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5] 내가 생명의 떡이니라 [1](요한복음6:48)

내가 생명의 떡이니라 [1]

참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 믿음의 근거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의 기준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바르게 알지 않고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을 형성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지만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친히 “나는 누구이다.”라고 자신의 존재를 정확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밝힌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6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처음으로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그 목적은 바로 우리들에게 영생의 떡이 되어주기 위함임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는데 있어서 “생명의 떡”이라고 밝히시는 것은 우리 인간들에게 중요한 한 가지는 양식의 문제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한 이 양식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의 문제는 다 양식의 문제로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제는 어떤 양식이 인간이 영생하게 하는 양식인지를 정확히 알고 우리의 매일 영원한 양식을 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찾아 다니는 ‘세상의 양식’ ‘썩을 양식’과 영생하는 양식을 대조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6장26-27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그렇다면 주님께서 금하시는 썩을 양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썩는 양식은 오병이어의 기적 현장에서 먹은 떡과 관련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하는 양식을 구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지적은 자신들의 배를 부르게 해주신 주님께 계속해서 배부르게 해 달라고 찾아온 자들의 그 행위를 가리켜 ‘썩는 양식을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서 자신의 배를 불린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먹을 것으로 배를 채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족을 위해 주님을 좇는 자들이 바로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자들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주시겠다는 주님의 양식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 양식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4장34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여기 보시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 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주님의 양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뜻을 행하고 나의 목적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속에서 자신이 부인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을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바로 그 양식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삶 즉 나의 구원, 나의 소원 성취, 나의 만사형통, 내 질병의 치유, 나의 행복, 나의 기쁨을 위한 신앙생활이라면 그것은 결국 썩는 양식을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자신은 피조물이라는 올바른 자각 아래에서 인생의 초점이 자신을 위한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삶으로의 대전환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는 ‘나 중심’의 인생관에서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으로 탈바꿈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많은 희생을 감수하는 삶이어야 하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더 투명하게 들어내어 거짓됨을 끊어내는 삶이며, 이웃을 사랑해야 하기에 상대의 모순된 행동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감싸 안고, 품어주고, 용납해 주어야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성도는 생명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만족, 나의 자랑, 나의 행복이라는 생존의 삶을 거절하고 하나님만을 만족과 자랑과 기쁨으로 삼는 생명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금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라는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몸부림이 있는지를 항상 살피며 그 길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세상의 힘을 더 보태기 위함이거나 세상의 힘을 더 가지지 못해서 안달하며 그것을 얻는 방편이 된다면 이것은 썩을 양식을 위한 것입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わたしはいのちのパンである(1)

真の信仰者になるためには、私たちの信仰の対象である神様を正しく知ることが重要です。真の信仰の根拠は、私たちが決定するのではなく、ただ神様が決めることです。神様はその信仰の基準をただイエス・キリストに置かれました。それなら、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がどのような方かを正しく知らなくては、神様への真の信仰を持つことができません。聖書全体がイエス・キリストに対する内容ですが、特にヨハネ福音書は、イエスご自身が「私は誰かである」と自分の存在を正確に明らかにしています。イエスが自分自身について明らかにした事実を正確に理解しなくては、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を正しく信じることができません。

ヨハネの福音書6章でイエスはご自身に対して初めてこのように紹介しています。 わたしはいのちのパンである」イエスがこの世に来られ、その目的は、まさに私たちに永遠のいのちのパンになってくれるため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イエスは、自分自身を紹介するのに「いのちのぱん」と語ったのは、糧食が私たち人間にとって重要な一つの問題であることを語っておられるのです。肉身を持って生きる以上この糧食の問題から自由な人は一人もありません。世界の問題は、全てが糧食の問題から始まると思っても過言ではありません。問題は、どのような糧食が人間に永遠の命を与えてくれるのかを正確に知り毎日、永遠の糧食を取り、生きるべきです。それで、イエスは人々が命をかけて探している「世の中の糧食」、つまり「なくなる食物」と永遠の命の糧食を対照してこのように言われました。ヨハネ6章26-27節をみましょう。

イエスは答えて言われた。「まことに、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告げます。あなたがたがわたしをしているのは、しるしを見たからではなく、パンを食べて腹したからです。なくなる食物のためではなく、いつまでも保ち、永遠のいのちに至る食物のためにきなさい。それこそ、人の子があなたがたにえるものです。この人の子を父すなわち神が認証されたからです。」

それでは、主が禁じるなくなる食物はいったい何でしょうか?イエスは、なくなる食物に対しては五つのパンと二匹の魚の奇跡の現場で食べたパンに関連して言われました。主は、人々が肉身の糧食を求めることがダメだと言われ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イエスの指摘は、自分たちを腹いっぱいさせた主に継続してお腹いっぱいしてもらうために訪れた人たちの、その行為を指して「なくなる食物のための行為」と言っておられるのです。そこで、自分の腹をいっぱいにするとの意味は、単に食べることでお腹を満たすことを言うのではなく「自己足」のことを言っています。自己満足のために、主に従う者がまさに、なくなる食物のために働く者たちであることを言われたのです。

 

