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05] 그렇다면 이젠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19) (로마서 4:18-25) ロゴスライフ教会

그렇다면 이젠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19)

하나님께서 역사의 무대가운데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릇으로 삼았던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핍된 인생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숭배의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가정에서 소외되었던 자였고 일개 평범한 목동의 인생을 사는 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택한 제자들은 가난하고 배움이 짧았던 사람들이며,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같이 무언가 결핍과 흠을 가진 그런 인생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결핍을 저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인생 가운데 부족함과 결핍은 참된 비전을 형성하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모든 것이 넉넉한 사람들은 미래를 향한 비전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가진 것 때문에 교만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비전은 곧 우리의 인생을 진리를 따라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근거임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전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고 비전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우리는 비전과 야망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전과 야망의 차이점을 말할 때 야망은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비전은 하늘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전을 품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타락시키지 않고 해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켜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비전을 품은 사람을 그릇으로 삼아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마음에 새기고 로마서4장18절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절망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즉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그 상황에서도 ‘바랬다.’고 합니다. 곧 아브라함이 비전을 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비전을 품었다는 것입니까?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100세가 되도록 아들도 없던 사람이 어떻게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는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까? 주책이나 노망이 나지 않고는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비전을 품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비전을 품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아브라함의 비전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약속을 근거로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창17:4) 아브라함은 현실적으로 바랄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주신 것임을 믿었기에 아브라함의 비전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불가능했던 그 약속이 성취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비전이었기에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에 따라 살았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믿음은 반드시 삶에서 구체화될 때에만 온전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 온전한 믿음에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반드시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창세기15장6절에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증언하는데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는다고 입으로만 고백이 아닌 삶으로 살아낸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이렇게 해석을 해 주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2:21-22)

아브라함은 아들이삭을 실제로 제단에 올려놓고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행함이 믿음보다 앞서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행함이 자랑이 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믿음은 반드시 행함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전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삶 속에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면 그 비전을 위해 자신이 행할 것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을 살아가는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한 사람의 비전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켜 올 수 있었는지 비전의 사람들을 통해 이미 이 역사의 무대에 증명된 것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또한 비전의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은 어떤 비전을 주셨는지 그 비전의 말씀을 굳게 믿고 그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8-29)

우리가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는 분명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현실의 나의 모습은 결코 이 비전을 바랄 수 없지만 그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꼭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따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실수하고 실패한다 해도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 일어서서 주님과 함께 그 믿음의 길을 인내하며 끝까지 걸어간다면 아브라함, 요셉, 다윗, 바울을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사용하신 그릇들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비전의 그릇으로 쓰임 받아 마침내 그 비전이 성취되는 그 위대한 자리에 서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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では、これからはイエスのように生きることです (19)

 

 

神が歴史の舞台の中で用いて、神の御心を成し遂げる器としてみなした人々を見てみると欠乏した人生でした。アブラハムは、偶像崇拝の家に生まれ育った人です。ダビデは、家庭で疎外された者であって一介平凡な牧童の人生を生きる者でした。イエスご自身が選んだ弟子たちは貧しくて勉学が短かく、人から非難を受けていた人たちでした。みんな何か欠乏と傷が付いているような人生でした。人々は人生の欠乏を呪いとして認識することが多いです。しかし、実際に人生で不足と欠乏は、真のビジョンを形成する重要な根拠となります。すべてが豊かな人々は、未来に向けたビジョンを持つことは容易でありません。なぜなら今持っているもののせいで自然に高ぶる生活をするようになるからです。

ビジョンは、私たちの人生が真理に沿って生きて行くようにする重要な根拠であることを、聖書は語っています。多くの人々がビジョンの真の意味を知らずビジョンを言うときが多くあります。通常、私たちはビジョンと野心をよく区別できない場合があります。ビジョンと野心の違いを言うとき、野望は人間の欲望から始まったものであれば、ビジョンは天から与えられるものです。したがってビジョンを抱いた人は他の人を堕落させず、傷つけることもありません。そして世界を美しく変化させていきます。それで、神はビジョンを抱いた人を神の器としご自身の歴史を成し遂げて行くのです。

