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31] 우리가 본 받아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닌 오직 예수입니다 見(み)つめ倣(なら)う方(かた)は主(しゅ)です

우리가 본 받아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닌 오직 예수입니다

인생에는 길이 있습니다. 인생에도 길이 있다는 것은 곧 인생이 반드시 도달해야만 하는 목적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찾고 그 목적지에 이르기 위한 길을 찾으려고 많은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며 삽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 수고를 하지만 인생의 목적지와 그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마침내 허무한 인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지와 길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건 수고가 있지만 찾지 못하는 이유는 인생의 목적지와 그 목적지에 이르는 길은 피조물인 인간이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신 분이 인생의 목적지와 그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알려주어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인생의 길이라고 외치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요14:6)

예수님은 자신이 모든 인생의 길이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길인 자신을 통해 모든 인간들이 도달해야 하는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인생의 길 되신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 모든 인간들이 도달해야만 하는 그 목적지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구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나 불행하게 살던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을 지으신 분임을 믿고 오직 하나님 의 뜻과 목적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인생의 길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은 곧 인생의 목적지인 하나님께 갈 수 있는 약도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길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세상을 더 신뢰하여 세상이 말하는 그 길을 따라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예수님과 하나님은 그 세상 길을 통해 세상이 말하는 그 목적지에 남보다 더 빨리 도달하는데 수단 정도로 이용하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불행의 악순환은 눈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보단 눈에 보이는 물질의 소유가 더 매력적이고 더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착각에 빠지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더 많이 소유하려는 온 힘을 다 쏟고 삽니다.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에 모든 힘을 집중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로 연결시켜 주는 기도와 말씀묵상 그리고 예배에 시간을 드리는 것에는 인색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로마서12장2절의 핵심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뜻은 세상 따라 살지 말고, 세상에 끌려 다니지 말고, 세상으로 목적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세대를 본받으면 정말 불행하게 됩니다. 절대로 잘 살 수 없고, 구원 얻을 수 없고, 천국에 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2017년 한 해를 살았습니다. 어떠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그 길과 방법을 따라 사셨습니까? 아니면 이 세대를 본받아 욕심과 세상의 방식으로 사셨습니까? 오늘 로마서12장2절에 핵심 키워드는 ‘변화’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바꾸고 사는 방식을 과감하게 바꾸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라고 하시는 것은 ‘이제까지 목적으로 삼고 살던 것을 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산 제물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세상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입니다. 돈이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뜻과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의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목적으로 삼고 살았던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목적으로 삼았던 세상의 모든 것도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2017년 마지막 주일예배이자 마지막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지나면 우리는 새해를 맞아 한 해를 살게 될 것입니다. 살아온 지난 인생에는 항상 후회가 남길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해 이렇게 매듭을 짓게 하시는 중요한 이유는 지난 과거를 돌아보고 왜 후회만 남는 삶이었는지 돌이켜 회개하며 결단하고 새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인생의 목적이자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힘을 다해 한 해 달려가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인생의 길 되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길만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며,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만을 삶의 길과 방식을 삼겠다는 결단이 있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이제는 내 안에 사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목적도 그 목적지까지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만을 인생의 목적과 인생의 길로 삼고, 예수가 삶의 모든 방식이 되는 삶이 될 때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예배를 드리는 인생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자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을 따라 사는 참 행복한 인생이 되고 가치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見(み)つめ倣(なら)う方(かた)は主(しゅ)です

人生を道にたとえた時、そこには目的地があります。その目的地を定め、その目的地に至るために力と思いとが注がれます。いのちをかけてまで定め求めた先が何もないところであり、探しあぐねて終わってしまった先人の例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その理由を私たちは、人が探し出せる類のものではなく、その人をお造りになった方に尋ねてこそ見出すと告白します。イエスは言いました。イエス は彼に言われた.

「わたしが道であり…」(ヨハネによる福音書14章6節)

ご自身こそ人の道とされたイエスさまは、その道の目的地もまたご自身であるとおっしゃいました。

「わたしを通してでなければ, だれひとり父のみもとに来ることはありません」(ヨハネによる福音書14章6節)

イエスは人としてこられました。あらゆる人を救うためです。救いとは何かと問うならば、それは主より離れた人が主に立ち返ることです。主こそ人をお造りになった方、ただ主の心と目的にあって生きる道が本来であったのです。人の道の地図そのものがイエスなのです。そこには目的地も道も記されています。

しかし、得てして私たちはその道を知れど歩もうとしない悲しい性(さが)をもまた持っています。この世とは比類(ひるい)なき方イエスを告白しつつも、この世と比べてしまい、より信頼しようかしまいか迷うのです。イエスという道が、ある目的を達成するためのあるひとつの有用な何かとしてしますのです。この悪循環は、ある錯覚に起因しています。主との関係から、主と所有できる何かとを同じ線上においてしまうことです。そうしてどちらがより魅力的か、より幸福をもたらすかを見出そうとします。どちらが、より我を富ませ、成功をもたらし、出世街道を驀進させしめるかを問うのです。ここには祈りの不在とみことばにある黙想との不在がおのずと伴ってきます。人は、そのようにして実に吝嗇極まりない存在に陥ってしまいます。

 

 

ローマ人への手紙12章2節の中心には、「この世と調子を合わせてはいけません」があります。世にあわせて生きることなかれ、引きずられることなかれ、この世のどこかに目的地を定めるなかれ、です。そこには救いも天の御国もないのですから。

2017年一年間を振り返ります。主を見つめ歩まれたでしょうか。主とこの世とを比べ、そのものさしに己の何らかの方式や欲望が見えていたでしょうか。革新(かくしん)をキーワードとして捉えましょう。思考方式の革新です。後者の己の方式や思いを、主に捧ぐいけにえとしてしまえ、です。私たちが見つめる先には主の御国があります。銭ではなく主です。己の方式や思いにあって築いてきたものがあるのならば、それはむしろ主に捧ぐ道具と化し得ます。その実現の暁には実に美しいものが待っています。