ここで重要なのは、主がおっしゃってくださった下さる主の糧食が何かを知ることです。その糧食は何ですか?ヨハネの福音書4章34節で教えてくれています。

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わたしを遣わした方のみこころを行い、そのみわざを成し遂げることが、わたしの食物です。

ここを見ると 「わたしを遣わした方のみこころを行い、そのみわざを成し遂げること」が主の糧食であることを知ることが出来ます。イエスは私の意を行なって私の目的を成し遂げるのではなく、自分の生活の中で自分が否定されて、ただ神様の意志を行なって、神様の事を成し遂げることを糧食とされました。その糧食を私たちに与えるということです。

ここで、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真の信仰とは何なのかを悟るようになるのです。イエス・キリストを主と告白し、その信仰によって生きることが自分自身のための生、すなわち私の救い、私の願い成就、私の万事のえ、私の病の治癒、私の幸せ、私の喜びのための信仰生活であれば、それは最終的には「なくなる食物のためのこと」とおっしゃるのです。

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ことは、神様は創造主であり、自分は被造物という正しい自の下での生活の焦点が、自分のための生活から神様の意志を行なって、神様の御胸を完全に成し遂げるための生活への大換することを言うことです。つまり聖徒は「私の中心」の人生観から「神様中心」の人生観に変わることです。このように「神様中心の生活」を生きていくことは、多くの犠牲を我慢する生活であり、世界から自分をより透明に明かし偽りを断ち切る生活であり、隣人を愛しなければならないため相手の矛盾した行動にもかかわらず、相手を抱えて、容認して与えなければなら人生を生きることです。

皆さん、聖徒は、もはや生存のために生きる者たちではありません。聖徒は、生命のために生きる人々です。私の満足、私の誇り、私の幸せというの生存の生活を拒絶し、ただ神様を満足し、誇りとし、喜びとする生命のための生活を生きることです。今は完全ではありませんが、私中心から、イエス・キリストが中心となる努力がいるかを常に見張り、その道に向かって一歩ずつ歩む人生になる必要があります。イエスを信じることが、世の中の力を増やす為か、そのの力を持たなくて熱心にしてそれを得る手段があれば、これはなくなる糧食のためのものです。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7.01.22] 올 한 해 하나님께 승부를 걸어봅시다(요한복음 1:12-13)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 최고 재벌의 자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뉴스를 들으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성공한 재벌의 사람을 아버지로 둔 사람이 뭐가 부족해서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재벌의 딸이 그 엄청난 권세와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데도 삶의 소망과 삶의 의미를 상실한 채 비관하여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일을 감행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은 반드시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그 모든 한계를 넘어서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보장 받은 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자녀의 권세’가 무엇일까요? 자녀의 권세는 아버지의 것이 자신의 것이 되는 권세입니다. 자녀의 권세는 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권세입니다. 세상에 권세 중의 최고의 권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그런데 이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믿어 자기를 부인하여 내가 내 삶의 주인 됨을 포기하고 모든 삶의 주권이 예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인생 전부를 예수님의 손에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다.’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네 지갑 속에 있는 돈에 대한 태도에서 결정됩니다. ‘지갑의 주인이 곧 내 주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입으로 주여 라고 외쳐도 내 지갑의 주인이 나라면 내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지갑의 주인이실 때만 하나님은 진정한 나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돈보다 사람이 귀하면 그 사람은 가족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이 더 귀하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돈보다 하나님이 더 귀하게 여겨질 때 하나님은 진정한 나의 아버지가 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어야 나는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돈의 권세로는 절대로 잘 살거나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잘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이고, 그 권세를 받은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재벌의 자녀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의 자녀는 내 마음대로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순전히 내 맘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재벌의 자녀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그것은 재벌이라고 기회가 더 많은 것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기회가 적은 것도 아닙니다. 세상은 차별이 많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면 세상은 참 공평함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부터 받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이 특권을 누리게 되면 세상의 힘이 없어도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영향력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특권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자녀의 특권은 죄 용서함을 받는 특권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자녀의 특권은 평화를 누리는 특권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자녀의 특권은 인생의 바른 목적을 따라 살게 된 특권입니다.

 

성도 여러분 재벌의 자녀가 되는 것에 욕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 욕심을 두고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권세와 물질에 연연하며 평생을 불행하게 살지 말고, 우리에게 천국의 삶을 살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믿음에 욕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부적을 사서 붙이고 다니듯, 주일 날 겨우 교회 한번 출석하는 것으로 액땜하듯 신앙생활을 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욕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세히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살면서도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며 천국을 사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미신을 믿는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신앙생활도 중심 없이 늘 흔들리며 불안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 그 자녀의 권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을 로 영접하기 위하여 힘쓰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로 영접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돈의 권세로 이 세상을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로 이 땅에 살면서도 항상 천국의 삶을 누리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私たちは「父なる主」の子です

 

数年前、韓国にてもっとも勢力を誇る財閥の長を親として持つある若い女性が自らいのちを絶つという事件が起きました。このニュースに触れ、韓国ばかりか世界中の人々が、財閥系の親がいるのに、何が不満で自ら不幸を招いたのかと思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私にはその女性の未来には小さくない力が保証され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生きる希望と意味とを見出すことができず、自らこの世に背を向けてしまったのです。この世の力の限界を感じずにはいられなかった事件でした。キリスト者はこの世の限界を知っています。それを超える力ある人の道があることを知っています。この世が提供しえない、喜びと表現されたり、平安と表現される、その幸いを知っています。あらためて、問います。果たして、あなたはこの事実にあずかっていますか。

