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1] 모세의 축복이 주는 영적인 교훈 (신명기33:1-11) 장원규목사,동경성결교회, ロゴスライフ教会

모세의 축복이 주는 영적인 교훈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 안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생명을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그 생명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자라가야 합니다. 1년 전보다, 2년 전보다 해가 가면 갈수록 성장과 성숙해야 합니다. 성장, 성숙은 곧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변화에는 반드시 생명의 가득한 세상으로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2018년을 시작하고 6개월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시점에 하나님은 왜 맥추 절기를 지키도록 하시는 것일까요? 이번 주간 신명기33장을 묵상하다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가 걸어온 인생이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신명기33장은 모세가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12지파들을 축복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무엇을 축복하고 있습니까? 신명기 33장은 모세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대상으로 축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르우벤 지파와 레위지파의 축복을 통해 맥추절을 맞아 지난 6개월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는 르우벤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입니다. .

“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신33:6)

지금 모세는 죽기 직전에 각 지파들을 축복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르우벤에게 하고 있는 이 축복은 참 이상합니다. 세상에 “죽지 않고 살기를 원하고, 그래서 수가 적어지지 않기를”원하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하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모세는 르우벤을 위해서 죽지 않고 살아만 있기만을 빌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이런 이상한 축복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원인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창세기49장3~4절의 말씀과 연결해 생각해야 합니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여기서 우리가 염두 해 두어야 할 것은 모세의 축복은 지금 500년 전에 있었던 야곱의 축복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500년이 지나 르우벤 지파를 축복하는데 축복의 내용이 “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축복 할 수밖에 없는 그의 자손들의 모습입니다. 르우벤의 자손은 그의 선조처럼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는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선조인 르우벤에게 야곱이 축복한 그 이후 자손들은 전혀 변화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레위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입니다.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신33:8,10)

레위는 르우벤처럼 성적인 범죄는 아니지만 커다란 실수를 했던 사람입니다. 창세기49장5절에 보면 야곱이 레위를 축복하는 장면인데 이때 야곱은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레위는 칼은 폭력의 도구라는 축복이 아닌 저주를 받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자손들은500년이 지나 모세가 레위지파를 축복하는데 ‘주의 경건한 자’가 되었고, 주의 율법을 가르치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감당하는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창세기를 기록한 사람도 모세요, 신명기를 기록한 사람도 모세라는 것입니다. 창세기와 신명기의 저자인 모세가 레위의 이 변화에 대해서 감격적으로 기록하고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주가 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는 이 변화입니다. 변화된 운명이요 변화된 인생입니다. 모세도 레위 지파요, 아론도 레위 지파 사람입니다. 야곱은 레위에게 ‘레위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라 하여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고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지만 500년 지나 모세가 유언을 할 때는 변화된 인생으로 제사장 가문이 되어 말씀을 맡은 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운명과 인생과 성품과 윤리를 바꾸는 능력입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우리로 타락한 본성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삶으로 초대합니다. 그 복음, 그 십자가의 복음을 만나고 듣고 경험한 우리는 마땅히 레위처럼 변화된 운명, 변화된 인생,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변화는 그리스도인의 숙명입니다. 변해야 삽니다. 복음 앞에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닮은 성품과 윤리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것이 맥추절 절기를 지키는 우리를 향해 주시는 깊은 교훈임을 기억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들로 끝임 없이 변화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モーセの祝福から得られる霊的な教訓

 

キリスト教は命の宗教です。そのため、神様を信じる聖徒は世界を変えられる生命を抱いています。そのため、聖徒はその生命が世界を変化させていけるように成長し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1年前より、2年前より、時の流れと共に成長、成熟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成長、成熟はつまり変化を意味することであって、その変化は必ず生命に満ちた世界に変えることができます。

私たちは2018年がスタートしてから6か月という時間を過ごしました。この時点で神様はなぜ刈り入れの祭りの節期を守るようにおっしゃったのでしょうか。今週一週間申命記33章を黙想中に、神様が私たちが歩んできた人生にどのような変化があったかについて焦点を合わせていらっしゃるということに気づきました。申命記33章はモーセが最後にイスラエルの12の部族を祝福する場面を描いています。