信徒の皆さん、2017年最後の礼拝の時、新年を迎えますが、過ぎし道を思えば後ろ髪引かれることしばしの人生、しかれど前を向き新たに出発を切るときです。イエスキリストにある幸いなことよ. そのそむきを 赦され, 罪をおおわれた 人は信仰です。このスタート地点であり、道であり、目的地であるこの方にあって、死力を尽くして、ふたたび漕ぎ出します。私たちのすべてはキリスト共に十字架につけられたのですから。そして、その目的地を目指すもだたキリスト故なのです。その唯一無二の道をくださった父なる神の独り子をくださったのは、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ている故です。主へのこの霊的礼拝をささげ始める時、即ち、その道に価値が生まれるのです。

「み言葉(ことば)に生(い)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7.1001] 새 일은 묵은 땅을 기경할 때 가능합니다 新しいことのためには耕地を開拓するのが先決です

새 일은 묵은 땅을 기경할 때 가능합니다

건강한 몸을 위해선 반드시 바른 생활습관과 바른 식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인 원리도 동일합니다. 건강한 영적 상태를 위한 메카니즘이 있습니다. 건강한 영적 습관을 형성해야 합니다. 건강한 영적 습관은 오직 말씀이 삶의 원리와 방식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는 예레미야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의 모습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존재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반응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었는지를 의심할 정도입니다. 이런 상태에 이르게 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진단은 이렇습니다.

‘유대와 이스라엘 사람에게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묵은 땅을 갈고’(3)

유대 나라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완전히 떠나버렸고 영적으로 완전히 타락해서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진 그 이유를 묵은 땅 같이 굳어 버린 마음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삶의 대한 결과는 하나님의 혹독한 심판이었습니다. 유대백성들이 이런 묵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오래된 잘못된 영적 습관이 만든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묵은 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잘못된 영적 습관은 무엇일까요? 잘못된 영적 습관이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인도하신 말씀을 버리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산 불순종이 삶의 습관이 된 것입니다. 죄의 행위가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하면 그것은 묵은 땅과 같이 단단한 마음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벌인 죄의 습관은 무엇입니까?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2:13)

유대백성들이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범한 두 가지의 죄의 성향이 무엇인지 좀 더 쉽게 표현해 준 선지자가 호세아입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저희를 징계하리니 저희가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저희를 치리라”(호10:10) 유대백성들이 범한 두 가지의 죄가 무엇인지 호세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10:13)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지속적으로 지은 죄 하나는 ‘네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거부하고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죄는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한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용사가 많음 즉 강한 군대가 자신들을 지켜줄 힘으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죄는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높인 교만한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 불신의 마음으로 산 것입니다. 교만과 불신의 죄는 영적 건강도를 해치는 거침돌이자 치명적인 장애물로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탄의 날카로운 무기입니다. 이런 죄의 습관이 우리의 마음 밭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우리의 마음 밭을 쟁기질을 해서 땅을 갈아엎어야 옥토의 마음 밭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럼 쟁기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해야 될 마음의 쟁기질은 무엇입니까? 이 대답으로 주님은 바울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빌립보서313-14절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

농부는 반드시 묵은 땅은 기경하듯 우리의 마음도 단단한 마음의 되지 않고 항상 옥토와 같은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3가지의 쟁기질이 필요함을 말씀합니다.

첫째는 인생의 바른 목표를 항상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난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셋째는 앞의 푯대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입니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는 반드시 바른 생활습관과 바른 식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건강한 영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른 영적인 습관을 형성해야 합니다. 바른 영적 습관을 위해서는 마음의 쟁기질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마음을 기경할 때 하나님은 이런 약속하셨습니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10:12) 이와 같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혜의 단비를 맞을 때 우리의 삶은 이런 은혜를 받게 됩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저희는 곡식 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될 것이니라.’(14:7)

이렇게 묵은 땅을 기경한 후 하나님으로부터 내리시는 은혜의 비를 맞는 마음의 밭은 평강과 생명 넘치는 하나님의 풍성한 에덴동산의 마음이 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 밭을 가질 때 모든 하나님 말씀에 앞에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광야의 길을 내고 사막을 생명의 강을 흐리게 하여 하나님의 새 일을 이루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新しいことのためには耕地を開拓するのが先決です

 

新しい(あたら)ことのためには、耕地(こうち)を開拓(かいたく)するのが先決(せんけつ)です。

健やかな体を作るためには、良い生活習慣と良い食習慣が必要です。霊的な原理も同じです。健やかな霊の状態のためにはメカニズムがあります。 健やかな霊的な習慣を作るのが大切です。健やかな霊的習慣はただみ言葉にあって生活の原理と方式を築き上げることです。最近、私たちはエレミヤを黙想しながら父なる主を信ずる者として理解に苦しむほどユダの民たちが主に対して不信仰な姿を示すのを見ています。ユダの民たちが主の存在に対して、主を認識もできないのです。主を全く知らない人のように反応している姿が見られます。実にユダの民たちが主を信じたひとたちであったか疑われるほどです。このような状況に陥ったイスラエル民たちに対する主の診断はこうです。

‘まことに主(しゅ)は、ユダの人(ひと)とエルサレムとに、こう仰(おお)せられる。「耕地(こうち)を開拓(かいたく)せよ。」’(3節)

ユダは主から完全に離れてしまい、霊的に完全に堕落して回復不能の状態に陥ったその理由が開拓してない耕地のように頑(かたく)なな心のためだと仰っています。このような心の結果は主の厳しい裁きでした。ユダの民たちがこのような耕地のような心を持つようになったのは、長年の誤った霊的習慣が齎した結果です。

そうなら、ここで開拓されていない耕地のような頑なな心にならざるを得なかった彼らの誤った霊的習慣は何でしょうか。誤った霊的習慣というのは、主が教えられて導かれたみ言葉に背いて自分が主導的に生きた不従順が生活の習慣になったのです。ユダの民たちが犯した罪の習慣は何でしょうか。

わたしの民(たみ)(は二(に)つの悪(あく)を行(おこ)なった。湧(わ)き水(みず)の泉(いずみ)であるわたしを捨(す)てて、多く(おお)の水(みず)を、水(みず)をためることのできない、こわれた水(みず)ためを自分(じぶん)たちのために掘っ(ほっ)たのだ。”(エレミヤ書2:13)

