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5] 내가 생명의 떡이니라 [1](요한복음6:48)

내가 생명의 떡이니라 [1]

참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 믿음의 근거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의 기준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바르게 알지 않고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을 형성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지만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친히 “나는 누구이다.”라고 자신의 존재를 정확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밝힌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6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처음으로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그 목적은 바로 우리들에게 영생의 떡이 되어주기 위함임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는데 있어서 “생명의 떡”이라고 밝히시는 것은 우리 인간들에게 중요한 한 가지는 양식의 문제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한 이 양식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의 문제는 다 양식의 문제로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제는 어떤 양식이 인간이 영생하게 하는 양식인지를 정확히 알고 우리의 매일 영원한 양식을 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찾아 다니는 ‘세상의 양식’ ‘썩을 양식’과 영생하는 양식을 대조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6장26-27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그렇다면 주님께서 금하시는 썩을 양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썩는 양식은 오병이어의 기적 현장에서 먹은 떡과 관련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하는 양식을 구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지적은 자신들의 배를 부르게 해주신 주님께 계속해서 배부르게 해 달라고 찾아온 자들의 그 행위를 가리켜 ‘썩는 양식을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서 자신의 배를 불린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먹을 것으로 배를 채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족을 위해 주님을 좇는 자들이 바로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자들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주시겠다는 주님의 양식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 양식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4장34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여기 보시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 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주님의 양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뜻을 행하고 나의 목적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속에서 자신이 부인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을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바로 그 양식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삶 즉 나의 구원, 나의 소원 성취, 나의 만사형통, 내 질병의 치유, 나의 행복, 나의 기쁨을 위한 신앙생활이라면 그것은 결국 썩는 양식을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자신은 피조물이라는 올바른 자각 아래에서 인생의 초점이 자신을 위한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삶으로의 대전환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는 ‘나 중심’의 인생관에서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으로 탈바꿈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많은 희생을 감수하는 삶이어야 하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더 투명하게 들어내어 거짓됨을 끊어내는 삶이며, 이웃을 사랑해야 하기에 상대의 모순된 행동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감싸 안고, 품어주고, 용납해 주어야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성도는 생명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만족, 나의 자랑, 나의 행복이라는 생존의 삶을 거절하고 하나님만을 만족과 자랑과 기쁨으로 삼는 생명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금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라는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몸부림이 있는지를 항상 살피며 그 길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세상의 힘을 더 보태기 위함이거나 세상의 힘을 더 가지지 못해서 안달하며 그것을 얻는 방편이 된다면 이것은 썩을 양식을 위한 것입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わたしはいのちのパンである(1)

真の信仰者になるためには、私たちの信仰の対象である神様を正しく知ることが重要です。真の信仰の根拠は、私たちが決定するのではなく、ただ神様が決めることです。神様はその信仰の基準をただイエス・キリストに置かれました。それなら、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がどのような方かを正しく知らなくては、神様への真の信仰を持つことができません。聖書全体がイエス・キリストに対する内容ですが、特にヨハネ福音書は、イエスご自身が「私は誰かである」と自分の存在を正確に明らかにしています。イエスが自分自身について明らかにした事実を正確に理解しなくては、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を正しく信じることができません。

ヨハネの福音書6章でイエスはご自身に対して初めてこのように紹介しています。 わたしはいのちのパンである」イエスがこの世に来られ、その目的は、まさに私たちに永遠のいのちのパンになってくれるため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イエスは、自分自身を紹介するのに「いのちのぱん」と語ったのは、糧食が私たち人間にとって重要な一つの問題であることを語っておられるのです。肉身を持って生きる以上この糧食の問題から自由な人は一人もありません。世界の問題は、全てが糧食の問題から始まると思っても過言ではありません。問題は、どのような糧食が人間に永遠の命を与えてくれるのかを正確に知り毎日、永遠の糧食を取り、生きるべきです。それで、イエスは人々が命をかけて探している「世の中の糧食」、つまり「なくなる食物」と永遠の命の糧食を対照してこのように言われました。ヨハネ6章26-27節をみましょう。

