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9] 입술의 믿음에서 삶의 믿음으로 (18) (로마서 4:10-17) ロゴスライフ教会

입술의 믿음에서 삶의 믿음으로 (18)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자신과 자녀들이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는 자가 되는 것일 겁니다. 저도 꼭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하고 저의 두 자녀의 인생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모든 성도가 꼭 그런 위대한 인생을 살았으면 하면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위대한 인생을 기대한다면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을까? 요셉은 어떻게 노예의 신분에서 일약 애굽의 총리라는 그 위대한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다윗은 일개 목동에서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그 위대한 왕의 자리에 설 수 있을까요?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간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세상을 통치하던 나라의 세 왕 밑에서 나라의 행정을 책임지는 총리가 되어 세상을 움직이는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요? 이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이 입으로 고백된 믿음에서 삶의 믿음으로 이어졌기에 새로운 역사를 여는 주인공으로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때문에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삶의 믿음을 행한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입술의 믿음에서 삶의 믿음을 산 좋은 본으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계속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믿음이 하나님께 언제 의로 여김 받았는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을 때였는지 아니면 할례 받지 않았을 때였는지를 바울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을 바꿔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결단한 후인가 아니면 그러한 결단이 없었던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게 여겨주셨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답은 “무할례시” 즉 할례를 받지 않았을 때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왜 이 사실을 이렇게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우리의 공로와 상관없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면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귀한 그릇으로 사용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귀한 믿음을 버리고 믿음을 떠나 멸망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면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할례 받기 전 보여 준 참 믿음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부터 그의 믿음은 입술의 믿음이 아닌 삶으로 증명해 보이는 믿음이었음을 우리에게 깊이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쉽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인데 왜 삶의 모습들은 다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더 크게 성취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눈에 보일 정도로 위력적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주님을 믿는다는데 그 주님을 믿으면 주님이 함께 하시는 삶인데 매일 피곤하고 무기력하고 기쁨도 감사도 없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요?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롬4:17)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12장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땐 황당무계한 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입에서만 고백되는 믿음이 아닙니다. 머릿속에만 담긴 관념적인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창12:4) 즉 삶으로 드러난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창22:16)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히11:17)

아브라함의 믿음은 입술에만 머문 믿음이 아닌 삶을 드리는 믿음 즉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을 말씀과 삶이 일치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신 약속을 삶의 가운데 구체적으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 앞에서 우리가 어떤 믿음으로 응답하느냐에 따라 수년 후 우리 각자의 삶의 모습은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 속에 자신의 삶을 맡기는 사람들은 창대한 복을 누리게 될 것이고, 입으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계속 무기력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하나님의 은총에 여러분의 삶 전부를 다 맡기고 오직 예수만 바라보고, 예수께 모든 생각을 복종시켜 예수만 사시는 삶을 사는 참된 신앙인의 길을 걸어갑시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 삶 가운데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을 날마다 목격하고 맛보는 신바람 나는 참 행복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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唇の信仰から人生の信仰へ (18)

 

キリスト人が共同的に望んでいることは偉大なる信仰の先祖のように自分と子孫が使われる事だと思います。私も必ずそのような人生になりたいし、息子・娘の人生だけではなく我々教会の全ての聖徒がそのような偉大なる人生を生きて行く事を強く願っています。

偉大なる人生を期待するのなら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事が一つあります。アブラハムはどうやってそのような偉大な信仰の先祖になれたのでしょうか。ヨセフはどのように奴隷の身分からエジプトの総理大臣という偉大な座まで立つことが出来たのでしょうか。ダビデはただの羊飼いから全ての民から尊敬される偉大なる王様になれたでしょうか。ダニエルは捕虜の身分だったのに当時世界を支配した国の三名の王の下で国の行政を任される総理になり、世界を動かす偉大な人生を生きる事が出来たでしょうか。この人たちの人生を良く見ると一つの共通点を持っている事が分かります。それは主にする信仰でした。

偉大な信仰の先祖が口で告白した信仰から人生の信仰へ生きる事が出来たから新しい歴史を開ける主人公になれたのです。偉大な信仰の先祖は主を信じる信仰の為のどのような犠牲も喜んで受け入れる人生の信仰を行った者たちでした。

