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6]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길 (9) 流れ来る主の計画にあずかる道(9)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길 (9)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각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 사실을 성경은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9)

우리는 분명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그의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인 만큼 우리가 이 약속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불순종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이루어지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가는 여정에서서 중단된 일이 있었고 그런 위기를 극복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아브라함처럼 동일한 위기를 맞게 됩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그런 위기를 맞는 분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우리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유업을 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동조하고 우르를 떠난 것입니다. 우르를 떠날 때 데라의 가족의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란에 도착하자 데라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왜 데라가 가나안을 향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하란 땅에 안주하게 되었는지 성경은 구체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하란이라는 곳은 “교차로”라는 뜻으로 모든 곳으로 연결하는 지역이었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지역은 특성상 각 나라의 물물이 오고 가면서 경제가 활성화되기 마련입니다. 경제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도시는 번성하게 됩니다. 이주민들이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구하고 정착하기가 쉽습니다. 또한 하란은 우르처럼 ‘씬’ 이라는 달의 신을 섬기는 대신전이 있어 같은 신을 섬기는 데라 입장에서 경제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더 없이 좋은 환경을 맞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데라가 하란에서 얼마나 성공한 삶을 살았고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삶을 살았다해도 그곳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데라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 목적을 향한 인생여정이 지속되지 못할 때 그 인생은 어떤 결말에 대해 성경은 단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란에서 죽었더라.(창11:32)

하란은 데라가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을 향해 가는 여정에 다시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이정표와 같은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으로 되돌아가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다시 전진하든지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신앙의 교차로입니다.

데라처럼 하란과 같은 곳에서 안주하게 되면 결국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삶은 의미 없는 낭비의 삶이 되고 모든 것이 허무한 죽음으로 그 끝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란이라는 곳을 머물렀던 데라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훈하려고 하시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약속을 땅을 향한 믿음의 여정을 끝까지 걸어가지 않고 눈에 보이기 좋은 곳에 현혹되어 하란 땅에 눌러 앉으면 그곳은 “무덤”임을 알려주는 땅입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도 여전히 데라가 존재한다는데 있습니다. 데라는 나의 부모일수도 있고, 나의 남편이나 아내일수도 있습니다. 또한 나의 친구도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데라는 바로 나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사실은 데라는 아브라함의 순례 길에 걸림돌이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유업을 이루는 신앙여정에 방해가 되는 일체의 장애물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장애물은 반드시 극복해야만 합니다. 데라가 오래 살면 살수록 나의 순례 길은 자꾸 지연될 수밖에 없기에 나의 데라는 속히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아브라함처럼 하란을 버리고 가나안을 향해 다시 걸음을 재촉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지점에 계십니까? 하란 땅입니까, 계속 약속을 땅을 향하고 있습니까? 하란은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를 향해 점검해야 하는 이정표입니다. 출애굽 했으면 무조건 가는 곳이 가나안 땅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과정에서 홍해를 건넜고 그 홍해는 다시 닫혔습니다. 그것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고 오직 한 길 약속의 땅만을 향해 가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매일 수많은 기적을 경험하는 광야도 머물면 안 되는 곳입니다. 오직 가나안 땅까지 죽을힘을 다해 가야만 합니다. 뒤돌아보지도 말고, 머뭇거리지도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을 향해 걸어가야만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믿기로 했으면 이제 죽으나 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닮고, 장성한 분량까지 이루는 그 곳입니다. 세상에서 잘되고, 부자 되고 성공하는 것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축복의 땅을 향해 가는 여정이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 땅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 땅에 끝까지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 순간 다가오는 하란의 그 유혹을 극복해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끊을 것은 끊어야 합니다. 지금은 머물고 있는 곳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가를 다시 확인하고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땅을 향해 출발해야 하는 곳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집중해야만 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 그 비전을 바라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땅 그 목적지까지 열심히 달려가야만 합니다. 사도바울처럼 말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

 

流れ来る主の計画にあずかる道(9) 

 

主(しゅ)の御恵みで救われたすべてのキリスト者に、主(しゅ)は一人一人に、驚くべき計画を持っておられます。そしてその事実は、聖書に詳しく記されてあります。

「もしキリストのものであるなら、あなたがたはアブラハムの子孫であり、約束による相続人なのである」(ガラデヤ人への手紙3章29節)

わたし達は、確かにアブラハムの子孫であり、約束による相続人なのです。これは生きておられる主(しゅ)の約束であるため、我々がこれを意図的に無視したり、従わなかったりしない限り、必ず成し遂げられます。しかし、アブラハムも主(しゅ)の計画を従う道程を中断したことがありました。また、幾度(いくど)の危機を乗り越えて、ようやく主(しゅ)との約束を成し遂げる地に立つことができたのです。