イエスは答えて言われた。「まことに、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告げます。あなたがたがわたしをしているのは、しるしを見たからではなく、パンを食べて腹したからです。なくなる食物のためではなく、いつまでも保ち、永遠のいのちに至る食物のためにきなさい。それこそ、人の子があなたがたにえるものです。この人の子を父すなわち神が認証されたからです。」

それでは、主が禁じるなくなる食物はいったい何でしょうか?イエスは、なくなる食物に対しては五つのパンと二匹の魚の奇跡の現場で食べたパンに関連して言われました。主は、人々が肉身の糧食を求めることがダメだと言われ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イエスの指摘は、自分たちを腹いっぱいさせた主に継続してお腹いっぱいしてもらうために訪れた人たちの、その行為を指して「なくなる食物のための行為」と言っておられるのです。そこで、自分の腹をいっぱいにするとの意味は、単に食べることでお腹を満たすことを言うのではなく「自己足」のことを言っています。自己満足のために、主に従う者がまさに、なくなる食物のために働く者たちであることを言われたのです。

 

ここで重要なのは、主がおっしゃってくださった下さる主の糧食が何かを知ることです。その糧食は何ですか?ヨハネの福音書4章34節で教えてくれています。

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わたしを遣わした方のみこころを行い、そのみわざを成し遂げることが、わたしの食物です。

ここを見ると 「わたしを遣わした方のみこころを行い、そのみわざを成し遂げること」が主の糧食であることを知ることが出来ます。イエスは私の意を行なって私の目的を成し遂げるのではなく、自分の生活の中で自分が否定されて、ただ神様の意志を行なって、神様の事を成し遂げることを糧食とされました。その糧食を私たちに与えるということです。

ここで、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真の信仰とは何なのかを悟るようになるのです。イエス・キリストを主と告白し、その信仰によって生きることが自分自身のための生、すなわち私の救い、私の願い成就、私の万事のえ、私の病の治癒、私の幸せ、私の喜びのための信仰生活であれば、それは最終的には「なくなる食物のためのこと」とおっしゃるのです。

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ことは、神様は創造主であり、自分は被造物という正しい自の下での生活の焦点が、自分のための生活から神様の意志を行なって、神様の御胸を完全に成し遂げるための生活への大換することを言うことです。つまり聖徒は「私の中心」の人生観から「神様中心」の人生観に変わることです。このように「神様中心の生活」を生きていくことは、多くの犠牲を我慢する生活であり、世界から自分をより透明に明かし偽りを断ち切る生活であり、隣人を愛しなければならないため相手の矛盾した行動にもかかわらず、相手を抱えて、容認して与えなければなら人生を生きることです。

皆さん、聖徒は、もはや生存のために生きる者たちではありません。聖徒は、生命のために生きる人々です。私の満足、私の誇り、私の幸せというの生存の生活を拒絶し、ただ神様を満足し、誇りとし、喜びとする生命のための生活を生きることです。今は完全ではありませんが、私中心から、イエス・キリストが中心となる努力がいるかを常に見張り、その道に向かって一歩ずつ歩む人生になる必要があります。イエスを信じることが、世の中の力を増やす為か、そのの力を持たなくて熱心にしてそれを得る手段があれば、これはなくなる糧食のためのものです。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7.01.22] 올 한 해 하나님께 승부를 걸어봅시다(요한복음 1:12-13)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 최고 재벌의 자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뉴스를 들으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성공한 재벌의 사람을 아버지로 둔 사람이 뭐가 부족해서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재벌의 딸이 그 엄청난 권세와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데도 삶의 소망과 삶의 의미를 상실한 채 비관하여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일을 감행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은 반드시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그 모든 한계를 넘어서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보장 받은 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자녀의 권세’가 무엇일까요? 자녀의 권세는 아버지의 것이 자신의 것이 되는 권세입니다. 자녀의 권세는 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권세입니다. 세상에 권세 중의 최고의 권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그런데 이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믿어 자기를 부인하여 내가 내 삶의 주인 됨을 포기하고 모든 삶의 주권이 예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인생 전부를 예수님의 손에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다.’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네 지갑 속에 있는 돈에 대한 태도에서 결정됩니다. ‘지갑의 주인이 곧 내 주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입으로 주여 라고 외쳐도 내 지갑의 주인이 나라면 내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지갑의 주인이실 때만 하나님은 진정한 나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돈보다 사람이 귀하면 그 사람은 가족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이 더 귀하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돈보다 하나님이 더 귀하게 여겨질 때 하나님은 진정한 나의 아버지가 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어야 나는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돈의 권세로는 절대로 잘 살거나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잘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이고, 그 권세를 받은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재벌의 자녀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의 자녀는 내 마음대로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순전히 내 맘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재벌의 자녀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그것은 재벌이라고 기회가 더 많은 것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기회가 적은 것도 아닙니다. 세상은 차별이 많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면 세상은 참 공평함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부터 받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이 특권을 누리게 되면 세상의 힘이 없어도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영향력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특권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자녀의 특권은 죄 용서함을 받는 특권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자녀의 특권은 평화를 누리는 특권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자녀의 특권은 인생의 바른 목적을 따라 살게 된 특권입니다.

