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5] 내가 생명의 떡이니라 [1](요한복음6:48)

내가 생명의 떡이니라 [1]

참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 믿음의 근거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의 기준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바르게 알지 않고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을 형성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지만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친히 “나는 누구이다.”라고 자신의 존재를 정확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밝힌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6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처음으로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그 목적은 바로 우리들에게 영생의 떡이 되어주기 위함임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는데 있어서 “생명의 떡”이라고 밝히시는 것은 우리 인간들에게 중요한 한 가지는 양식의 문제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한 이 양식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의 문제는 다 양식의 문제로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제는 어떤 양식이 인간이 영생하게 하는 양식인지를 정확히 알고 우리의 매일 영원한 양식을 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찾아 다니는 ‘세상의 양식’ ‘썩을 양식’과 영생하는 양식을 대조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6장26-27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그렇다면 주님께서 금하시는 썩을 양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썩는 양식은 오병이어의 기적 현장에서 먹은 떡과 관련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하는 양식을 구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지적은 자신들의 배를 부르게 해주신 주님께 계속해서 배부르게 해 달라고 찾아온 자들의 그 행위를 가리켜 ‘썩는 양식을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서 자신의 배를 불린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먹을 것으로 배를 채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족을 위해 주님을 좇는 자들이 바로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자들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주시겠다는 주님의 양식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 양식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4장34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여기 보시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 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주님의 양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뜻을 행하고 나의 목적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속에서 자신이 부인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을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바로 그 양식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삶 즉 나의 구원, 나의 소원 성취, 나의 만사형통, 내 질병의 치유, 나의 행복, 나의 기쁨을 위한 신앙생활이라면 그것은 결국 썩는 양식을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자신은 피조물이라는 올바른 자각 아래에서 인생의 초점이 자신을 위한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삶으로의 대전환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는 ‘나 중심’의 인생관에서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으로 탈바꿈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많은 희생을 감수하는 삶이어야 하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더 투명하게 들어내어 거짓됨을 끊어내는 삶이며, 이웃을 사랑해야 하기에 상대의 모순된 행동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감싸 안고, 품어주고, 용납해 주어야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성도는 생명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만족, 나의 자랑, 나의 행복이라는 생존의 삶을 거절하고 하나님만을 만족과 자랑과 기쁨으로 삼는 생명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금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라는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몸부림이 있는지를 항상 살피며 그 길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세상의 힘을 더 보태기 위함이거나 세상의 힘을 더 가지지 못해서 안달하며 그것을 얻는 방편이 된다면 이것은 썩을 양식을 위한 것입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わたしはいのちのパンである(1)

真の信仰者になるためには、私たちの信仰の対象である神様を正しく知ることが重要です。真の信仰の根拠は、私たちが決定するのではなく、ただ神様が決めることです。神様はその信仰の基準をただイエス・キリストに置かれました。それなら、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がどのような方かを正しく知らなくては、神様への真の信仰を持つことができません。聖書全体がイエス・キリストに対する内容ですが、特にヨハネ福音書は、イエスご自身が「私は誰かである」と自分の存在を正確に明らかにしています。イエスが自分自身について明らかにした事実を正確に理解しなくては、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を正しく信じることができません。

ヨハネの福音書6章でイエスはご自身に対して初めてこのように紹介しています。 わたしはいのちのパンである」イエスがこの世に来られ、その目的は、まさに私たちに永遠のいのちのパンになってくれるため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イエスは、自分自身を紹介するのに「いのちのぱん」と語ったのは、糧食が私たち人間にとって重要な一つの問題であることを語っておられるのです。肉身を持って生きる以上この糧食の問題から自由な人は一人もありません。世界の問題は、全てが糧食の問題から始まると思っても過言ではありません。問題は、どのような糧食が人間に永遠の命を与えてくれるのかを正確に知り毎日、永遠の糧食を取り、生きるべきです。それで、イエスは人々が命をかけて探している「世の中の糧食」、つまり「なくなる食物」と永遠の命の糧食を対照してこのように言われました。ヨハネ6章26-27節をみましょう。