ユダの民たちが持続的に主の前で犯した二つの罪が何だったかホセアにもっと易しく表現されています。

わたしは彼ら(かれ)を懲らしめよう(こ)と思う(おも)。彼ら(かれ)が二つ(ふた)の不義(ふぎ)のために捕えられる(とら)とき、国々(くにぐに)の民(たみ)は集められて(あつ)彼ら(かれ)を攻める(せ)。”(ホセア書10:10) ユダの民たちが犯した二つの罪が何だったのかホセアはこのように言います。

あなたがたは悪(あく)を耕し(たがや)、不正(ふせい)を刈り取り(か   と )、偽り(いつわ)の実(み)を食べて(た)いた。これはあなたが、自分(じぶん)の行ない(おこ)や、 多く(おお)の 勇士(ゆうし)に拠り頼んだ(よ  たの)からだ。”(ホセア書10:13)

イスラエルの民たちが主の前で持続的に犯した罪の一つは、‘自分の行い’に拠り頼んだことです。主が導かれた道を拒み、自分の行いに頼る道を選んだということです。
もう一つの罪は‘多くの勇士に拠り頼んだ’ことです。イスラエル民たちは多くの勇士、即ち強い軍隊が自分たちを守ってくれる力だと信じたのです。

この二つの罪は主の前で自分を高らかにした傲慢な心と主のみ言葉を信頼しない不信の心で生きたことです。傲慢と不信の罪は霊的な健康度を損なう引っかかるものであり、致命的な障害物で私たちの心が主に集中できないようにさせるサタンの鋭い武器です。このような罪の習慣で私たちの心の地が頑なになります。ですから、私たちは毎日私たちの心の地を開拓して地をすき返してこそ良い心の地として維持することができます。

では、開拓というのは具体的に何を意味しますか。私たちがすべき心の開拓は何でしょうか。この答えを主はパウロを通してこのようにおっしゃいました。ピリピ人への手紙3章13-14節です。

‘兄弟(きょうだい)たちよ。私(わたし)は、自分(じぶん)はすでに捕えた(とら)などと考えて(かんが)はいません。ただ、この一事(いちじ)に励んで(はげ)います。すなわち、うしろのものを忘れ(わす)、ひたむきに前(まえ)のものに向かって(む)進み(すす)、キリスト・イエスにおいて上(うえ)に召して(めして)くださる神(かみ)の栄冠(えいかん)を得る(える)ために、目標(もくひょう)を目指して一心(いっしん)に走って(はし)いるのです。’

農夫が耕地を開拓するように私たちの心も頑なな心にならないでいつも良い地のような心を維持するためには三つの開拓が必要だと仰います。

一つ目は、人生の正しい目標を常に心に刻むことです。

二つ目は、過ぎた過去に縛られない心を持つことです。

三つめは、前の目標に向かって最善を尽くすことです。

健やかな体を作るためには、必ず良い生活習慣と良い食習慣が必要です。健やかな霊的な状態を維持するためには良い霊的習慣をつけるのが必要です。良い霊的習慣のためには心の開拓が必ず必要です。心を開拓するとき、主はこのように約束されました。

あなたがたは耕地(こうち)を開拓(かいたく)せよ。今(いま)が、主(しゅ)を求める(もと)時(とき)だ。ついに、主(しゅ)は来て(き)、正義(せいぎ)をあなたがたに注(そそ)れる。’(ホセア書10:12)このように主から正義が注がれるとき私たちは恵みの中にいます。

‘彼ら(かれ)は帰って(かえ)来て(き)、その陰に(かげ)住み(す)、穀物(こくもつ)のように生き返り(いきかえり)、ぶどうの木(き)のように芽(め)をふき、その名声(めいせい)は レバノン(ればのん)のぶどう 酒(さけ)のようになる。’(ホセア書14:7)

このように耕地を開拓した後、主から正義が注がれる心の地は、平安といのちが溢れる主の豊かなエデンの園の心になるでしょう。このような心の地になると、すべての主のみ言葉に聞き従う道を歩むことができます。このような信仰の人たちは荒野に道を、荒地に川を設けて主の新しい事を成す人生になります。

 

[2017.6.25]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길 (4) 流れ来る主の計画にあずかる道(4)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길 (4)

 

지금의 세상은 온통 미친 듯이 우리 삶을 경쟁으로 몰아넣어 소중한 우리 인생의 가치를 생각해 볼 시간조차 주지 않고 미래에 대한 염려와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합니다. 이런 불행한 삶에 휩쓸리지 않고 마땅히 걸어가야 할 나를 위해 예비하신 창조주의 하나님께서 영광스런 미래를 성취하는 인생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살피며 일상의 인생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이었지, 그 계획을 따라 잘 가고 있는지를 잘 살피기 위해선 매일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히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길은 방법이 아닌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과의 관계보단 비 본질인 방법을 좇는 자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발람에게는 나귀를 통해서 말씀하시듯 사람마다 다른 방법을 따라 응답하시며 인생길을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그 본질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바르게 알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바른 믿음을 갖을 수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본질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하나님은 내 인생의 목적을 위한 한 수단이며 방법일 뿐입니다.

기도와 말씀묵상의 본질이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와 말씀 묵상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기도와 말씀묵상을 통해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교제를 할 수 있고 그 교제를 통해 하나님과 친밀함을 깊이 형성해 가는 것입니다. 친밀함은 연구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교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제가 아내를 알고 아내가 저를 알게 된 것은 제가 아내를 아내가 저를 연구해서 알게 된 지식이 아닙니다. 25년의 시간 한결 같이 함께 호흡하면 모든 삶을 함께 하면서 경험으로 알게 된 지식입니다.

‘상대를 안다’할 때 히브리말로 ‘야다’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야다’는 정보를 통해서, 무엇을 연구해서 얻은 지식으로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아내와 결합을 통해 형성된 인격적인 앎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연구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형성된 친밀함을 통해 알게 되는 ‘야다’의 지식입니다.

