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30]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길 (8) 流れ来る主の計画にあずかる道(8)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길 (8)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과 기대 그리고 목적 없이 태어난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목적은 복된 우리를 통해 모든 민족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온전하게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목하시고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디모데후서2장20절을 보면 사람에게는 금과 같은 사람과 은과 같은 사람 그리고 나무 그릇과 질그릇 같은 사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은 금 그릇과 은 그릇 같은 사람만 귀하게 쓰임을 받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세상은 금 그릇과 은 그릇 같은 사람들을 쓰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금 그릇과 은 그릇과 같은 사람이 되려고 물불을 안 가리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을 이야기하면 자동적으로 금과 은 그릇은 귀한 그릇이고 나무와 질그릇은 천한 그릇이라고 쉽게 판단을 합니다. 왜 우리는 이런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끼고 있는 가치관의 안경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귀함과 천함에 대한 판단 기준이 돈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돈을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가격이 비싸면 귀한 것이고, 일단 가격이 싸면 천한 것이라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보시는 귀함과 천함의 판단의 기준이 우리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귀하고 천하다는 판단 기준은 돈이 아니라 깨끗함입니다. 그리고 그 깨끗함의 목적은 쓰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2:21)

귀한 그릇은 금 그릇이고 은 그릇이기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그릇이 귀한 그릇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이 귀한 그릇이고,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그릇은 천한 그릇입니다. 이런 차이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과 사람의 판단 기준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시는 기준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있지만 사람들의 판단 기준은 외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은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해 보시는 중심은 ‘쓰임 받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주를 위하여 쓰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사람을 쓰시지 않으십니다. 성경의 죄의 뿌리가 욕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욕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하고 싶은 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인데 그 마음은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곧 욕심의 본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모든 묶인 것들이 풀리고 형통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가 먼저 스스로 풀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욕심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그릇으로 사용하실 수 없는 마음 하나가 인색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께 쓰임을 받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귀한 인생을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그 마음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주님께 대한 인색한 마음과 먼저 싸워 주님을 위해서라면 아끼지 않는 풍성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쓰시기 위하여 보시는 중심은 깨끗함입니다.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그릇은 금 그릇도 아니요 은 그릇도 아니라 깨끗한 그릇입니다. 우리가 볼 땐 은과 금이 귀한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은과 금이 귀한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귀히 여기시는 것은 깨끗함입니다.

사탄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경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순간부터 사탄의 나라는 치명타를 입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치명적인 두 가지 전략이 변함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자신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귀히 여기시고 쓰십니다. 그래서 주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 마음을 위해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마음과 싸워야 하고 죄에 대하여 무뎌진 마음과 싸워야만 합니다.

금 그릇이 귀한 그릇이 아니고 깨끗하여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그릇이 귀한 그릇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유일한 기준은 깨끗함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자신 생명조차 아끼지 않는 마음을 가진 자가 깨끗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주님을 이용하는 자가 아닌 오직 주님의 이름만을 높이는 일이라면 자신 생명조차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이 거룩한 마음인 것입니다. 깨끗함 이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시는 가장 중요한 기준임을 꼭 기억하고 항상 주님 안에 거하여 일상과 선교의 현장에서 목숨을 건 싸움으로 항상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流れ来る主の計画にあずかる道(8) 

主は目的を持って人を御作りになりました。これは主のみ旨と期待そして目的なしで生まれた人は誰一人いないと言うことを意味します。その目的は幸いを受けた我らを通して全ての民族が救われ主の御国を回復し、完全に成し遂げることです。

それなら我らが関心を持つべきなのは主が注目してお使いになる人はどんな人なのかです。テモテへの手紙第二2章20節を見ると人には金の器のような人と銀の器のような人そして、木器と土器のような人がいると言います。普通の人は金の器か銀の器のような人だけが良く使われると思います。実は世の中では金の器や銀の器のような人だけを選んでいます。それで人は皆金の器や銀の器のような人に成ろうと必死に頑張って生きます。