イエスは答えて言われた。「まことに、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告げます。あなたがたがわたしをしているのは、しるしを見たからではなく、パンを食べて腹したからです。なくなる食物のためではなく、いつまでも保ち、永遠のいのちに至る食物のためにきなさい。それこそ、人の子があなたがたにえるものです。この人の子を父すなわち神が認証されたからです。」

それでは、主が禁じるなくなる食物はいったい何でしょうか?イエスは、なくなる食物に対しては五つのパンと二匹の魚の奇跡の現場で食べたパンに関連して言われました。主は、人々が肉身の糧食を求めることがダメだと言われ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イエスの指摘は、自分たちを腹いっぱいさせた主に継続してお腹いっぱいしてもらうために訪れた人たちの、その行為を指して「なくなる食物のための行為」と言っておられるのです。そこで、自分の腹をいっぱいにするとの意味は、単に食べることでお腹を満たすことを言うのではなく「自己足」のことを言っています。自己満足のために、主に従う者がまさに、なくなる食物のために働く者たちであることを言われたのです。

 

ここで重要なのは、主がおっしゃってくださった下さる主の糧食が何かを知ることです。その糧食は何ですか?ヨハネの福音書4章34節で教えてくれています。

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わたしを遣わした方のみこころを行い、そのみわざを成し遂げることが、わたしの食物です。

ここを見ると 「わたしを遣わした方のみこころを行い、そのみわざを成し遂げること」が主の糧食であることを知ることが出来ます。イエスは私の意を行なって私の目的を成し遂げるのではなく、自分の生活の中で自分が否定されて、ただ神様の意志を行なって、神様の事を成し遂げることを糧食とされました。その糧食を私たちに与えるということです。

ここで、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真の信仰とは何なのかを悟るようになるのです。イエス・キリストを主と告白し、その信仰によって生きることが自分自身のための生、すなわち私の救い、私の願い成就、私の万事のえ、私の病の治癒、私の幸せ、私の喜びのための信仰生活であれば、それは最終的には「なくなる食物のためのこと」とおっしゃるのです。

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ことは、神様は創造主であり、自分は被造物という正しい自の下での生活の焦点が、自分のための生活から神様の意志を行なって、神様の御胸を完全に成し遂げるための生活への大換することを言うことです。つまり聖徒は「私の中心」の人生観から「神様中心」の人生観に変わることです。このように「神様中心の生活」を生きていくことは、多くの犠牲を我慢する生活であり、世界から自分をより透明に明かし偽りを断ち切る生活であり、隣人を愛しなければならないため相手の矛盾した行動にもかかわらず、相手を抱えて、容認して与えなければなら人生を生きることです。

皆さん、聖徒は、もはや生存のために生きる者たちではありません。聖徒は、生命のために生きる人々です。私の満足、私の誇り、私の幸せというの生存の生活を拒絶し、ただ神様を満足し、誇りとし、喜びとする生命のための生活を生きることです。今は完全ではありませんが、私中心から、イエス・キリストが中心となる努力がいるかを常に見張り、その道に向かって一歩ずつ歩む人生になる必要があります。イエスを信じることが、世の中の力を増やす為か、そのの力を持たなくて熱心にしてそれを得る手段があれば、これはなくなる糧食のためのものです。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6.07.24]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2:7-15)|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2:7-15)

담임목사  장 원규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전도라고 합니다. 전도는 교회의 본질이자 성도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감당해야만 하는 사명입니다. 중요한 것은 전도는 인간의 수고와 노력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전도의 달인입니다. 평생을 전도하는데 바쳤고 바울 한 사람의 복음 증거 사역으로 이방인 선교의 길을 열어 영혼들을 살리는 구원의 큰 가교역할은 한 사도였습니다. 그런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전도가 무엇인지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면 이것은 꼭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가르쳐 주는 전도의 핵심은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과 꼭 준비해야 하는 것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전도는 인간으로 비롯된 모든 것을 버림으로 시작됩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전도의 무용지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도를 위해 반드시 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고전2:1) 이 말씀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기 위해서 나아갔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씀은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은 전도의 무용지물이다.’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말과 지혜의 탁월함을 가지고 전도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던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전도는 두 가지로만 열매를 맺습니다.