하나님께선 구원하신 친 백성들과 항상 함께 하시면서 그들의 인생길을 약속의 땅까지 이르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길을 인도하시는 근본적인 말씀의 방식을 두 가지로 알려주셨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입니다. 구름기둥은 보이는 낮에 인도하는 방법이며, 불기둥은 보이지 않는 밤의 길을 인도할 때 방법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따르기 위해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대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통한 신뢰가 따라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하는 그 근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하여 구원하신 것과 그 비천한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성취하시려는 사랑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향한 바른 관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그 경외는 신뢰와 순종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가장 중요한 전제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그 경외는 마음으로 비롯된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와 순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뢰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따라 가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큰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광야 길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신실한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들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든지 오직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향해 시선에 집중해야만 하고 그 인도를 따르기만 하면 부족함이 없는 삶이 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광야에서 거룩한 생존을 위한 길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그 인도하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움직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순종여부가 곧 광야에서 거룩한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임을 알고 매일 말씀과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깊이 형성하여 세밀한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일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영적인 긴장을 늦추지 말며, 게으르지 말며, 의심하지 말며, 흔들리지 말며, 끝까지 인내하며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만을 따라 간다면 그 끝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나님의 큰 계획이 성취 되는 영광스런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流れ来る主の計画にあずかる道(4) 

人の人生は、時間を共にする旅路です。即ち、人生の価値は、その人生の時間の中で何を授かるかによって決まります。時間の価値は、その物が何であれ、所有物では決められないのです。時間の価値が決まるのは、その時間に授かった物が、「生命」なのか「死」なのかに限ります。ここで大事なのは、我々に与えられた時間の中で「生命」を授かるためには、自分の中にある不純物を除去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ここで主は、苦難を通して不純物を除去されますが、その時、我々が心得るべきものは忍耐です。

母親のお腹の中の生命は、10か月を満たしてから、この世に生まれます。それが主の決めた時なのです。もし、誰かが早くわが子に会いたいために、6か月で出産を試みるとしたら、生きた我が子を見るのは難しいでしょう。2~3ヵ月早く生まれたとしても、その子は保育器に入れられ必ずその期間を満た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れが生命を与える主の法則だからです。

木の実も同じです。生命を満たすべき時間を無視し、せわしなく実を収穫したら、渋く苦い実を得て、その価値を失ってしまいます。即ち、人間に与えられた大事な時間が、真の生命を授かる器になるためには、苦難を通して練達する時間が必ず要るのです。

我らに向かう主の特別な計画が成就する過程で、わたしたちが覚えるべき事は、主の計画が成就するためには、「忍耐」の時間が必ず要求されるということです。なので、信仰と忍耐は常にペアになります。忍耐を可能にするのは主の信仰であり、主の信仰が真であれば、どんな状況からも忍耐で耐えられます。我らに向かう主の計画が、どのように成就するのか、聖書では苦難は忍耐を生み出し、 忍耐は練達を生み出すと記されています。練達は「検証された性分」を指し、神様への信頼を妨げるすべての不純物が除去された、主に向ける真の信頼を意味します。この性分が備わった時、希望を生み出し、主の計画を成就するのです。

ヨセフの人生は、主の計画が成就する過程を知る良いモデルケースです。ヨセフの人生をたどると、一つの人生に向ける主の計画がどのように成就する過程と結果を生むのか教えています。ヨセフが、主のくださった夢を成し遂げるために、必ず必要だったものがございました。

一つ目は、主に対する絶対信仰が必要でした。

信仰とは、主が自分の人生を完璧に守ってくださっているという信頼を言います。ヨセフに向ける主の計画がどんなに偉大でも、ヨセフがその夢を成し遂げられるのは、神様一人だけだという信仰の上に立ってないと、主の計画は成就することはなかったでしょう。

主の中には、偶然はないという信仰、主が自分の人生を誤ることなく導いてくださるという、信仰が必要でした。主の計画が成就する祝福された人生のためには、自分の人生の過去と現在、そしてすべての未来を全部、全能なる主が司る事を信じる信仰の上に立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

二つ目は、主の計画が成就するために、主は一人一人固有の霊的DNAをくださいます。

主は、我々に向かう主の計画を成就させるため、自分だけの固有の霊的DNAを、我々の日常の中で、常に表してくださいます。ヨセフの人生を覗くと、ヨセフは何処にいても、何処に向かっても、そこのつかさ、つまり、主人から全権を任され司る役目に、いつも立たされていました。ヨセフがポティパルの家に奴隷として売られた時、その家でつかさの仕事を任されます。ヨセフが濡れ衣を着せられ監獄に入れられた時も、その監獄のつかさになります。ヨセフに向かう主の大きな絵は、エジプトのつかさになる事だったのです。ヨセフのつかさの性分が妨げられそうな絶望的な環境、奴隷、囚人の身になっても、ヨセフに向ける主の計画は、このような結果に至ったのです。

「パロは更にヨセフに言った、「わたしはあなたをエジプト全のつかさとする」。」

(創世記41章41節)

我々が世の中に存在する、一番大事な主の計画は、この世のすべての人の祝福の源になる事です。なので、苦難を通して忍耐し、練達されてない人は、主の計画が成就する祝福を頂く事ができません。苦難と忍耐を通して、真の主の信仰の上に立つ者だけが、他の者の生命を救う聖霊の能力を頂くことができるのです。即ち、主の計画を成就する過程で、我々が必ず持つべき性分は「忍耐」なのです。

 患難をも喜んでいる。なぜなら、患難は忍耐を生み出し、 忍耐は錬達を生み出し、錬達は希望を生み出すことを知っているからである。」(ローマ人への手紙5章3-4節)

 

 

[2017.04.23] 나는 부활이다 (9) わたしはよみがえりです (9)