貴重な器と質の悪い器を語ると自動的に金と銀は貴重で木と土は質の悪い器だと判断してしまいます。なぜ、我らはこのような正しくない判断をしてしまうのでしょう。それは我らが持っている価値観の先入観のせいです。我らの貴重と下品に対する判断基準が富にあるからです。世の中では富を基準にして判断するから値段が高いと貴重で、値段が安ければ質が悪いと思ってしまいます。しかし、今日の本文を見ると主が見る貴重と質の悪さの判断基準が我らとは全然違うことが分かります。主にある  貴重と質の悪さの判断基準は富ではなく聖(きよ)さです。そしてその聖(きよ)の目的は使うことにあります。

『ですから、だれでも自分(じぶん)自身(じしん)をきよめて、これらのことを離れる(はな)なら、その人(ひと)は尊い(とうと)ことに使われる(つか)器(うつわ)となります。すなわち、聖(きよ)められたもの、主人(しゅじん)にとって有益(ゆうえき)なもの、あらゆる良い(よ)わざに間(ま)に合う(あ)ものとなるのです。』 (テモテ第二2:21)

尊いことに使われる器は金や銀で作られたがではなく主がお使いになれるからこと尊いのです。主がお使いになる器が尊い器で、主にお使いにならない器が質の悪い器です。それは主が見る基準と人が見る判断基準が全然違うからです。主が人を見る基準は心の重心ですが、人の判断基準は外見にあるからです。それなら主が重きを置いて見るところは何でしょうか。大きく二つに考えられます。

 

一つ目、使われることを真剣に心から望む心です。

主は主のために使われることを心から願っている人を選びます。主は主に対して吝嗇(りんしょく)な心(こころ)をもって人は選びません。聖書には罪の根は欲ある心だと記載されていますが、その欲のある心が何か知っていますか。それは自分が人生の主人になり、自分勝手にしようとすることでそれは主に使われたくない心ですなわち、欲のある心の本来の姿です。

ですので、主にお使いになり、全ての閉ざされた事が解かれ栄えある人生を生きるためには我らがまず、自ら解かなければならない事があります。欲ある心です。主が尊い器としてお使いにならないことの一つは、吝嗇(りんしょく)な心(こころ)です。我らが本当に主にお使いになり、主のみ旨を成し遂げる尊い人生を切に願うのならば、その心が本当であれば我らは主に対してケチな吝嗇(りんしょく)な心(こころ)と戦い、主のためであれば全てを捧げることが出来る豊かな心を持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

二つ目、聖(きよ)さです。

主が尊い使う器は金の器でもなく、銀の器でもないのです。それは聖(きよ)い器です。我らが見ると銀と金が尊いように見えますが、主の前では銀と金が尊い物にはなれません。主が尊いとお考えるのは聖(きよ)さです。

サタンがキリスト者に対して最も警戒していることがあるとすれば、それは主にお使いになれる人になることです。サタンはキリスト者が主に使われる瞬間からサタンの国は致命的なダメージを受けることを良く知っています。それで、サタンは我らが主に使われないように致命的な戦略を二つ使用しています。‘主にして吝嗇(りんしょく)な心(こころ)を持たせること’と‘自分を汚すこと’です。

主は聖(きよ)い器を尊い器としてお使いになります。それで、主にお使いになれるためには必ずきよい心を持つべきです。それのために主に吝嗇(りんしょく)な心(こころ)と戦わなければならないし、罪に対して鈍くなった心と戦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

 

金の器が尊い器ではなくて聖(きよ)さであり、お使いになる器が尊い器です。主がお使いになるただ一つの基準は聖(きよ)さであり、ただイエスキリストに重きを置く心です。我らの心に我らの主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の栄光のため自分の命まで捨てる心を持っている人こそが聖(きよ)い人です。自分の満足と有益のため、主を利用する者ではなく、ただ主の御名だけを崇める事ならば自分の命までそまつにすることが出来る心が尊い心です。聖(きよ)さ、これこそ主が主のみ旨を成し遂げるため我らをお使いになる最も重要な基準であることを必ず覚えて常に主と共に生きて日常生活と宣教の現場で命を掛けた戦いから常に勝利を得ることを祝福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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