 

1)하나는 복음입니다.

사도바울은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 하였음이라.” 이 말은 ‘나는 고린도에서는 오직 예수님의 죽음, 부활’만을 전도의 유일한 근거만 삼겠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전도하는데 인간의 어떤 달변이나 설득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과 삼일 만에 부활하신 이 복음을 믿는 자에겐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영생을 얻습니다.” 이 복음의 능력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며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2)또 하나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사도바울은 전도에 있어서 꼭 준비해야 하는 한 가지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2:4)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누군가에 의해 설득 당해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오직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복음의 말씀을 듣는 자의 마음을 열어 믿음을 싹트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즉 사람의 어떤 설득이나 아름다운 지혜 때문에 생긴 믿음이 아닌 “다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비롯되었음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도는 세상에서 가장 미련 행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장 미련한 전도를 통해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 선교를 앞두고 시급히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전도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적하고 싸우는 것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악령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요 선교입니다. 이 전도에서 우리가 이기려면 복음 들고 나갈 때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도라면 꼭 해야 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강력히 명령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영혼구원은 영적 전쟁으로서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는 길은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합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영이 강력히 역사를 합니다. 사탄의 힘을 무력화시킵니다. 악령의 권세가 묶깁니다. 혼미한 심령에 생명의 빛을 비춰 죽었던 영혼을 살립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주 중에 있을 일본 단기선교를 앞두고 파송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이번 일본 선교를 앞에 놓고 우리의 소중한 어린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연결시켜 주신 리빙라이프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교회를 개척한 가정이 예수를 안 믿는데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여기에는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선 죽은 영혼들을 죽음에서 영생으로 옮겨 놓는 기적이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셨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복음과 성령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달변도 필요 없고, 지식도 필요 없습니다. 자신감도 필요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연결된 모든 다 끊고 그 미련한 복음만을 들고, 성령님만을 절대 의지하여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친히 행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神は伝道の愚かなことで世界を救うれます

 

魂を救う働きを伝導と呼ばれます。伝道は教会の本質であり、聖徒がこの世を生きる間耐えなければならない使命です。重要なのは、伝道は、人間の手間と労力、そして世界のどんな方法で行われることが決してないことを正しく知る必要があります。

使徒パウロは伝道の達人です。生涯を伝道するために捧げ、異邦人宣教の道を開いて魂を生かす救いの大きな架け橋の役目を果たした使徒でした。そのような使徒パウロは、私たちに伝道が何であるか、伝道をどのようにすべきかを教えてくれているので、これを忘れないで傾けます。 使徒パウロが教えてくれる伝道の核心は必ず捨てなければならない事と必ず準備するべき事の2つです。

一つ目、道は人としての全てを捨てる事から始まります。

사使徒パウロは福音を伝える私たちが必ず知るべきな事は問答無用がある事です。それは伝道のために必ず捨てなければならない事です。1節をご覧ください。

さて兄弟たち。私があなたがたのところへ行ったとき’(コリント人への手紙第一2:1) これは  ‘コリント教会の人々に福音を伝える時’を言うことです。そして続いた御言葉は私は、すぐれたことば、すぐれた知を用いて、神のあかしを宣べえることはしませんでした。とおっしゃっています。これは自分の口からな出るものと知道には必要ないと言うことです。自分の言葉と知恵の優れさを持って伝道しようとする考えを捨てたと言うことです。

二つ目、道は二つだけのを結びます。

1)一つは福音です。

使徒パウロは2節でこう言っています。

“なぜなら私は、あなたがたの間で、イエス・キリスト、すなわち十字架につけられた方のほかは、何も知らないことに決心したからです。”

