなわち、その戒(いまし)めを守(まも)ることである。そして、その戒(いまし)めはむずかしいものではない」 (ヨハネへの第一の手紙5章3節)

この御言葉を、必ず心得てください。主は、我々を愛する方です。独り子を惜しまず、与えてくださっただけでなく、彼を十字架につけられ、私を罪から救ってくださり、真の自由と永遠の命と、平安をくださったのです。その主が、戒めを守るようにおっしゃるのは、その御言葉によって我々が真の安息と平安と喜びを抱くことを望まれるからです。

今私たちは、待降節を迎えております。待降節は、苦労と重荷を背負って苦しい人生を生きる人間を訪れてくださった、主の憐れみであり、愛です。その主の愛の道が、主の御言葉に聞き従うことであり、その聞き従いとは、決して重荷ではありません。かえって、私達の人生のすべての荷を軽くする、命の道であることを信じ、もっと主を求める場に、もっと深く進まれることを望み祝福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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