ではモーセは何を祝福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申命記33章はモーセがイスラエルの12部族に向かって祝福する内容ですが、ルベン族とレビ族への祝福を通じて、刈り入れの節季を迎え、過ぎた6か月の私たちの生活を振り返り、大事な教訓を得ようと思います。

 

一つ目に、ルベン部族に対するモーセの祝福です。

「ルベンは生きて、死なないように。その人数は少なくても。」 (申命記33:6)

今モーセは死を迎える前に各部族を祝福しています。しかしルベンにしているこの祝福は妙な点があります。“死なずに生きて、その数が少なくならないこと”を望むことは祝福とは捉えがたいです。しかしモーセはルベンのために、死なずに生きることを祈っています。どのような理由でこのような祝福を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この原因を正確に知るためには創世記49章3-4節の御言葉と繋げて考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

「ルベンよ。あなたはわが長子。わが力、わが力の初めの実。すぐれた威厳とすぐれた力のある者。だが、水のように奔放なので、もはや、あなたは他をしのぐことがない。あなたは父の床に上り、そのとき、あなたは汚したのだ。彼は私の寝床に上った。」 (創世記49:3-4)

 

ここで私たちが念頭に置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は、モーセの祝福は今500年前にあったヤコブの祝福を前提に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しかしモーセが500年後にルベン部族を祝福した内容が“生きて、死なないように。その人数は少なくても”と願ったことは、そう祝福せざるを得なかったルベン部族の姿に理由があります。ルベン部族の子孫はその祖先のように生存する事自体が危ぶまれているのです。祖先であるルベンにヤコブが祝福したその後も、その子孫は全く変化がないことを語っているのです。

 

 

二つ目に、レビ部族に対するモーセの祝福です。

「レビについて言った。「あなたのトンミムとウリムとを、あなたの聖徒のものとしてください。あなたはマサで、彼を試み、メリバの水のほとりで、彼と争われました。彼らは、あなたの定めをヤコブに教え、あなたのみおしえをイスラエルに教えます。彼らはあなたの御前で、かおりの良い香をたき、全焼のささげ物を、あなたの祭壇にささげます。」(申命記33:8,10)

 

レビはルベンのように性的な犯罪ではなかったですが、大きな過ちを犯した人です。創世記49章5節にヤコブがレビを祝福する場面において、彼は祝福か呪いかわからない祝福をしています。「シメオンとレビとは兄弟、彼らの剣は暴虐の道具」であると。レビは剣は暴虐の道具であるという、祝福ではなく呪いを受けた者でした。しかし彼の子孫は500年が過ぎ、モーセがレビ部族を祝福するのに“主の敬虔な者”となり、主の律法を教え、神様捧げる祭祀を全うする者になったのです。

私たちは覚えてお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創世記を記した者もモーセであり、申命記を記したものもモーセ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創世記と申命記の著者であるモーセがレビのこの変化に対して感激的に記録し、祝福しているのです。呪いが変わり神様の御言葉に献身するものへと変化しました。変化した運命であり、人生です。モーセもレビ部族でありアーロンもレビ部族の人です。ヤコブはレビに“レビの剣は暴虐の道具”であるとし、“わがたましいよ。彼らの仲間に加わるな”、“のろわれよ。彼らの激しい怒りと、彼らのはなはだしい憤りとは”としましたが、500年が過ぎモーセが遺言を残す時は、変化した人生で祭司の一家となり御言葉を全うする貴い人となったのです。

 

福音は力です。イエスキリストは私たちの運命と人生と品性と倫理を変える力です。その方の十字架は私たちの堕落した本性を捨てさせ、神様に従う人生へと道行きます。その福音、その十字架の福音に出会い、経験した私たちは当然レビのように変化した運命、変化した人生、変化した生き方を生きなければなりません。

変化はクリスチャンの宿命です。福音の前で変わ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新しく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神様に似た品性と倫理に変化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がクリスチャンとして私たちが歩まなければならない道です。これが刈り入れの節期を守る私たちに向けられた大切な教訓であることを記憶し、神様の御心にかなう人々として絶えず変化する私たちになることを心よりお祈りします。

 

言葉(ことば)生(い)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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