 

성도 여러분 재벌의 자녀가 되는 것에 욕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 욕심을 두고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권세와 물질에 연연하며 평생을 불행하게 살지 말고, 우리에게 천국의 삶을 살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믿음에 욕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부적을 사서 붙이고 다니듯, 주일 날 겨우 교회 한번 출석하는 것으로 액땜하듯 신앙생활을 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욕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세히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살면서도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며 천국을 사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미신을 믿는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신앙생활도 중심 없이 늘 흔들리며 불안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 그 자녀의 권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을 로 영접하기 위하여 힘쓰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로 영접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돈의 권세로 이 세상을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로 이 땅에 살면서도 항상 천국의 삶을 누리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私たちは「父なる主」の子です

 

数年前、韓国にてもっとも勢力を誇る財閥の長を親として持つある若い女性が自らいのちを絶つという事件が起きました。このニュースに触れ、韓国ばかりか世界中の人々が、財閥系の親がいるのに、何が不満で自ら不幸を招いたのかと思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私にはその女性の未来には小さくない力が保証され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生きる希望と意味とを見出すことができず、自らこの世に背を向けてしまったのです。この世の力の限界を感じずにはいられなかった事件でした。キリスト者はこの世の限界を知っています。それを超える力ある人の道があることを知っています。この世が提供しえない、喜びと表現されたり、平安と表現される、その幸いを知っています。あらためて、問います。果たして、あなたはこの事実にあずかっていますか。

しかし, この れた , すなわち, その じた には, どもとされる 特権をお与えになっ ヨハネの福音書 1:12)

「神の子ども」とはどんな表現でしょうか。子どもの力とはその子の父の力です。この力とは両親のすべてを受け継ぐことができるという力です。この地上で最上級の力が何かと問いかければ、それは、神の子どもの力でしょう。しかし、この力はイエス・キリストを主と受け入れた人に授かるのです。

では、イエス・キリストを受け入れるという表現は具体的にどういった意味なのでしょうか。イエス・キリストを自分の主と信じ、むしろ自分自身は否み、自分が主たることをあきらめ、すべての力の主がイエスにあることを信頼し、お任せすることです。では、私たちが「主こそがわたしの主です」という事実は何によってあきらかに証明されるのでしょうか。あなたの財布事情に対する態度がそれを明かしするでしょう。「あなたのお財布の主がまさにあなたの主」だからです。いくら、尊い告白をしようとも、それがあなたが主なのか、主が主なのかを指し示すのは、主ではなくあなたなのです。主があなたの財布をつかさどる方であると時、はじめて、主こそがあなたの主であるのです。

そのお金よりもその人がより大切に思われるなら、その人はあなたの家族です。ひるがえって、主よりもお金がもっと大切に思われるのなら、主はあなたの「父なる主」ではないでしょう。お金よりも主がもっと大切に思われるので、主はあなたの「父なる主」なのです。主があなたの「父なる主」であるとき、あなたは「父なる主」の子です。

財閥の長を親に持つ子としては、思いのまま行きません。でも、「父なる主」の子であるとき、思いのまま行くので驚きなのです。

 

 