これは ‘私はコリントでただイエスキリストの死、よみがえり’だけを伝道の雄一道として伝えると言うことです。使徒パウロがこのように言われるのは、転倒する人間のどのような達弁や説得は無駄がないということです。ただ「イエス・キリストが私の罪のために十字架で死んだ事と三日目に復活された、この福音を信じる者には、神様の子となることができ、永遠の命を得た。」この福音の力が救いの唯一の道であり、方法である事ます。

2)もう一つは聖の能力です。

사使徒パウロは伝道のために必ず必要な一つをこう言います。

“そして、私のことばと私の宣教とは、説得力のある知恵のことばによって行われたものではなく、御霊と御力の現れでした。”(コリント人への手紙第一2:4)

ここに集まった私たちは、誰かによって説得されここに来た人は誰もいません。それは不可能です。これは否定できないただ聖霊の働きです。聖霊は、福音の言葉を聞く者の心を開いて、信仰を芽生えする能力を持っています。 それで聖書は“説得力のある知恵のことばによって行われたものではなく” つまり人の説得や美しい知恵で信仰が出来る事ではなくただ聖の力で出来たことを言っています。

神様は伝道をこの世で最も愚かな行為と言います。しかし、神様は最も愚かなその伝道を通して魂を救う道具としてご利用になられました。

それゆえ、神はみこころによって、宣のことばの愚かさを通して、信じる者を救おうと定められたのです。”(コリント人への手紙第一1:21)

それでは私たちが伝道のために急いで準備するものは何でしょうか。伝道は、私たちの目に見える敵と戦うことはありません。目に見えない悪霊との戦いです。これが伝道であり、宣教であります。この伝導で、私たちが勝つために福音を持ち、聖霊の力が一緒にする必要があります。 それでパウロは伝道だけではなく聖徒であれば必ずするべきことに対してこのように強く命令しています。

すべての祈りと願いを用いて、どんなときにも御によって祈りなさい。そのためには絶えず目をさましていて、すべての聖徒のために、忍耐の限りをくし、また祈りなさい。”(エペソ人への手紙6:18)

魂の救いは、霊的な戦争としての人間の手間と労力で可能なものではなく、神の霊である聖霊のみ可能です。聖霊の満たし力を得る道は祈り以外の他の方法はありません。私たちが心を合わせて祈ると、神様の霊が強く働きます。サタンの力を無力化させます。悪霊の力が発揮できません。混迷した心霊に命の光を照らして死んだ魂を救います。

今日、私たちは今週中に行う日本短期宣教を準備し、送り礼拝として捧げています。私たちは私たちの前にいる我らの貴重な魂のために祈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神様が繋げて下さったリビングライフ教会のために祈るべきです。特に教会を作った家庭がイエスを信じないのにも関わらず教会を建てました。普段であれば、ありえないことでしょう。ここには特別な神様の働きがあります。そして、私たちは彼らのために心を尽くして祈るべきです。必ず神様は死んだ魂を死から永遠の命を与えて下さる奇跡を起こして下さいます。

この栄光なる福音を神様は私たちに任して下さいました。それのために福音と聖霊を下さいました。我らの優れた言葉も、知識も必要ではありません。自信感も必要ありません。人間的に繋がった全てを切り捨て、その愚かな福音だけを持って、聖霊だけを絶対頼り、従順すると神様がご自身で働き、栄光を捧げられます。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6.07.17]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결말을 본 사람들입니다 (야고보서5:7-11)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결말을 본 사람들입니다

(야고보서5:7-11)