나는 부활이다 (9)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행복한 인생을 살고, 평강의 삶을 살며, 일상의 삶이 형통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느 누구이든 모두의 바램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삶과 그렇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바램을 넘어 바램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삶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만 합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은 오직 한 분만을 집중하는 삶입니다. 그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한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려주셨습니다. 요한복음을 잘 묵상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부분은 예수님께서 일곱 개의 표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예수님이 속죄양으로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의 일곱 표적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인자 위의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생명력이 부어지는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특히 요한복음의 표적들의 마지막 일곱번째 표적인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은 구약의 종결과 완성의 표적입니다. 표적들의 실체이신 진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일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다’라는 사실을 근거로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고 싶으셨습니다. 요한복음11장4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나사로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인 것이며 그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죽어서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교회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죽음에 사로잡혀 있던 교회를 살려내는 것임을 선명하게 그려준 것이 나사로의 부활사건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사로가 병이 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하신 것이고 그 일로 아들이 영광을 얻는 일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것과 하늘의 것들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가시적으로 역사와 공간속에 드러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에 의해 하나님의 성품이 계시되는 상태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즉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오래 참으심과 섬김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곳이 어디입니까? 십자가입니다. 그러니까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극명하게 드러난 십자가 사건을 예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불가능한 시체들이었던 우리가 전적으로 아들의 공로에 의해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때 그것이 아들이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사로는 예수님이 그러했듯이 완전히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사로의 와병 소식을 듣고도 이틀을 더 유하다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나사로의 무덤으로 들어가십니다. 왜 굳이 무덤을 여시고 그 무덤 속에서 썩어가는 시체를 폭로하십니까? 그게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어떤 가능성도 없는 모습, 자신의 의를 기반으로 하려는 그 인간의 죄 된 모습이 얼마나 흉측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으신 것 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무덤 속에서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아니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지금도 우리는 때때로 무덤 속에서 죽음을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지경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하나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기적으로 보여주신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하시려고 했던 가장 핵심은 죄로 인해 죽었던 인간의 실상입니다.

첫째는 우리는 자신에게 그 어떤 가능성을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지독스럽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 자신의 의를 가지고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다.그 이후에 자신을 소개하는 마지막이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자신을 ‘참 포도나무의 비유’로 마무리하고 있는 것일까요? 참 포도나무와 가지와 관계에 있어서 가지의 가치는 오직 포도나무에게 붙어 있을 때만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있는 가지는 오직 불에 던져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죽은 가지인데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그 가지를 가져다가 참 포도나무인 주님께 접붙여 살려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가지의 가치는 존재의미는 오직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은 나는 부활이다 이후 참 포도나무로 모든 결론을 지은 것입니다.

둘째로 부활은 인생의 끝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끝을 아는 자는 눈앞에 문제로 요동하거나 흔들려 무너지는 일이 없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인생의 절대 절망인 죽음이 우리 인생을 덮는다 해도 우리의 인생의 끝은 더 이상, 눈물도 괴롬도, 고통도 없는 다만 사랑과 생명만이 넘치는 천국에서 영원토록 하나님 아버지와 살게 되는 그 위대한 승리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는 분명한 약속입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는 이 위대한 승리의 날을 기억하며 일상에서 부활의 주님과 항상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어떤 문제 앞에서 견디고, 담대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믿음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わたしはよみがえりです (9)

誰しも、この世を生きながら、幸福で、平安な人生を生き、日常が常に安泰であることを願うのは、同じだと思います。しかし、必ず覚えておくべき事は、我々が願う人生と、そのように生きることは別物だということです。 その願いが現実のものになるためには、必ず我々の人生の治める方、主の御言葉どおりに生き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御言葉どおりに生きる事は、ただお一人だけに集中して生きる事です。そのお一人は、イエスキリストであります。

そこで、主はヨハネの福音書をとおして、主の御子である聖者イエスキリストがどんな方であられるか、明確に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ヨハネの福音書を深く黙想すると、イエスキリストがどんな方なのか悟ることができます。

ヨハネの福音書は、大きく二つに分けることができます。その一番目は、イエス様の七つのしるしを通して、イエスキリストが、どんな方で、この世に献げ物の羊として来られたワケを述べられております。二番目はイエスキリストの死とよみがえりについてです。

ヨハネの福音書の七つのしるしは、イエスキリストにより天が開き、天の生命力が注がれる「福音」を説明するためのものです。特にヨハネの福音書のしるしの内、最後の七つ目のしるしである「ラザロの死とよみがえり」は、旧約の終結と完成のしるしであります。しるしの実現であるイエス様が十字架に亡くなられよみがえることで、すべてが完成されるのです。

「わたしはよみがえりであり、命である。わたしを信じる者は、たとい死んでも生きる。また、生きていて、わたしを信じる者は、いつまでも死なない。あなたはこれを信じるか」。

(25-26節)

イエス様は「わたしはよみがえりである」事実の根拠として、我々にとても大事な御言葉をおっしゃられました。ヨハネの福音書11章4節です。

「この病気は死ぬほどのものではない。それは神の栄光のため、また、神の子がそれによって栄光を受けるためのものである」

ラザロの死は、イエスキリストの死であり、彼のよみがえりは、イエスキリストの陰(かげ)なのです。完全にお亡くなりになり、葬られた後によみがえられ、教会の最初の実りになられたイエスキリスト。その出来事こそが死に囚われていた教会をよみがえらせる、イエス様の働きであることを鮮明に象徴したのがラザロのよみがえりなのです。だから主は、ラザロの病気が、神の栄光のためであり、神の子がそれによって栄光を受けるとおっしゃったのです。

主の栄光とは、主のものと天のものが、主の意思により、歴史と空間上に目に見えて現れることを意味します。つまり、主の意思により主の面持ちが掲示される状態が「主の栄光」なのです。では、主が主たること、即ち、主の愛と許しと忍耐と自己犠牲が一番鮮明に表れる所は、どこでしょうか。それは十字架です。なので、死んだラザロがよみがえった出来事は、即ち、主の

栄光が明確に表れた十字架を予兆しているのです。そして、不可能と思われた屍(しかばね)であった我々が、御子の功により生き返られた事を認める時こそ、御子が栄光を受けられるのです。

