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5.14]말씀성회(5/13-14 5번의 성회중 주일 말씀) 두 집안, 두 길 ふたつの家庭、ふたつの道

두 집안, 두 길

하나님의 궤 곧 언약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오래 있었습니다. 무려 이십 년입니다. 사무엘상 7장 1-2절을 보십시오.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이십 년 후에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십니다. 언약궤가 집에서 떠나는 날 아비나답과 그 가족은 많이 서운했을 것입니다. 이십년 동안 언약궤를 잘 모셨을 것입니다. 가정과 가문에 복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인 일이 발생합니다. 언약궤를 모시고 가다가 무슨 일 때문인지 소들이 흥분해서 뛰기 시작했고 수레에 실은 언약궤가 떨어지려고 합니다. 언약궤를 실은 수레를 모든 사람이 웃사와 아히오인데 웃사가 떨어지려는 언약궤를 붙잡습니다. 그때 발생한 일이 역대상 9-10절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그런데 이 웃사가 아비나답의 아들입니다. 언약궤를 옮기는 같은 이야기를 기록한 사무엘하 6장 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초점을 아비나답의 집에 맞추어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십 년이나 언약궤를 모셨는데 말입니다. 이와 비교하면 오벧에돔의 집이 참 대조적입니다.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언약궤를 모시는 일이 중단되고 언약궤는 근처에 있는 오벧에돔의 집으로 모셔집니다. 오벧에돔은 언약궤를 석 달을 모셨습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집안이 큰 복을 받습니다. 역대상 13장 14절입니다.

“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아비나답의 집과 오벧에돔의 집, 이 두 집안의 차이가 무엇이었을까요? 두 집이 언약궤를 어떻게 모셨는지 그 구체적인 이야기가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십 년이나 언약궤를 모신 아비나답의 집에 대해서는 복을 받았다는 기록이 성경에 없습니다. 오벧에돔의 집에 대해서는 큰 복을 받았다는 기록이 여러 곳입니다.

두 집안이 언약궤를 모신 방법이 어떻게 달랐을까요? 두 집안이 걸어간 길이 어떻게 달랐을까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과 다릅니다. 달라야 마땅합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다릅니다. 다르니까 복을 받는 것이겠지요.

언약궤는 오늘날로 말하면 66권 성경 말씀이며 교회 공동체입니다. 성경 말씀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교회 공동체를 어떻게 섬기십니까? 아비나답과 오벧에돔, 두 집안, 두 길에 대한 묵상이 여러분 가정과 가문에 복이 되기를 바라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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ふたつの家庭、ふたつの道

主の箱は、アビナダブの家に久しく置かれておりました。およそ二十年間に至ります。 サムエル記第一 7章1節-2節の御言葉です。

「キリアテ・ヤリムの人々(ひとびと)は、きて、主(しゅ)箱(はこ)携(たずさ)上(のぼ)り、丘(おか)上(うえ)のアビナダブの家(いえ)持(も)ってきて、その子(こ)エレアザルを聖別(ひじりべっ)して、主(しゅ)箱(はこ)守(まも)らせた。 その箱(はこ)久(ひさ)しくキリアテ・ヤリムにとどまって、二十年(にじゅうねん)経(へ)た。イスラエルの全家(ぜんけ)主(しゅ)慕(した)って
嘆(なげ)
いた。」

二十年後、ダビデは全てのイスラエルの王になり、主の箱をエルサレムに迎い入れます。主の箱が家から去る際、アビナダブとその家の者は、淋しい思いをしたと思われます。二十年間、主の箱を大事に守ってきました。家庭と親族ともに祝福を頂いたでしょう。

しかし、不思議な事が起こります。主の箱を運ぶ時に、なぜか牛たちが興奮してよろめき、車に乗せた主の箱が落ちそうになります。箱を運ぶ車を指揮していたウザとアヒオは、落ちそうな箱を手で押さえます。その時の出来事を歴代誌第一13章9節-10節にはこの記されています。

彼(かれ)らがキドンの打(う)ち場(ば)に来(き)時(とき)、ウザは手(て)伸(の)べて箱(はこ)押(おさ)えた。牛(うし)がつまずいたからである。 ウザが手(て)箱(はこ)につけたことによって、主(しゅ)は彼(かれ)に向(む)かって怒(いか)りを発(はっ)し、
彼(かれ)
撃(う)たれたので、彼(かれ)はその所(ところ)神(かみ)前(まえ)死(し)んだ。」

ウザはアビナダブの息子です。主の箱を運ぶ同じ逸話を記した サムエル記第一の6章3節-4節にこう記されています。

彼(かれ)らは神(かみ)の箱(はこ)を新(あたら)しい車(くるま)に載(の)せて、山(やま)の上(うえ)にあるアビナダブ(あびなだぶ)の家(いえ)から運(はこ)び出(だ)した。アビナダブ(あびなだぶ)の子(こ)たち、ウザとアヒオとが神(かみ)の箱(はこ)を載(の)せた新(あたら)しい車(くるま)を指揮(しき)し、ウザは神(かみ)の箱(はこ)のかたわらに沿(そ)い、アヒオは箱(はこ)の前(まえ)に進(すす)んだ。」

 何故、このようなことが起こったのでしょう。アビナダブの家の観点で考えると理解しがたい出来事です。二十年間も主の箱を守ってきたのに。

これに対し、オベデ・エドムの家の観点から考えると対照的な見方になります。死亡事故が発生し、運ぶ仕事が中断され、主の箱は、近所のオベデ・エドムの家に移されます。オベデ・エドムは3か月間守ります。しかし、これによりオベデ・エドムの家は大きな祝福を頂きます。

神(かみ)の箱(はこ)は三(さん)か月(げつ)の間(あいだ)、オベデ・エドムの家(いえ)に、その家族(かぞく)とともにとどまった。主(しゅ)はオベデ・エドムの家族(かぞく)とそのすべての持(も)ち物(ぶつ)を祝福(しゅくふく)された。」
(歴代誌第一13章14節)

アビナダブの家と、オベデ・エドムの家の差はなんだったのでしょう。二つの家は、主の箱をどのように守っていたか、詳しいことは聖書に記されておりません。二十年間も箱を守ってきたアビナダブの家に対し、祝福を頂いたという聖書の記録はありません。オベデ・エドムの家については主が祝福されたという記録が多数あります。

二つの家の、主の箱の守り方は、どう違ったのでしょう。二つの家が歩んだ道は、どう違っていたのでしょう。

キリスト者(しゃ)は、他の人たちとは違います。異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当たりまえなのです。キリスト者の中にも、主の祝福を授かる者は、また何かが違います。違うから祝福を授かるのです。

主の箱は、今日(こんにち)で言う66冊の聖書の御言葉であって、教会共同体を示します。聖書の御言葉をどのように受け止めていますか。教会共同体でどのように奉仕しておりますか。アビナダブとオベデ・エドムの二つの家、二つの道について、深く黙想し、それにより、皆様の家、家庭が祝福されることを望みつつ、祝福します。

 

「み言葉(ことば)に生(い)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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