しかし, この れた , すなわち, その じた には, どもとされる 特権をお与えになっ ヨハネの福音書 1:12)

「神の子ども」とはどんな表現でしょうか。子どもの力とはその子の父の力です。この力とは両親のすべてを受け継ぐことができるという力です。この地上で最上級の力が何かと問いかければ、それは、神の子どもの力でしょう。しかし、この力はイエス・キリストを主と受け入れた人に授かるのです。

では、イエス・キリストを受け入れるという表現は具体的にどういった意味なのでしょうか。イエス・キリストを自分の主と信じ、むしろ自分自身は否み、自分が主たることをあきらめ、すべての力の主がイエスにあることを信頼し、お任せすることです。では、私たちが「主こそがわたしの主です」という事実は何によってあきらかに証明されるのでしょうか。あなたの財布事情に対する態度がそれを明かしするでしょう。「あなたのお財布の主がまさにあなたの主」だからです。いくら、尊い告白をしようとも、それがあなたが主なのか、主が主なのかを指し示すのは、主ではなくあなたなのです。主があなたの財布をつかさどる方であると時、はじめて、主こそがあなたの主であるのです。

そのお金よりもその人がより大切に思われるなら、その人はあなたの家族です。ひるがえって、主よりもお金がもっと大切に思われるのなら、主はあなたの「父なる主」ではないでしょう。お金よりも主がもっと大切に思われるので、主はあなたの「父なる主」なのです。主があなたの「父なる主」であるとき、あなたは「父なる主」の子です。

財閥の長を親に持つ子としては、思いのまま行きません。でも、「父なる主」の子であるとき、思いのまま行くので驚きなのです。

 

 

「父なる主」の子になるのは、ただ一点、あなたの心によります。「父なる主」がまずはじめに主イエス・キリストをお与えになった。その主イエスを通して私たちは救いと表されているものを知った。これは、この主イエス、「父なる主」の独り子を受け入れることを指すのです。財閥の子とは比肩しえない、この力は誰にも普遍的に公平をもって分け与えられています。持っているものの多寡に拠りません。機会は誰にでも開かれている力なのです。この世は差別化、区別をもって、動きますが、「父なる主」の子になるとき、分かります。ああ、この世は実に公平をもって成り立っている、と。特に「父なる主」の子となるとき、特権がこの地上にあります。この特権にあずかるとき、この世の力が少なくとも、幸福を知ります。共に息する人々に、及ぼす力が甚大です。では、「父なる主」の子がもつ、その特権とは果たして何を表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

 

第一に「父なる主」の子の特権は罪のゆるしを得る特権です。

第二に、「父なる主」の子の特権は平和にあずかる特権です。

第三に、「父なる主」の子の特権は人の道の目的を知り生きる特権です。

 

信徒の皆さん。財閥の子になれればなぁという気持ちと「父なる主」の子になれればなぁという気持ちを見つめてみましょう。この世の力や財に思いを置くときの幸不幸を天秤に図ることを超えて、「父なる主」の子として生きる、天の御国に生きる気持ちを強くお持ちください。地域信仰が占い用紙を手に合掌して帰ってよしなどで教えるごとく、主日に一度教会になんとか一度顔を見せる信仰生活はたしかにあります。ですが、それを超えてただ「父なる主」を仰ぐ気持ちをただ表し続ける信仰者がたしかにあるのです。イエス・キリストを信頼し共に歩むために甘受するには一筋縄ではいかないこの世に生きるのは同じです。ですが、その中で、いつも喜び、あらゆることに感謝し、天の御国に生きる信仰がある反面、韓国や日本の地域信仰の信者のようにまるで重心のずれたコマのように安定感のない不安でならないキリスト信仰者が実に少なくないのです。

私たちには心すれば、だれでも「父なる主」の子としてあずかる力がゆるされているのです。お金をとして受け入れるために力を尽くすのではなく、イエス・キリストをと受け入れることに誠心誠意、いのちを賭してまで力を尽くせる幸いをお祈りいたします。そうして、お金というこの世の論理に委ねることなく、「父なる主」の子の力をこの地に表す、天の御国人として生きる道を歩み続けられますことをお祈りいたします。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7.01.08] 올 한 해 하나님께 승부를 걸어봅시다(신명기 6:1-9)