だから、ラザロは、イエス様がそうであったように、完全に死な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す。それでイエス様は、ラザロの病気の知らせをお聞きになってからも二日間留まっておられたのです。そして主は、ラザロのお墓に入られました。なぜわざわざお墓の石を取り除き、お墓の中で腐っていく屍を暴露されたのでしょう。それはわたし達の姿、何の可能性もなく自分の義を基(もとい)とする罪深き姿が、どんなに醜いものなのかを生々しく目に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

我々は皆、お墓の中で罪と過ちで死んでいた者でした。すでに救われたと思っている者も、時々お墓の中の死を経験しながら生きております。我々がどんな境遇から救われた者なのかを忘れないようにする、主の心配りなのです。

イエス様が最後の奇跡として見せてくださったラザロの死とよみがえりにより、我々に伝えてくださるメッセージの核心は、罪によって死んだ人間たちの実状です。

一つ目は、我々は、自分自身からどんな可能性も探し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人間にしつように影響力を行使しようとするのは、自分の義を基(もとい)に生きようとすることです。そこで主は「わたしはよみがえり」とおっしゃり、その後に「わたしはまことのぶどうの木である」と御自身を紹介しておられます。なぜイエス様はご自身を最後に「まことのぶどうの木」と例えられたのでしょうか。まことのぶどうの木と枝の関係において、枝は、ぶどうの木とくっついている時だけに意味と価値があるのです。ぶどうの木から離れては、火の中に放り投げられる以外、なにもないのです。我々は、死んだ枝であり、農夫の主がその枝を用いて、まことのぶどうの木である主に繋いで生き返らせたのです。なので、枝はぶどうの木にくっついている時だけ存在価値があるのです。この事実を確かに認識させるため、主はご自身がよみがえりであり、その後、まことのぶどうの木であると結論付けたのです。

二つ目に、よみがえりは人生の末が何なのかを教えてくれます。

人生の末を知る者は、目の前の問題に揺さぶられたり崩れたり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主のよみがえりは、人生の絶対絶望の死が我々を襲いかかっても、我々の人生の末は、涙も苦しみも苦痛もなく、ただ愛と命だけが溢れる天国で、永遠に父なる主と共に生きる、偉大な勝利の日を迎えるという確かな約束なのです。だから、現在の我々はこの偉大な勝利の日を心待ちしながら、日常の日々を、よみがえりの主が共におられることを信じ、どんな苦難も耐えて、妥協しない信仰の道を歩ま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み言葉(ことば)に生(い)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7.01.08] 올 한 해 하나님께 승부를 걸어봅시다(신명기 6:1-9)

올 한 해 하나님께 승부를 걸어봅시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 참으로 많은 수고와 노력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인간들이 행복하게 잘살기 위하여 하는 수고와 노력을 생각하면 그것은 참으로 엄청나고 대단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는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 있고, 따라가야만 하는 방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지 않고, 그 방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잘 살지 못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길을 가고 잘못된 삶의 방식을 따르는데 있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길과 방식을 아는 것이며 그 길과 방식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우리 공동체는 요한복음을 묵상합니다. 요한복음1장1절은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1장1절과 맥을 같이 하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세상이 창조되기 전, 시간과 물질이 세상에 존재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곧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 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여기서 “그”라는 지시대명사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3)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셔서 인간들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길과 행복한 삶의 방식은 사람이 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내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것은 당연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에 길을 내신 분이시고 모든 존재하는 것에 목적에 맞는 방식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길이 있고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들이 질서 있고 아름답게 유지 되는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과 삶의 방식을 무시하고 산다면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이전과 같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으로 가득 덮인 삶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2017년 새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신명기6장1-9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이 말씀을 주시는 목적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크게 번성하며(3절) 장수하게 하려 하심(2절)과 우리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을 얻게 하시며, 우리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우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여 배부르게 하는 것(10-11절)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자기 스스로 길과 식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길과 방식을 좇아 살 수도 있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방식과 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 나름대로의 길과 방식을 만들어 살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이와 같은 삶과 세상에서 구원을 얻고 전혀 다른 세상을 살며 항상 기뻐하며 늘 감사하며 살기 위한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길과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길과 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본래 만드신 길과 방식으로 자신의 길과 방식을 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와 법도를 따라 사는 방법이 힘들고 어렵게 느낀 것을 단번에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비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신명기6장5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세상의 방식과 길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방식과 길만 보이게 될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힘들고 어려워 보여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하여 그만한 고통과 대가를 치를 만 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즐겁게 그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남은 평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의식 속에서든지 무의식 속에서든지 늘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며, 내 삶의 목적으로 하나님을 삼아 나의 모든 것을 그에게 집중하며, 쏟으며 살아가며, 그 분에게만 집중하여 그 분 말씀만 들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해는 하나님께 승부를 거는 한 해가 되게 합시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해 주신 모든 축복들을 다 쟁취하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2017년과 남은 여생의 이 푯대를 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주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今年一年を主に掛けてみましょう

人はだれも幸せを求めて実に様々な労をとります。私たち人が幸せを求めてとる労を考えると舌を巻きます。にもかかわらず、実際にこの地で幸せを謳歌する人は多くはありません。それには人の幸いに向けて脚を向けるべき道や手に取るべき方式があるにもかかわず、いざその道や方式を迫られたとき、あらぬ方向に脚や手を向けるのです。この地に息づく人の多くが幸いな暮らしを営めない大きな理由は、決して最善を尽くせないからではなく、あらぬ道、あらぬ方式に従っているためなのです。幸せに暮らすために最も大切なのは、向かうべき道や取るべき方式を知り、その道や方式に従い生きることなのです。

新年を迎えヨハネの福音書を黙想します。ヨハネの福音書1章1節は聖書のはじまり、創世記1章1節と同じ脈絡であり重要な御言葉です。

「初めに,ことばがあった.ことばは 神とともにあった.ことばは 神であった。」

この地が創造される前、時間とこの世のあらゆるものが存在する前に、ことばがおられ、そのことばが主と共におられました。しかしこのことばはまさに主ご自身なのです。この方がどのようなお方なのか、2節にこうあります。 この方は, 初めに 神とともにおられた” ここで“この方”という代名詞は、まさにイエス・キリストを指しています。イエスはどのような方でしょうか?