「父なる主」の子になるのは、ただ一点、あなたの心によります。「父なる主」がまずはじめに主イエス・キリストをお与えになった。その主イエスを通して私たちは救いと表されているものを知った。これは、この主イエス、「父なる主」の独り子を受け入れることを指すのです。財閥の子とは比肩しえない、この力は誰にも普遍的に公平をもって分け与えられています。持っているものの多寡に拠りません。機会は誰にでも開かれている力なのです。この世は差別化、区別をもって、動きますが、「父なる主」の子になるとき、分かります。ああ、この世は実に公平をもって成り立っている、と。特に「父なる主」の子となるとき、特権がこの地上にあります。この特権にあずかるとき、この世の力が少なくとも、幸福を知ります。共に息する人々に、及ぼす力が甚大です。では、「父なる主」の子がもつ、その特権とは果たして何を表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

 

第一に「父なる主」の子の特権は罪のゆるしを得る特権です。

第二に、「父なる主」の子の特権は平和にあずかる特権です。

第三に、「父なる主」の子の特権は人の道の目的を知り生きる特権です。

 

信徒の皆さん。財閥の子になれればなぁという気持ちと「父なる主」の子になれればなぁという気持ちを見つめてみましょう。この世の力や財に思いを置くときの幸不幸を天秤に図ることを超えて、「父なる主」の子として生きる、天の御国に生きる気持ちを強くお持ちください。地域信仰が占い用紙を手に合掌して帰ってよしなどで教えるごとく、主日に一度教会になんとか一度顔を見せる信仰生活はたしかにあります。ですが、それを超えてただ「父なる主」を仰ぐ気持ちをただ表し続ける信仰者がたしかにあるのです。イエス・キリストを信頼し共に歩むために甘受するには一筋縄ではいかないこの世に生きるのは同じです。ですが、その中で、いつも喜び、あらゆることに感謝し、天の御国に生きる信仰がある反面、韓国や日本の地域信仰の信者のようにまるで重心のずれたコマのように安定感のない不安でならないキリスト信仰者が実に少なくないのです。

私たちには心すれば、だれでも「父なる主」の子としてあずかる力がゆるされているのです。お金をとして受け入れるために力を尽くすのではなく、イエス・キリストをと受け入れることに誠心誠意、いのちを賭してまで力を尽くせる幸いをお祈りいたします。そうして、お金というこの世の論理に委ねることなく、「父なる主」の子の力をこの地に表す、天の御国人として生きる道を歩み続けられますことをお祈りいたします。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7.01.15] 인생의 시험(1)- 안전지대(창세기12:1-4)-안성우 목사

인생의 시험(1) – 안전지대

첫 번째 시험_ 안전지대(갈대아 우르)

창 12장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납니다.

 

 

두 번째 안전지대_ 하란

[창11:31-32]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 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 란에서 죽었더라.

 

[행7: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 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의 삶의 여정의 두 가지 특징

  1. 불확실성의 연속

히 11: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1. 죽음을 담보로 한 떠남

고대지방에서 나그네는 적으로 간주합니다.

 

 

인생의 전환점_ 떠나라.

  1. 아브라함은 이 명령을 어떻게 들었을까?

 

  1.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복의 모델,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셨을까?

 

  1. 인생의 고통은 떠나지 않는 자에게 떠나라고 재촉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1. 떠나라레크 르카, 레크라는 동사는 걸으라, 어떤 삶을 살다, 떠나다라는 의미 입니다.

르카는 너를 위해서입니다.

 

레크 리스트를 만드시고 그것을 버리고, 그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Stop Doing List)을 적어 보십시오.

  1. 떠나지 않은 자의 삶의 결말

 

  1. 떠난 자에게 주시는 복

 

  1. 이렇게 떠나라

 

人生試験(1) 安全地帯

一つ目 試験安全地帯(カルデヤのウル)

創世記12章、彼は神様の御言葉を受けます。生まれた故郷、父の家を出ます。

 

 

二つ目 安全地帯:ハラン

[創世記11:31-32] テラは、その息子アブラムと、ハランの子で自分の孫のロトと、息子のアブラムの妻である嫁のサライとを伴い、彼らはカナンの地に行くために、カルデヤ人のウルからいっしょに出かけた。しかし、彼らはハランまで来て、そこに住みついた。テラの一生は二百五年であった。テラはハランで死んだ。