올 한 해 하나님께 승부를 걸어봅시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 참으로 많은 수고와 노력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인간들이 행복하게 잘살기 위하여 하는 수고와 노력을 생각하면 그것은 참으로 엄청나고 대단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는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 있고, 따라가야만 하는 방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지 않고, 그 방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잘 살지 못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길을 가고 잘못된 삶의 방식을 따르는데 있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길과 방식을 아는 것이며 그 길과 방식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우리 공동체는 요한복음을 묵상합니다. 요한복음1장1절은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1장1절과 맥을 같이 하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세상이 창조되기 전, 시간과 물질이 세상에 존재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곧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 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여기서 “그”라는 지시대명사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3)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셔서 인간들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길과 행복한 삶의 방식은 사람이 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내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것은 당연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에 길을 내신 분이시고 모든 존재하는 것에 목적에 맞는 방식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길이 있고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들이 질서 있고 아름답게 유지 되는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과 삶의 방식을 무시하고 산다면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이전과 같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으로 가득 덮인 삶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2017년 새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신명기6장1-9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이 말씀을 주시는 목적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크게 번성하며(3절) 장수하게 하려 하심(2절)과 우리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을 얻게 하시며, 우리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우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여 배부르게 하는 것(10-11절)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자기 스스로 길과 식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길과 방식을 좇아 살 수도 있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방식과 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 나름대로의 길과 방식을 만들어 살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이와 같은 삶과 세상에서 구원을 얻고 전혀 다른 세상을 살며 항상 기뻐하며 늘 감사하며 살기 위한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길과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길과 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본래 만드신 길과 방식으로 자신의 길과 방식을 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와 법도를 따라 사는 방법이 힘들고 어렵게 느낀 것을 단번에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비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신명기6장5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세상의 방식과 길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방식과 길만 보이게 될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힘들고 어려워 보여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하여 그만한 고통과 대가를 치를 만 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즐겁게 그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남은 평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의식 속에서든지 무의식 속에서든지 늘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며, 내 삶의 목적으로 하나님을 삼아 나의 모든 것을 그에게 집중하며, 쏟으며 살아가며, 그 분에게만 집중하여 그 분 말씀만 들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해는 하나님께 승부를 거는 한 해가 되게 합시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해 주신 모든 축복들을 다 쟁취하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2017년과 남은 여생의 이 푯대를 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주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今年一年を主に掛けてみましょう

人はだれも幸せを求めて実に様々な労をとります。私たち人が幸せを求めてとる労を考えると舌を巻きます。にもかかわらず、実際にこの地で幸せを謳歌する人は多くはありません。それには人の幸いに向けて脚を向けるべき道や手に取るべき方式があるにもかかわず、いざその道や方式を迫られたとき、あらぬ方向に脚や手を向けるのです。この地に息づく人の多くが幸いな暮らしを営めない大きな理由は、決して最善を尽くせないからではなく、あらぬ道、あらぬ方式に従っているためなのです。幸せに暮らすために最も大切なのは、向かうべき道や取るべき方式を知り、その道や方式に従い生きることなのです。

新年を迎えヨハネの福音書を黙想します。ヨハネの福音書1章1節は聖書のはじまり、創世記1章1節と同じ脈絡であり重要な御言葉です。

「初めに,ことばがあった.ことばは 神とともにあった.ことばは 神であった。」

この地が創造される前、時間とこの世のあらゆるものが存在する前に、ことばがおられ、そのことばが主と共におられました。しかしこのことばはまさに主ご自身なのです。この方がどのようなお方なのか、2節にこうあります。 この方は, 初めに 神とともにおられた” ここで“この方”という代名詞は、まさにイエス・キリストを指しています。イエスはどのような方でしょうか?

「すべてのものは, この 方によって 造られた. 造られたもので, この 方によらずにできたものは 一つもない.(ヨハネの福音書1:3)

そして、イエスは人としてこられこの世に降りてこられ、人々にご自身をこのように紹介されました。「わたしが 道であり, 真理であり, いのち」(ヨハネの福音書14:6)とのことです。

このことはイエスがこの地の創造主であるという宣言です。人生の道と幸いへの方式は造られた人によるものではなく、この地と人とを創造された主によるものです。それ故に、主であるイエスはご自身が道であり、真理であり、いのちであるとおっしゃったのは当然のことです。私たちが信じる主はこの地で道を造った方であり、この地のすべてに目的に沿う方式を造った方です。それ故にこの世のあらゆるものには秩序が立ち、何事にも道があり解く方式があるものです。それがあるためにあらゆるものに秩序が存在し、すべてが堅く据えられ、いのちは支えられているのです。

それを蔑ろにした場合どうでしょうか。その一部としての私たち人としての生は主が全てを創造された以前のように空虚で混沌とし闇で満ちたものと言えましょう。主により2017年新年私たちは申命記6章1-9節を賜りました。ここにはこのみことばを下さる目的が明記されています。

 

それは、乳と 蜜の 流れる 國で 大いにふえよう (3節) 長く 生きることのできるため (2節) あなたが建てなかった,大きくて,すばらしいあなたが 滿たさなかった,すべての良い物が滿ちた家々,あなたが掘らなかった掘り井あなたが植えなかったぶどう畑とオリ―ブ畑,これらをあなたに与え,あなたが食べて,滿ち足りる(10-11節)という内容です。

 

私たち人間は主の創造された被造物の中で唯一自身の道と方式を作り上げることの出来る存在です。主のお造りになった道と方式に沿って生きることとそれを拒み自分なりの道と方式を作り上げることの出来るのが人間です。このように同じ人としてこの地に生きつつも、一方で救いを得ていつも悲しみなく感謝を宿すこともできれば、そうでない生き方もあり得るのです。道と方式は確かにあります。あなたの思うそれではなく、主の本来お造りになられた道と方式をこそ選択する道があるのです。その道を進みなさい。何より、私たちが致し方なく難しくかんじてしまう主のみことばと定めと戒めとをもって生きる上での単純明快な実践方法を仰ってくださいました。その秘訣は申命記6章5節です。