「すべてのものは, この 方によって 造られた. 造られたもので, この 方によらずにできたものは 一つもない.(ヨハネの福音書1:3)

そして、イエスは人としてこられこの世に降りてこられ、人々にご自身をこのように紹介されました。「わたしが 道であり, 真理であり, いのち」(ヨハネの福音書14:6)とのことです。

このことはイエスがこの地の創造主であるという宣言です。人生の道と幸いへの方式は造られた人によるものではなく、この地と人とを創造された主によるものです。それ故に、主であるイエスはご自身が道であり、真理であり、いのちであるとおっしゃったのは当然のことです。私たちが信じる主はこの地で道を造った方であり、この地のすべてに目的に沿う方式を造った方です。それ故にこの世のあらゆるものには秩序が立ち、何事にも道があり解く方式があるものです。それがあるためにあらゆるものに秩序が存在し、すべてが堅く据えられ、いのちは支えられているのです。

それを蔑ろにした場合どうでしょうか。その一部としての私たち人としての生は主が全てを創造された以前のように空虚で混沌とし闇で満ちたものと言えましょう。主により2017年新年私たちは申命記6章1-9節を賜りました。ここにはこのみことばを下さる目的が明記されています。

 

それは、乳と 蜜の 流れる 國で 大いにふえよう (3節) 長く 生きることのできるため (2節) あなたが建てなかった,大きくて,すばらしいあなたが 滿たさなかった,すべての良い物が滿ちた家々,あなたが掘らなかった掘り井あなたが植えなかったぶどう畑とオリ―ブ畑,これらをあなたに与え,あなたが食べて,滿ち足りる(10-11節)という内容です。

 

私たち人間は主の創造された被造物の中で唯一自身の道と方式を作り上げることの出来る存在です。主のお造りになった道と方式に沿って生きることとそれを拒み自分なりの道と方式を作り上げることの出来るのが人間です。このように同じ人としてこの地に生きつつも、一方で救いを得ていつも悲しみなく感謝を宿すこともできれば、そうでない生き方もあり得るのです。道と方式は確かにあります。あなたの思うそれではなく、主の本来お造りになられた道と方式をこそ選択する道があるのです。その道を進みなさい。何より、私たちが致し方なく難しくかんじてしまう主のみことばと定めと戒めとをもって生きる上での単純明快な実践方法を仰ってくださいました。その秘訣は申命記6章5節です。

「心を尽くし,精神を尽くし,力を尽くして, あな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

主を愛しなさい。心を尽くし,精神を尽くし,力を尽くして, あな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主を愛するは、この地の人々が提供する道や方式からただ主の道や方式のみ見えるのです。たとえ、容易く見えずむしろ困難に見えようとも主を愛するようになれば、主のためにその苦と対価とを払うに値すると合点が行くようになります。

 

本日、主が私や会衆の皆さまに仰って下さったように歩む道、心を尽くし,精神を尽くし,力を尽くして, あなたの神,主を愛し、生ききってみたいものです。意識、無意識の両領域においても主と共に歩ましていただいて、ただ主を見つめ、全てを主を中心にし注ぎきり、この方をこそと思い、この方のみことばを聴き生きて行きたいのです。愛する会衆の皆さま、本年を主に掛けるとしといたしませんか。皆さまが主の聖書において約束された全ての祝福を共に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しょう。このように、2017年および残された人生の標的とし、後ろを振り返ることなく走りきる私たちとなりますように主の御名で祝福いたします。

 

「み言葉に生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7.01.01] 순종은 하늘의 복을 여는 유일한 길입니다(신명기 30:8 – 20)

순종은 하늘의 복을 여는 유일한 길입니다

 

새해 첫날, 첫 주일을 맞아 어떤 말씀으로 하나님의 복을 빌까를 생각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우리를 향한 마음이 어떠하실까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를 향한 당신의 뜻을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후서 5:16-18)

이 말씀 속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상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요? 지난 과거를 볼 때 우리는 대부분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과는 거리가 있어 왔습니다. 그 이유 중 한 가지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지켜야 하는 법과 따라야만 하는 방식과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거나, 무시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장 잘 아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두 말할 것 없이 그 길을 만든 분일 것입니다. 실수하지 않고 가장 정확하게 길을 가려면 그 길을 만든 분에게 묻고 그분이 가르쳐 주는 대로 가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이 세상과 인생을 창조하셨으니 예수님이 길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신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하거나 알면서도 불구하고 불순종하여 산 것이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배제시킨 불신앙인들은 인생의 길을 만드신 하나님께 물으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찾아 나선 길은 잠시 넓은 길이 펼쳐지는 것도 같고, 열리는 것도 같고, 그 때문에 잠시 행복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는 같지만 그 길은 애초 잘못된 길이었기 그 끝은 파멸이고 사망에 이르는 불행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길을 만드신 하나님께선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를 향해 신명기 30장을 통해 불행의 길로 가지 말고 하나님께 정하신 복된 길을 갈 것을 당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 앞에 생명과 복, 사망과 화를 우리 앞에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길로 순종하여 가면 생명과 복의 길을 걷게 될 것이고 만일 자신이 주도하려는 마음의 고집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라.”(신명기 30:15-16)

순종은 축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몸에는 연습하지 않아도 길들여져 있는 불순종이 배어 있어 순종을 연습하지 않고는 순종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불순종의 영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하고 지속, 반복적으로 순종을 연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순종은 쉽지 않습니다. 불순종의 영이 여전히 우리들에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생각처럼 힘들거나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불순종의 영이 우리를 속여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거운 것이고 지키는 것은 힘든 것이다. 불가능한 것이다. 그 말씀에 순종하다가는 바보가 되고 망하고 실패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 소리가 마침 자신의 생각인양 착각하고 속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키며 사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명기 30:11-14)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잘되고 행복하길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어렵게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은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렵다고 생각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고 이미 선을 그어 놓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을 정말 믿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면 당장 손해보고, 불이익을 당하고, 잘못될 거라는 생각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히 이야기 하면 내 만족을 위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를 결심하고 순종해보면 생각처럼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순종하면 반드시 순종에 따르는 하늘의 복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것을 맛보게 되면 순종은 더욱 쉬워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순종이 하늘의 복을 여는 길입니다. 저는 2017년 한 해는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쓰다가 하늘의 복이 임하는 것을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부담스럽고 어려운 것이 있어도 용기를 내서 순종을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2017년 한 해 말씀의 순종함으로 성경에 약속된 모든 것이 각자의 삶의 영역에 어떻게 이루어지는 그 축복의 증거를 간증하고 자랑하는 한 해가 되길 축원합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従うことは天の祝福を受けるただ一つの道です