 

[使徒の働き7:4] そこで、アブラハムはカルデヤ人の地を出て、ハランに住みました。そして、父の死後、神は彼をそこから今あなたがたの住んでいるこの地にお移しになりました

 

 

アブラハムの人生の旅の二つの特徴

 

  1. 不確実性の連続

ヘブライ人への手紙 11: 8 信仰によって、アブラハムは、相続財産として受け取るべき地に出て行けとの召しを受けたとき、これに従い、どこに行くのかを知らないで、出て行きました。

 

 

 

  1. 死を担保にした旅

古代地方での旅人は敵として扱いされました。

 

 

 

 

人生のターニングポイント‗出て行く

  1. アブラハムはこの命令をどのように受けたのでしょうか。

 

 

 

  1. 神様はなぜ、アブラハムを福のモデル、信仰の先祖として選んだでしょうか。

 

 

 

  1. 人生の苦痛は出て行かない人に出て行けと、催促する神様の命令です。

 

 

 

  1. 出て行け(レク ルカ) レクという動詞は歩け、人生を歩む、離れの意味です。

ルカは貴方の為にという意味です。

 

 

 

 

「レク リスト」を作ってそれを捨て、それから離れることが出来るように祈り、聖霊様の助けを受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してはいけないリスト(Stop Doing List)を記載して見ましょう。

  1. 出て行かない人の人生の結末
  2. 出て行った者にえる祝福
  3. このように出て行け!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7.01.08] 올 한 해 하나님께 승부를 걸어봅시다(신명기 6:1-9)

올 한 해 하나님께 승부를 걸어봅시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 참으로 많은 수고와 노력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인간들이 행복하게 잘살기 위하여 하는 수고와 노력을 생각하면 그것은 참으로 엄청나고 대단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는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 있고, 따라가야만 하는 방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지 않고, 그 방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잘 살지 못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길을 가고 잘못된 삶의 방식을 따르는데 있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길과 방식을 아는 것이며 그 길과 방식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우리 공동체는 요한복음을 묵상합니다. 요한복음1장1절은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1장1절과 맥을 같이 하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세상이 창조되기 전, 시간과 물질이 세상에 존재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곧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 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여기서 “그”라는 지시대명사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3)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셔서 인간들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길과 행복한 삶의 방식은 사람이 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내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것은 당연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에 길을 내신 분이시고 모든 존재하는 것에 목적에 맞는 방식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길이 있고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들이 질서 있고 아름답게 유지 되는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과 삶의 방식을 무시하고 산다면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이전과 같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으로 가득 덮인 삶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2017년 새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신명기6장1-9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이 말씀을 주시는 목적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크게 번성하며(3절) 장수하게 하려 하심(2절)과 우리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을 얻게 하시며, 우리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우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여 배부르게 하는 것(10-11절)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자기 스스로 길과 식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길과 방식을 좇아 살 수도 있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방식과 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 나름대로의 길과 방식을 만들어 살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이와 같은 삶과 세상에서 구원을 얻고 전혀 다른 세상을 살며 항상 기뻐하며 늘 감사하며 살기 위한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길과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길과 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본래 만드신 길과 방식으로 자신의 길과 방식을 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와 법도를 따라 사는 방법이 힘들고 어렵게 느낀 것을 단번에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비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신명기6장5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세상의 방식과 길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방식과 길만 보이게 될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힘들고 어려워 보여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하여 그만한 고통과 대가를 치를 만 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즐겁게 그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남은 평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의식 속에서든지 무의식 속에서든지 늘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며, 내 삶의 목적으로 하나님을 삼아 나의 모든 것을 그에게 집중하며, 쏟으며 살아가며, 그 분에게만 집중하여 그 분 말씀만 들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해는 하나님께 승부를 거는 한 해가 되게 합시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해 주신 모든 축복들을 다 쟁취하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2017년과 남은 여생의 이 푯대를 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주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今年一年を主に掛けてみましょう