「心を尽くし,精神を尽くし,力を尽くして, あな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

主を愛しなさい。心を尽くし,精神を尽くし,力を尽くして, あな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主を愛するは、この地の人々が提供する道や方式からただ主の道や方式のみ見えるのです。たとえ、容易く見えずむしろ困難に見えようとも主を愛するようになれば、主のためにその苦と対価とを払うに値すると合点が行くようになります。

 

本日、主が私や会衆の皆さまに仰って下さったように歩む道、心を尽くし,精神を尽くし,力を尽くして, あなたの神,主を愛し、生ききってみたいものです。意識、無意識の両領域においても主と共に歩ましていただいて、ただ主を見つめ、全てを主を中心にし注ぎきり、この方をこそと思い、この方のみことばを聴き生きて行きたいのです。愛する会衆の皆さま、本年を主に掛けるとしといたしませんか。皆さまが主の聖書において約束された全ての祝福を共に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しょう。このように、2017年および残された人生の標的とし、後ろを振り返ることなく走りきる私たちとなりますように主の御名で祝福いたします。

 

「み言葉に生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7.01.01] 순종은 하늘의 복을 여는 유일한 길입니다(신명기 30:8 – 20)

순종은 하늘의 복을 여는 유일한 길입니다

 

새해 첫날, 첫 주일을 맞아 어떤 말씀으로 하나님의 복을 빌까를 생각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우리를 향한 마음이 어떠하실까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를 향한 당신의 뜻을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후서 5:16-18)

이 말씀 속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상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요? 지난 과거를 볼 때 우리는 대부분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과는 거리가 있어 왔습니다. 그 이유 중 한 가지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지켜야 하는 법과 따라야만 하는 방식과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거나, 무시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장 잘 아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두 말할 것 없이 그 길을 만든 분일 것입니다. 실수하지 않고 가장 정확하게 길을 가려면 그 길을 만든 분에게 묻고 그분이 가르쳐 주는 대로 가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이 세상과 인생을 창조하셨으니 예수님이 길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신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하거나 알면서도 불구하고 불순종하여 산 것이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배제시킨 불신앙인들은 인생의 길을 만드신 하나님께 물으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찾아 나선 길은 잠시 넓은 길이 펼쳐지는 것도 같고, 열리는 것도 같고, 그 때문에 잠시 행복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는 같지만 그 길은 애초 잘못된 길이었기 그 끝은 파멸이고 사망에 이르는 불행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길을 만드신 하나님께선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를 향해 신명기 30장을 통해 불행의 길로 가지 말고 하나님께 정하신 복된 길을 갈 것을 당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 앞에 생명과 복, 사망과 화를 우리 앞에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길로 순종하여 가면 생명과 복의 길을 걷게 될 것이고 만일 자신이 주도하려는 마음의 고집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라.”(신명기 30:15-16)

순종은 축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몸에는 연습하지 않아도 길들여져 있는 불순종이 배어 있어 순종을 연습하지 않고는 순종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불순종의 영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하고 지속, 반복적으로 순종을 연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순종은 쉽지 않습니다. 불순종의 영이 여전히 우리들에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생각처럼 힘들거나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불순종의 영이 우리를 속여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거운 것이고 지키는 것은 힘든 것이다. 불가능한 것이다. 그 말씀에 순종하다가는 바보가 되고 망하고 실패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 소리가 마침 자신의 생각인양 착각하고 속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키며 사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명기 30:11-14)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잘되고 행복하길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어렵게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은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렵다고 생각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고 이미 선을 그어 놓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을 정말 믿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면 당장 손해보고, 불이익을 당하고, 잘못될 거라는 생각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히 이야기 하면 내 만족을 위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를 결심하고 순종해보면 생각처럼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순종하면 반드시 순종에 따르는 하늘의 복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것을 맛보게 되면 순종은 더욱 쉬워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순종이 하늘의 복을 여는 길입니다. 저는 2017년 한 해는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쓰다가 하늘의 복이 임하는 것을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부담스럽고 어려운 것이 있어도 용기를 내서 순종을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2017년 한 해 말씀의 순종함으로 성경에 약속된 모든 것이 각자의 삶의 영역에 어떻게 이루어지는 그 축복의 증거를 간증하고 자랑하는 한 해가 되길 축원합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従うことは天の祝福を受けるただ一つの道です

年の初めの日、初の主日を迎え、どんなメッセージで神様の祝福を願おうか悩みました。特に愛する私たちに向けられた神様の御心はどのような心であるかを考えてみました。神様は聖書を通じて私たちに向けられたその御心をこのように明かしています。

「いつも喜んでいなさい。絶えず祈りなさい。すべての事について感謝しなさい。これが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神があなたがたに望んでおられることです。」

(テサロニケ人への手紙一5:16-18)

この御言葉の中には私たちが幸せに人生を生きて欲しいと願う神様の御心を伺うことができます。しかし私たちは実際にはどれほど幸せに生きているのでしょうか。過去を振り返ったとき、私たちはほとんどの時間を喜びと感謝とは距離のある生活をしてきました。その理由の一つは幸せな人生を生きるために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法と、従わなければならない方法、歩まなければならない道があるにもかかわらず、それを知らなかったり、もしくは無視したり、自分の考えを基準にして生きてきたためです。