年の初めの日、初の主日を迎え、どんなメッセージで神様の祝福を願おうか悩みました。特に愛する私たちに向けられた神様の御心はどのような心であるかを考えてみました。神様は聖書を通じて私たちに向けられたその御心をこのように明かしています。

「いつも喜んでいなさい。絶えず祈りなさい。すべての事について感謝しなさい。これが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神があなたがたに望んでおられることです。」

(テサロニケ人への手紙一5:16-18)

この御言葉の中には私たちが幸せに人生を生きて欲しいと願う神様の御心を伺うことができます。しかし私たちは実際にはどれほど幸せに生きているのでしょうか。過去を振り返ったとき、私たちはほとんどの時間を喜びと感謝とは距離のある生活をしてきました。その理由の一つは幸せな人生を生きるために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法と、従わなければならない方法、歩まなければならない道があるにもかかわらず、それを知らなかったり、もしくは無視したり、自分の考えを基準にして生きてきたためです。

この世で人間が幸せになれる道を誰よりも知っている方がいるのなら、それは間違いなくその道を創られた神様であります。過ちがなく、最も正確に道を歩むためにはその道を創られた神様に聞き、神様に教えられた通りの道を進めば、何の失敗もないでしょう。

 

イエス様はこの世に来られて、ご自分を次のように紹介されました。

「わたしが 道であり、眞理であり、いのちなのです。」と。イエス様が神様であり、神様がこの世と人生を創造されたので、イエス様が道であり真理であり命であることは当然なことです。この事実を知らなかったり、知っていても無視したり、不従順に生きてきたのが人間のすべての不幸の原因です。今も変わらず神様を自分の人生から完全に排除してしまった不従順なクリスチャンは、人生の道を創られた神様に問うこともなく、自ら探ろうとしています。そうやって自分なりに見つけた道は、一瞬広い道のようにも、開けた道のようにも見え、そのために若干の幸せを感じ、良い気分であるように思えても、その道は初めから間違った道であったために、その終わりは破滅であり死であり、不幸の道です。

そのために人生の道を創られた神様は、新しい年を始めようとする私たちに向かって申命記30章を通じて不幸の道ではなく、神様が定められた祝福の道を歩むことを願っておられます。神様は私たちが歩む人生の先に生命と幸い、死と災いを置いたと語っておられます。そして神様を愛し、神様の導きに従って歩めば、生命と幸いの道を得ることができ、もし自分が主となる心の意地を捨てずに神様の御言葉に従わないのなら、必ず滅びると約束されました。

 

「見よ、私は確かに今日あなたの前にいのちと幸い、死とわざわいを置く。私が今日あなたに、あなたの神、主を愛し、主の道に步み、主の命令とおきてと定めとを守るように命じるからである。確かに、あなたは生きて、その数はふえる。あなたの神、主はあなたがはいって 行って所有しようとしている地であなたを祝福される。」(申命記30:15-16)

 

従順は祝福にむかう近道です。愛する聖徒の皆さま。私たちの体には染みついている不従順があり、従うことを練習せずには従順な人生を生きることができません。不順準の霊が私たちの人生を支配しないように常に目を覚まし、持続、反復的に従うことを練習する人生を歩まなければなりません。従順は容易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不従順の霊が依然として私たちの中に生きているためです。しかし実は、思ったより大変であったり、難しいこと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わけでもありません。不従順の霊が私たちをだまし、このような考えを持たせるためです。“神様の御言葉は重くて、守ることは大変であり不可能である。その御言葉に従っていると馬鹿になり、失敗し、滅びるだろう”と。私たちはその声がまるで自分の考えであるかのように錯覚し、だまされてしまいます。神様の御言葉に従って、それを守りながら生きることは決して難し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そのため神様は次のように私たちに語られます。

 

「まことに私が今日あなたに命じるこの命令は、あなたにとってむずかしすぎるものではなく、遠くかけ離れたものでもない。これは 天にあるのではないから、「だれが私たちのために 天に 上りそれを取ってきて、私たちに聞かせて行なわせようとするのか」と言わなくても よい。また、これは海のかなたにあるのではないから「だれが私たちのために海のかなたに 渡り、それを取ってきて、私たちに聞かせて行なわせようとするのか」と言わなくてもよい。まことに、 御言葉はあなたのごく身近にあり、あなたの口にあり、あなたの心にあって、 あなたはこれを 行なうことができる。(申命記30:11-14)

 

私たちが常識的に考えても私たちを愛しており、良き道に進み幸せになってほしいと願う神様が、その御言葉を守ることを難しくさせてはいないでしょう。神様の御言葉を守ることは絶対に難し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難しいと考える理由は神様の御言葉を守ることは難しいとすでに線引きを行い、信仰生活を行っているためです。またもう一つは神様を信じずに、御言葉に従うことは損であり、不利益であり、間違いであるという考えを先に持っているためです。より正直に言えば、自らの満足のための欲のせいで神様の御言葉に従うことが難しくなるのです。善なる神様を信じ、従うことを決心し従順になると、思ったより難しいことではないとわかることができます。そしてより大事なことがあります。多少つらい時であっても、それに従順に従えば、必ずそれに伴う天の祝福を経験することができます。これを味わうと神様に従うことがより簡単になります。

 

愛する聖徒の皆さま。従順に従うことが天の祝福を授かることができる道です。私は2017年が愛する聖徒の皆さまが神様の御言葉に従うことに努め、天からの受けられる祝福を味わう一年となることを願います。少しは重荷に感じたり、難しさがあっても、勇気を出して従順になることを練習してみてください。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