パウロはそのような口の信仰から人生の信仰への生きた良い見本として信仰の先祖アブラハムを続けて紹介しています。今日の本文10節にこう記載しています。

“まだ割を受けていないときにでしょうか。割を受けてからではなく、割を受けていないときにです。

アブラハムが主の恵みで与えられた信仰にて主との関係が回復されました。しかし、アブラハムの信仰が主にいつ義とみなされたのか、アブラハムが割礼を受ける前か受けた後なのかをパウロは確かめています。質問を変えて観るとアブラハムが主に従って生きると決断をした後なのかその決断しなかった時に主が彼を義として下さったのかを尋ねています。パウロの答えは“割礼を受けていないとき” つまり割礼を受ける前だと言っています。

パウロはなぜこの事実を繰り返して強調しているでしょうか。主の救いの恵みが我々の行いではなく主から始まる事を正確に悟らなければ正しい信仰を持つ事が出来ないし、主のみ旨の為の尊い器として使われることが出来ないからです。さらに、主に恵みとして受けた信仰を捨てて滅亡に至るからです。

それでパウロはアブラハムの割礼を受ける前の見せた真の信仰を学ぶ事を言っています。アブラハムは割礼を受ける前から彼の信仰は口だけの信仰ではなく人生で証する信仰だった事を我々に深く悟らせています。

 

ここで、私は皆様に重要な質問を一つします。

我々は皆、主のみで救われた人なのになぜ人生を生きる姿が皆それぞれでしょうか。ある方には主の約束がもっと大きく成されて、主の御言葉が目に見える程強く働きます。しかし、ある方は主を信じると言いますが主を信じると言うことは主と共に生きる事なのに毎日疲れ果てて無気力で喜びも感謝もない不幸な人生を生きるでしょうか。パウロはアブラハムの信仰に対してこう記載しています。

“このことは、彼が信じた神、すなわち死者を生かし、無いものを有るもののようにお呼びになる方の御前で、そうなのです。(ローマ人への手紙4:17)

アブラハムは死んだ者を甦らせて、無い物を在る物にする主を信じたということです。創世記12章2節で主は “わたしはあなたを大いなる民とし”とおっしゃいました。しかし、当時アブラハムには子孫がいませんでした。世間の人から見ると言葉にならない事だと思われます。しかし、アブラハムは主の御言葉を信じました。彼の信仰は口だけで告白された信仰ではありません。頭の中にある観念的な信仰でもありませんでした。彼の信仰は“アブラムは【主】がお告げになったとおりに出かけた。”(創世記12:4)つまり、信仰が人生に見える生き方でした。そしてアブラハムの信仰がどのような信仰だったのかこう記載しています。

“仰せられた。「これは【主】の御告げである。わたしは自分にかけて誓う。あなたが、このことをなし、あなたの子、あなたのひとり子を惜しまなかったから、”(創世記22:16)

“信仰によって、アブラハムは、試みられたときイサクをささげました。彼は約束をえられていましたが、自分のただひとりの子をささげたのです。”(へブル人への手紙11:17)

アブラハムの信仰は口で止まっていた信仰ではなく人生を捧げる信仰つまり、自分の命まで捧げる信仰でした。これが御言葉と人生が一致する信仰と言います。その信仰は主がご自身の御名を持って誓った約束を人生の中で具体的に成し遂げることです。

今この時間、この場に主の恵みが溢れる働きがあります。この恵みに我々がどんな信仰で答えるかにて数年後我々の人生の姿は大きい差を見せます。主が与えて下さった恵みに自分の人生を委ねる人は壮大な祝福の人生を生きると思いますが、口だけの告白で止まる人は続けて無気力な人生を生きると思います。これから主の恵みに皆様の人生全てを委ねてただイエスだけを見つめて、イエスに全ての考えを従順させてイエスだけが生きる真の信仰の道を歩みましょう。それで我々各自の人生の中でなさる主の約束を日々目撃し、味わう喜びの信仰の道を歩む皆様を祝福します。

 言葉(ことば)生(い)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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