この世で人間が幸せになれる道を誰よりも知っている方がいるのなら、それは間違いなくその道を創られた神様であります。過ちがなく、最も正確に道を歩むためにはその道を創られた神様に聞き、神様に教えられた通りの道を進めば、何の失敗もないでしょう。

 

イエス様はこの世に来られて、ご自分を次のように紹介されました。

「わたしが 道であり、眞理であり、いのちなのです。」と。イエス様が神様であり、神様がこの世と人生を創造されたので、イエス様が道であり真理であり命であることは当然なことです。この事実を知らなかったり、知っていても無視したり、不従順に生きてきたのが人間のすべての不幸の原因です。今も変わらず神様を自分の人生から完全に排除してしまった不従順なクリスチャンは、人生の道を創られた神様に問うこともなく、自ら探ろうとしています。そうやって自分なりに見つけた道は、一瞬広い道のようにも、開けた道のようにも見え、そのために若干の幸せを感じ、良い気分であるように思えても、その道は初めから間違った道であったために、その終わりは破滅であり死であり、不幸の道です。

そのために人生の道を創られた神様は、新しい年を始めようとする私たちに向かって申命記30章を通じて不幸の道ではなく、神様が定められた祝福の道を歩むことを願っておられます。神様は私たちが歩む人生の先に生命と幸い、死と災いを置いたと語っておられます。そして神様を愛し、神様の導きに従って歩めば、生命と幸いの道を得ることができ、もし自分が主となる心の意地を捨てずに神様の御言葉に従わないのなら、必ず滅びると約束されました。

 

「見よ、私は確かに今日あなたの前にいのちと幸い、死とわざわいを置く。私が今日あなたに、あなたの神、主を愛し、主の道に步み、主の命令とおきてと定めとを守るように命じるからである。確かに、あなたは生きて、その数はふえる。あなたの神、主はあなたがはいって 行って所有しようとしている地であなたを祝福される。」(申命記30:15-16)

 

従順は祝福にむかう近道です。愛する聖徒の皆さま。私たちの体には染みついている不従順があり、従うことを練習せずには従順な人生を生きることができません。不順準の霊が私たちの人生を支配しないように常に目を覚まし、持続、反復的に従うことを練習する人生を歩まなければなりません。従順は容易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不従順の霊が依然として私たちの中に生きているためです。しかし実は、思ったより大変であったり、難しいこと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わけでもありません。不従順の霊が私たちをだまし、このような考えを持たせるためです。“神様の御言葉は重くて、守ることは大変であり不可能である。その御言葉に従っていると馬鹿になり、失敗し、滅びるだろう”と。私たちはその声がまるで自分の考えであるかのように錯覚し、だまされてしまいます。神様の御言葉に従って、それを守りながら生きることは決して難し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そのため神様は次のように私たちに語られます。

 

「まことに私が今日あなたに命じるこの命令は、あなたにとってむずかしすぎるものではなく、遠くかけ離れたものでもない。これは 天にあるのではないから、「だれが私たちのために 天に 上りそれを取ってきて、私たちに聞かせて行なわせようとするのか」と言わなくても よい。また、これは海のかなたにあるのではないから「だれが私たちのために海のかなたに 渡り、それを取ってきて、私たちに聞かせて行なわせようとするのか」と言わなくてもよい。まことに、 御言葉はあなたのごく身近にあり、あなたの口にあり、あなたの心にあって、 あなたはこれを 行なうことができる。(申命記30:11-14)

 

私たちが常識的に考えても私たちを愛しており、良き道に進み幸せになってほしいと願う神様が、その御言葉を守ることを難しくさせてはいないでしょう。神様の御言葉を守ることは絶対に難し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難しいと考える理由は神様の御言葉を守ることは難しいとすでに線引きを行い、信仰生活を行っているためです。またもう一つは神様を信じずに、御言葉に従うことは損であり、不利益であり、間違いであるという考えを先に持っているためです。より正直に言えば、自らの満足のための欲のせいで神様の御言葉に従うことが難しくなるのです。善なる神様を信じ、従うことを決心し従順になると、思ったより難しいことではないとわかることができます。そしてより大事なことがあります。多少つらい時であっても、それに従順に従えば、必ずそれに伴う天の祝福を経験することができます。これを味わうと神様に従うことがより簡単になります。

 

愛する聖徒の皆さま。従順に従うことが天の祝福を授かることができる道です。私は2017年が愛する聖徒の皆さまが神様の御言葉に従うことに努め、天からの受けられる祝福を味わう一年となることを願います。少しは重荷に感じたり、難しさがあっても、勇気を出して従順になることを練習してみてください。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6.12.25] 인생은 본분을 따라 살 때만 헛되지 않습니다(전도서12:13-14)

인생은 본분을 따라 살 때만 헛되지 않습니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우리 앞에 두셨다고 말씀합니다. 행복한 인생을 사는 길은 근본을 볼 수 있는 힘을 갖추는데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가 다 그렇습니다. 경제든, 정치든, 무엇이든지 그 근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할 줄 아는 그것이 건강한 삶이자 행복한 인생을 사는 길입니다.