まさにこの点を心に刻んでローマ人への手紙4章18節に注目してください。

『彼は望みえないときに望みを抱いて信じました。それは、「あなたの子孫はこのようになる」と言われていたとおりに、彼があらゆるの人の父となるためでした。』

 

このみ言葉は、アブラハムが「望めない状況に置かれている」と言っています。それで、アブラハムが絶望していると言われていますか。そうではありません。「アブラハムが望みえないときに望みを抱いて信じた」、すなわちアブラハムは望めない状況でも、「望んだ。」ということです。そして、アブラハムがビジョンを抱いていました。どのようなビジョンを抱いていましたか。あらゆる民族の祖先になることでした。100歳になっても、息子もなかった人がどのようにあらゆる民族の祖先となるビジョンを持つことができたのでしょうか。無定見でボケてなくては話にならないです。しかし、アブラハムはビジョンを抱いていました。アブラハムがビジョンを抱いたと言われている、その根拠は何ですか。

 

最初に、アブラハムのビジョンは、神から与えられた約束を根拠にするからです。

『わたしは、この、わたしの契約をあなたと結ぶ。あなたは多くの国民の父となる。』

(創世記17:4)

神はアブラハムをお呼びになり多くの民族の父となるように定めました。アブラハムは、現実的には望めませんが、全能の神が約束のみ言葉で与えられたものであることを信じたので、自分のビジョンとみなしたのです。神から来たのでアブラハムは、神と共に歩み、神と交わりがある生活をしました。その結果、不可能であった、その約束が成就することができたのです。

第二は、アブラハムは、神から与えられたビジョンだったので、神を信じて、その信仰に基づいて生きました。

先週の主日にも伝えたように、信仰は必ず生活の中で具体化されるときのみ全き信仰になるのです。その全き信仰に神は働きになられ必ず約束を成就される御方です。創世記15章6節で、「彼は【主】を信じた。主はそれを彼の義と認められた。」と証言しますが、ここでアブラハムは主を信じると口だけの告白ではなく、生活で生きられた信仰でした。それで、ヤコブ使徒は、アブラハムの信仰についてこのように解釈をしてくれました。

『私たちの父アブラハムは、その子イサクを祭壇にささげたとき、行い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たではありませんか。あなたの見ているとおり、彼の信仰は彼の行いとともにいたのであり、信仰は行いによって全うされ、』(ヤコブの手紙 2:21-22)

アブラハムは息子イサクを実際に祭壇に置いて捧げようとしました。行ないが信仰より先になることは出来ない、それで行ないを自慢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が、しかし、信仰は必ず行うことを伴うものです。誰もが自分が持っているビジョンが神から来て、生活の中で行われることを信じるならば、そのビジョンのために自分が行うべきことを行う人になるべきです。

では、信仰の人として生きていく私はどのような人になるべきでしょうか。一人のビジョンが、世界をどのように変化させたのか、ビジョンの人々を通して既に歴史の舞台で証明されたように、この時代を生きていく神様の人々がまた、ビジョンの人になることがいかに重要なのかを深く認識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して、すでに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人々に向かって、神はどのようなビジョンをくださったのか、そのビジョンのみ言葉を固く信じ、その信仰に沿って生きて行くべきです。

『ユダヤ人もギリシヤ人もなく、奴隷も自由人もなく、男子も女子もありません。なぜなら、あなたがたはみな、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一つだからです。もしあなたがたがキリストのものであれば、それによってアブラハムの子孫であり、約束による相人なのです。』(ガラテヤ人への手紙 3:28-29)

 

私たちが真に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ならば、私たちは間違いなく、アブラハムの子孫であり、約束どおり相続人です。現実の私は、決してそのビジョンを望むことができませんが、そのビジョンを与え、成し遂げる神を固く信じることが重要です。そして、そのビジョンに沿って生きていく過程で過ち失敗したとしても、それを反面教師とし再び立ち上がって、主と共に、その信仰の道を忍耐し、最後まで歩んでいけば、アブラハム、ヨセフ、ダビデ、パウロを神が偉大に用いられた器のように、私たちもまた、神のビジョンの器に用いられ、遂にそのビジョンが成就される偉大な場に立つ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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