わたし達も、主の計画が成就する道程の途中で、アブラハムと同様、危機に立たされます。今、我々の中には、そんな危機に置かれている方もいるでしょう。そんな危機を如何にして克服し、約束の相続人になれるのか、考えてみたいと思います。アブラハムの父親のテラは、アブラハムが主から頂いた御言葉に従い、ウルを去りました。

テラの一族がウルを出て目指したのは、カナンの地でした。しかし、ハランに着いた時、テラの心が変わったのです。何故、カナンの地に向かう旅路を止めてハランに留まったのか、聖書に詳細は記されておりません。しかし、その理由を推測することはできます。

ハランの地は「交差路」の意味を持ち、色んな地域を繋ぐ場所でありました。そういう地理的な特徴から、様々な国の物流が行き来し、経済が活性化された地でもあります。経済が活性化すると、当然ながら都市も栄えます。ここに居る人たちは容易く職に就き、安易に定住を選択したでしょう。また、ハランは、「シン」という月の神を祭る大神殿があり、同じ神を信じていたテラの立場からすると、経済的にも、宗教的にも、又とない素晴らしい環境のように思われたのでしょう。しかし、大事なことは、テラがハランでどんなに成功し偉業を残したとしても、それは、主の計画の中の人生では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テラが主に選ばれ遣わされる人生を歩み続けられなかった、人生の結末を聖書では一言で締め括っています。「ハランで死んだ」(創世記11章32節)

ハランは、テラが主に約束された地に向かう道程の途中で、改めて方向を確かめる道標(みちしるべ)のような場所でした。即ち、世の中に戻るのか、主に約束された御国に向かって前進するのかを決める信仰の交差路だったのです。テラのように、ハランで安住してしまうと、今まで歩んできた全ての人生の意味を失い、結局むなしい最後を迎えてしまうのです。

 

このように、ハランの地に留まったテラを通して、我々に悟らせてくださる事。それは、主を信じる人々が、約束の地に至る前に、目に見える誘惑に踊らされ、ハランのような地に留まる時、そこは墓場になってしまうということです。

ところが、我々の中には常にテラのような存在がいます。テラは自分の親であったり、妻や夫にもなります。また、親しい友人だったりもします。もしくは、自分自身がテラのような存在かも知れません。ここで留意すべきは、テラは、アブラハムが主に約束された地へと向かう信仰の道程の障害物であったことです。その障害物は、必ず克服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テラの長生きは、アブラハムの従順の道のりを遅延させる原因になります。自分の中のテラが死んだ時、アブラハムのようにハランを捨て、カナンの地へと旅路を続け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皆様は、今どの地点におられますか。ハランの地ですか。ずっと約束の地への道のりにおられますか。ハランは、私たちが向かう目的地を確かめる、道標(みちしるべ)にすぎません。出エジプトをしたのなら、必ずカナンの地を目指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イスラエルの民族がエジプトを脱出して紅海を渡り、その後、紅海の道は閉ざされました。それは、もうエジプトには戻ることができない、ただひたすら約束の地へと進めるようにと主(しゅ)が示されたのです。毎日数々の奇跡を体験する荒野にも留まってはなりません。ひたすらカナンの地まで、命の限り進め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振り返る事もなく、躊躇することもなく、主(しゅ)がくださった約束の地に向けて歩むとき、永遠の命の地に着くことができるのです。

主(しゅ)を信じると決めたならば、死ぬまで主(しゅ)イエス・キリストを慕い、イエス・キリストの道を歩まなければなりません。世間で言う富と成功は、我々が至る目的の地ではありません。唯一イエス・キリストだけが、私たちが至る場所、主の御国です。他の道はございません。わたし達にくださった、祝福の地に至る旅路を中断してはならないのです。必ず、その地に至りましょう。その地に至るまで、数々のハランの誘惑を克服しましょう。捨てるべきものは捨て、断つべきものは断ち切りましょう。今、留まっているこの地は、私達の道程を確かめる場であり、方向を定めたら、約束の地に向かって出発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主の御言葉だけに集中し、私たちを選ばれた主の御胸を、そのビジョンを仰ぎ、私たちに向ける主の約束の地、その目的地まで邁進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使徒パウロのように。

目標を目ざして走り、キリスト・イエスにおいて上に召して下さる神の賞与を得ようと努めているのである」(ピリピの使徒への手紙3章14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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