담임목사  장 원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궁극적인 계획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성도들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고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통치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믿고 소망한다는 것은 곧 그 천국을 주시기 위해 다시 오실 주님을 매일 기다리면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여러 주제들이 있습니다. 그 주제들은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하고 그 주제에 따른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성경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의 핵심 주제는 영생입니다. 영생은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가장 많은 언급을 하고 있는 주제는 재물, 돈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많이 언급한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재림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1,845절이 재림에 관한 말씀이고 신약에서는 318절이 재림의 예언입니다. 신구약을 합친다면 재림은 2,100번이 넘게 언급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신앙의 본질인 구원에 관한 내용보다 왜 재물과 재림에 관해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이미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접하는 책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사람들이 성경을 읽다가 구원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경을 읽는 것과 말씀을 듣게 되는 경우는 믿음을 갖고 난 그 이후부터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을 받으라는 메시지보다 받은 구원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지켜 온전한 믿음에 서게 하고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지인 천국까지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물질과 재림을 그렇게 많이 언급했겠습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물질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정복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인생의 유일한 힘으로 삼는 온전한 믿음에 설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 즉 천국에 대한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그 나라에 이를 때까지 뒤돌아보지 않고 그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 인내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라면 재림의 신앙으로 무장해야 하고 재림의 신앙을 가진 자라면 반드시 그날이 임할 때까지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 성경이 재림에 대해 이렇게 많은 내용을 담아 두셨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라면 예수님의 재림이 속히 이 땅에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림을 소망하는 성도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떤 삶의 준비가 있어야 하는지를 바르게 아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그의 서신의 결론 부분에서 아주 중요한 한 주제에 우리 시선을 고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약5:7) 야고보 사도는 두 가지 면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강림 즉 재림이며 또 하나는 이 세상에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인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확증할 수 있는 여러 열매들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인내입니다. 이런 점에 대해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께 합격을 받은 대표적인 한 인물인 욥을 소개합니다.“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다”(약5:11)

 

그렇습니다. 욥의 믿음이 증명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욥의 고난을 끝내십니다. 그리고 불 시험을 통과 한 욥에게 축복의 제2막의 인생을 열어주십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그 온전한 믿음에 섰기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욥의 이 결말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도 현재와 미래에 어떤 시련과 고난이 주어진다고 해도 우리 모두의 인생의 결말, 역사의 결말은 주의 재림과 동시에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에게 열리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까지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인내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야고보 사도는 주님의 재림과 인내로 믿음을 굳게 하며 주님의 재림의 날까지 농부의 마음을 품고 살며, 서로 원망하는 않고, 지속적인 기도와 찬송의 삶을 살고, 진리에 떠나 있는 자를 돌아오게 하는 삶을 살라고 당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개인의 인생의 끝이 어디인지, 이 역사의 끝과 그 이후에 어떤 세상이 펼쳐지는지 그 결말을 다 본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일어나는 그 어떤 두려움에 대해 두려울 것도 없고, 그 어떤 고통스런 일을 만나도 아파할 것도, 그 어떤 억울한 일을 만나도 속상해 할 것도, 가진 것 없어 가난해도, 힘이 없어 무능력 해 보여도 이제 우리는 이 역사의 끝에 이루어질 그 영광과 승리의 날을 기억하며 모든 것을 견디며 인내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을 멋진 인생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공동체

로고스라이프 교회

クリスチャンは、世界の結末を見た人々です。

神様を信じている人々に天国の希望と信仰がなければ、信仰生活は何の意味もありません。神様の世界に向けた最終的な計画は神様を完全に信じている信徒らを介して、新しい天と新しい地を建てて、キリストと共に世界を治めることです。天国を信じて望むということは天国を与えるために再び来られる主を毎日待ち望むことです。

聖書の中で語られる複数の主題があります。この主題は私たちがこの世を生きる間、私たちの信仰を守るために必ず知っておくべきことであり、その主題に従う生活を送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聖書の中で主も多く扱われている題材は何だと思いますか。

聖書の重要な主題は永遠の命です。永遠の命は聖書が私たちに与えた目的です。それにもかかわらず聖書の中で最も多くの言及をしている主題は、富、お金に関するみ言葉です。そして、二番目に多く言及した主題は、イエス・キリストの再臨です。新旧約聖書は再臨の約束で溢れています。旧約では1,845句が再臨に関するみ言葉であり、新約聖書では318句が再臨の預言です。新旧約を合わせた場合の再臨は2,100回以上言及している主題です。