 

세상은 그 사람이 ‘무엇을 가졌냐?’를 따라서 평가합니다. 부자이거나, 권력을 가졌거나, 명예를 가진 자들을 높게 평가합니다. 세상은 어떤 것이든 없으면 업신여깁니다. 사람은 사람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존재요 합당한 예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사람됨이 아닌 그 사람의 소유로 가치를 평가하는 부조리한 세상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가졌느냐에 따른 평가가 아니라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느냐?가 우리의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행위를 따라 평가된다는 말은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행동은 있는데 사랑이 없다면 그것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만큼만 안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경험한 것만 아는 것이 아닌 사랑한 것만큼만 진정으로 아는 것입니다. 사랑해서 행한 일 만큼만 가치가 있는 것이며 인정을 받게 되고 남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12월1일부터 21일 특새 기간에 전도서를 매일 묵상했습니다. 전도서는 해 아래의 인생의 모든 수고가 헛될 수밖에 없지만 헛되지 않는 인생길을 알려주어 인생을 낭비하지 않도록, 가지 말아야 할 인생의 길을 걷다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끝에 서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준 복된 말씀입니다.

해 아래에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이 헛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다 영원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 아래에서 영원한 것은 곧 만물의 근본인 하나님과 연결될 때만이 모든 것이 가치 있고, 모든 것이 의미가 있으며, 수고한 모든 것이 유익한 것 즉 삶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잊혀 지지 않는 남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인생의 전체 결론을 우리에게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4)

우리가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이렇게 헛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다시 한 번 집중해야 할 것은 사람의 본분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분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닌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길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 본분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사람의 본분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친구간의 사랑을 우정이라고 말합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애정이라고 말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을 효도라고 말합니다. 신하가 임금을 사랑하는 것을 충성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경외라고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인간의 본분을 ‘말씀을 지키는 것’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경외심으로 들어나지만 여기에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지식 안에서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지식이 따릅니다. 또 지식 위에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은 반드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에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1:9)

 

사랑은 반드시 지식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지식이 없이 경외심과 사랑은 미신이거나 자기도취적 신앙생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이 귀한 독생자를 기꺼이 내어주셨다는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 자신은 감격과 기쁨 속에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에게 엄청난 구원을 값없이 주신 것이라면 이 세상에서 나보다 행복한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성탄예배이자 2016년 마지막으로 드리는 송년예배이기도 합니다. 12월 한 달 새벽을 깨우면서 하나님께서 전도서를 통해 주신 말씀 핵심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에게 보낸 이유는 잃어버린 사람의 본분을 되찾아 주었으니 헛된 인생 살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계명과 명령들을 지키며 새로운 한 해를 살라’는 말씀입니다. 새해도 어떤 일을 하든지 어느 상황 가운데 있든 이 두 가지를 온전히 붙잡고 살아낸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앞에 두신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삶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증거들로 가득한 한 해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人生は本分に沿って生きるときのみ無駄になりません。

 

人生の幸福と不幸は、遠くにありません。神様は人間の幸福と不幸は、私たちの前に置いたとおっしゃいました。幸せな人生を生きる道は根本を見ることができる力を備えてから見えます。世の中の摂理がそうです。経済も、政治も、何でもその根本に戻って考えることを知っている、それが健康的な生活であり、幸せな人生を生きる道です。

世の中では、その人が「何を持っているのか?」にてその人を評価します。金持ち、権力者、名誉を持った者たちを高く評価します。世間では何かが無ければ無視されます。人は人、それ自体だけでも価値ある存在であり、妥当な待遇を受けるべきです。

 

しかし、私たちが生きている世界は、人の人格や心ではなく、その人が何を持っているかで価値が評価される不条理な世界です。人は何を持っているかによる評価ではなく今、どのような実を結んでいるのか?が私たちの評価の重要な基準になるべきです。人が行動に沿って評価されるということをより正確に言えば、「彼が何を愛しているのか?」によって評価されるべきだということです。

 

なぜなら、行動はあるが愛がなければ、それも、何の意味がないからです。人は、自分が経験したことしか分からないと言います。本当にそうでしょうか?そうではありません。経験したことだけ知っているのではなく愛したのことだけ真に知ることです。愛して行った日分だけの価値があるものであり認められるようになって残ることになります。

 

私たちは、12月1日から21日の特別早天祈り会期間に伝道の書を毎日黙想しました。伝道の書は世の中の人生のすべての手間が無駄になるしかありませんが無駄にならない人生の道を教えてくれて、人生を無駄にしないように、歩んではいけない人生の道を歩いて取り返しのつかない不幸の終わりに立たないように、神様が与えて下さった祝福の御言葉です。

 

世の中で生きて行く私たちの人生が無駄にならないことができる道は、私たちが行うすべてが永遠と繋がることです。永遠は、万物の根本である神様と繋がる時のみ、このすべては価値があり、すべてのものは意味があり、苦労したすべてが有益になります。つまり人生の跡が消えなくて、忘れられなくて残るものになります。だから伝道者は、人生の全体の結論を私たちにこう伝えています。

 

神は、善であれ悪であれ、すべての隠れたことについて、すべてのわざをさばかれるからだ。”(伝道の書12:14)

 

 

私たちが生きてきた人生と今後生きていく人生がこんなに無駄にならないために、私

たちがもう一度考えるべきことは、人の本分に沿って生きていくことです。人の本分は自分が定め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私を造られた神様が教えてくださった道に沿って生きることです。その本分とは何ですか?

 

一つ目、人の本分は神様を恐れることです。

神を恐れるという言葉は、神を愛していることを意味します。愛はいくつかの種類があります。友達との間の愛を友情と言います。男女間の愛を愛情と言います。子が親を愛することを親孝行と言います。臣下が王を愛することを忠実だと言います。人間が神を愛しているのは、恐れと言います。

 

二つ目、人の本分は‘御言葉を守る’ことです。

神様への愛は、恐れることにて現れるがここには重要な基準があります。神様が教えてくださった知識の中で愛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愛は知識が必要です。また、知識の上に愛があるべきです。人が神様を愛するとき、その愛は必ず神様が自分を明らかにした御言葉に基づくべきです。だから使徒パウロは、ピリピの聖徒に神様への愛についてこう語っています。

 

私は祈っています。あなたがたの愛が真の知識とあらゆる識別力によって、いよいよ豊かになり、” (ピリピ人への手紙 1:9)

 

愛は必ず知識と共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御言葉の知識がない恐れと愛は迷信であるか、自己満足の信仰生活になってしまうのです。神様が私を愛して下さり、この貴重な一人っ子を下さったこの一つの事実だけでも、私たちは感激と喜びの中に生きるべき存在です。神様がこのように私に大いなる救いを値なしで与えられたものであれば、この世界で私より幸せな者がどこにあるでしょうか。

 

今日、私たちはクリスマス礼拝であり、2016年最後にささげる年越し礼拝でもあります。 12月の1ヶ月間神様が伝道の書を通して下さった御言葉の核心は「私がイエス・キリストをあなたがたに送った理由は、失われた人の本分を取り戻してあげたので無駄な人生を生きず、神を恐れ、神の命令を守って新しい一年を過ごし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

新年、何をしても、どの状況の中であっても、二つを完全に自分のことにして生きることが出来れば、神様がすでに私たちの前に置かれた幸せを存分に味わう人生となり、神様が共にいらしてる証拠に満ちた一年になるでしょう。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6.07.3]인생은 하나님만을 절대의존 할 때 복됩니다.

담임목사 장 원규

인생은 하나님만을 절대의존 할 때 복됩니다.
세상은 길을 통해 연결되고 목적지까지 이르게 됩니다. 인생도 진리에 이르는 길 있고 그 길을 따라가면 진리 즉 천국에 도달합니다. 길을 알면 아무리 먼 길도, 아무리 복잡한 길도 아무 문제없이 우리가 바라는 목적지까지 도달할 것입니다. 세상은 성공적으로 잘 살아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삶의 방식을 알며 인생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문제를 만나도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선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참된 인생의 길과 삶의 방식을 알려주셨는데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님이 인생의 길이며 또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면 영생이라는 목적지까지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만나도 예수님을 대입시키면 어렵고 힘든 모든 삶의 문제가 풀리고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잘 사는 길과 방식은 아주 간단하고 정확하고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인생 전부를 맡기는 의존적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껏 예수를 믿으며, 목사로 살면서 터득한 가장 중요한 진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살고, 자신이 주인이 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세상에서 승리하고 복을 누리지만, 자기 뜻과 욕심대로 살면 죽음이며 멸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불안과 초조와 걱정과 근심 그리고 고통과 아픔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이유도 그리고 그런 삶 때문에 결국 생명이 아닌 사망으로, 성공이 아닌 실패로,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치닫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지 아니하고, 교만과 욕심에 이끌리어 하나님을 거부하고, 부인하고, 믿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 인생을 조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내 인생을 하나님께 다 맡겨야 하는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로다.”(습3:17)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내 인생 전부를 맡기고 절대 의존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죄의 본질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면 피조물인 인간이 결코 앉아서는 안 되는 주인의 자리에 앉은 것입니다.
지금도 문제투성이인 인생을 살고 있다면, 부족함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고 있다면, 힘들고 고달프고 괴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우리가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인의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보시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다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능치 못하실 것이 전혀 없으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는 정말 믿어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을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만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말씀을 따라 인생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말씀만을 삶의 유일한 방식으로 삼아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나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 하지 않고, 인생의 결정권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 전부 맡기는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큰 은혜를 힘입게 될 것이며 이 땅에서도 천국의 평안을 누리고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멋진 인생을 우리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공동체 로고스라이프 교회

2015年 5月聖会(차준희牧師)

차준희목사님과 함께한 2015년 특별성회

심령부흥회(1) 고난의 영성, 욥2:3_ 차준희 목사

심령부흥회(2) 나무의 영성, 시1:1~3_ 차준희 목사

심령부흥회(3) 가정의 영성, 창2:24; 신6:7; 출20:12_ 차준희 목사

심령부흥회(4) 예언자의 영성, 미6:6~8_ 차준희 목사

심령부흥회(5) 체념의 영성, 출20:17_ 차준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