では、聖書は信仰の本質的な救いの内容よりも、なぜ富と再臨について多く言及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聖書はすでに神様を信じる民が接する本です。神様を信じていない人々が聖書を読んで救われる場合もありますが、ほとんどは聖書を読むことやみ言葉を聞くことは信仰を持つようになってからです。では、すでに神様を信じる人々に必要なのは、救いを受けなさいというメッセージより、救われた信仰をどのように継続して全き信仰で人生の究極的な目的地である天まで至るのかということです。ならば、なぜ聖書が富と再臨を沢山言及していますか。世を生きる人間に富は神様の代わりにできる力を持っています。私たちはお金を征服することなく、ただ神様だけを人生の唯一の力とする全き信仰を持つことができません。

もう一つは、全き信仰はイエス・キリストの中で完成されている神様の国、すなわち、天国の約束を信じることです。全き信仰はイエス・キリストの中で約束されたその国に至るまで振り返らず、その目的地に向かって歩いていく人生をいうのです。ここに必ず付いてくるのが忍耐です。真の信仰を持つ信徒であれば、再臨の信仰で武装すべきであり、再臨の信仰を持つ者であれば必ずその日が臨む時まで忍耐し生きるべきです。なぜ聖書は再臨について非常に多くの内容が含まれているのかがその理由の訳です。

では、真の信仰を持つ信徒であれば、イエス様の再臨が早くこの地に臨むように切に望んで生きるべきです。何よりも重要なのは再臨を望む信徒が、この地に住んでいる間

どのような生活の備えが必要なのかを正しく知っておくべきです。そして、ヤコブ使徒は

彼の手紙の結論部分で非常に注目すべき重要な主題を私たちに示しています。「こういうわけですから、兄弟たち。主がられる時まで耐え忍びなさい。」(ヤコブの手紙57

ヤコブ使徒は2つの点を強調しました。一つは、主の降臨、すなわち再臨であり、もう一つは、この世でどのような況の中でも神の約束を信じて最後まで耐え忍ぶことです。私たちの信仰を確証することができるいくつかの実がありますが、その中の一つが忍耐です。忍耐にあってはヤコブ使徒が神様に認められた代表的な人物の中で一人を紹介しています。それはヨブです。

「見なさい。耐え忍んだ人は幸いであると、私たちは考えます。あなた方は、ヨブの忍耐のことを聞いています。また、主が彼になさったことの結末を見たのです。」(ヤコブの手紙5:11

 ヨブの信仰が認められたその瞬間、神様はヨブの苦難を終わらせます。そして火の試練に合格したヨブに祝福の第2幕の人生を開かせてくださいます。ヨブは神様が認めた全き信仰を持ったので、新しい世界を開いてくださったのです。ヤコブ使徒はヨブのこの結末を私たちに語っているのは、現在もしくは将来にどのような試練と苦難が与えられても、人生や歴史の結末は主の再臨と同時に新しい天と新しい地が私たちに開かれることを伝えています。なので、その日まで、私たちの信仰を最後まで守って忍耐することを言われたのです。

最後に、ヤコブの使徒は主の再臨と忍耐で信仰を堅くし、主の再臨の日まで農家の心を抱いて生き、互いに恨むことなく、継続的な祈りと賛美の生活を送り、真理から離れている者を連れ戻すような人生を生きなさいと勧めています。

クリスチャンは人生の終わりがいつなのか、この歴史の終わりとその後にどのような世界が広がるのか、その結末をすべて見た人々です。それでは、我々はこれから起こるどんな恐怖についても恐れることなく、あらゆる痛みに直面しても苦しむことなく、どんな悔しいことに遭っても落ち込むことなく、何も持っていなくて貧しくても、力がなくて無能力に見えても、この歴史の終わりに行われるその栄光と勝利の日を覚えて、すべてのことを耐えて忍耐して喜んで感謝する生活を送る素晴らしい人生を生きましょう。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