人はだれも幸せを求めて実に様々な労をとります。私たち人が幸せを求めてとる労を考えると舌を巻きます。にもかかわらず、実際にこの地で幸せを謳歌する人は多くはありません。それには人の幸いに向けて脚を向けるべき道や手に取るべき方式があるにもかかわず、いざその道や方式を迫られたとき、あらぬ方向に脚や手を向けるのです。この地に息づく人の多くが幸いな暮らしを営めない大きな理由は、決して最善を尽くせないからではなく、あらぬ道、あらぬ方式に従っているためなのです。幸せに暮らすために最も大切なのは、向かうべき道や取るべき方式を知り、その道や方式に従い生きることなのです。

新年を迎えヨハネの福音書を黙想します。ヨハネの福音書1章1節は聖書のはじまり、創世記1章1節と同じ脈絡であり重要な御言葉です。

「初めに,ことばがあった.ことばは 神とともにあった.ことばは 神であった。」

この地が創造される前、時間とこの世のあらゆるものが存在する前に、ことばがおられ、そのことばが主と共におられました。しかしこのことばはまさに主ご自身なのです。この方がどのようなお方なのか、2節にこうあります。 この方は, 初めに 神とともにおられた” ここで“この方”という代名詞は、まさにイエス・キリストを指しています。イエスはどのような方でしょうか?

「すべてのものは, この 方によって 造られた. 造られたもので, この 方によらずにできたものは 一つもない.(ヨハネの福音書1:3)

そして、イエスは人としてこられこの世に降りてこられ、人々にご自身をこのように紹介されました。「わたしが 道であり, 真理であり, いのち」(ヨハネの福音書14:6)とのことです。

このことはイエスがこの地の創造主であるという宣言です。人生の道と幸いへの方式は造られた人によるものではなく、この地と人とを創造された主によるものです。それ故に、主であるイエスはご自身が道であり、真理であり、いのちであるとおっしゃったのは当然のことです。私たちが信じる主はこの地で道を造った方であり、この地のすべてに目的に沿う方式を造った方です。それ故にこの世のあらゆるものには秩序が立ち、何事にも道があり解く方式があるものです。それがあるためにあらゆるものに秩序が存在し、すべてが堅く据えられ、いのちは支えられているのです。

それを蔑ろにした場合どうでしょうか。その一部としての私たち人としての生は主が全てを創造された以前のように空虚で混沌とし闇で満ちたものと言えましょう。主により2017年新年私たちは申命記6章1-9節を賜りました。ここにはこのみことばを下さる目的が明記されています。

 

それは、乳と 蜜の 流れる 國で 大いにふえよう (3節) 長く 生きることのできるため (2節) あなたが建てなかった,大きくて,すばらしいあなたが 滿たさなかった,すべての良い物が滿ちた家々,あなたが掘らなかった掘り井あなたが植えなかったぶどう畑とオリ―ブ畑,これらをあなたに与え,あなたが食べて,滿ち足りる(10-11節)という内容です。

 

私たち人間は主の創造された被造物の中で唯一自身の道と方式を作り上げることの出来る存在です。主のお造りになった道と方式に沿って生きることとそれを拒み自分なりの道と方式を作り上げることの出来るのが人間です。このように同じ人としてこの地に生きつつも、一方で救いを得ていつも悲しみなく感謝を宿すこともできれば、そうでない生き方もあり得るのです。道と方式は確かにあります。あなたの思うそれではなく、主の本来お造りになられた道と方式をこそ選択する道があるのです。その道を進みなさい。何より、私たちが致し方なく難しくかんじてしまう主のみことばと定めと戒めとをもって生きる上での単純明快な実践方法を仰ってくださいました。その秘訣は申命記6章5節です。

「心を尽くし,精神を尽くし,力を尽くして, あな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

主を愛しなさい。心を尽くし,精神を尽くし,力を尽くして, あな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主を愛するは、この地の人々が提供する道や方式からただ主の道や方式のみ見えるのです。たとえ、容易く見えずむしろ困難に見えようとも主を愛するようになれば、主のためにその苦と対価とを払うに値すると合点が行くようになります。

 

本日、主が私や会衆の皆さまに仰って下さったように歩む道、心を尽くし,精神を尽くし,力を尽くして, あなたの神,主を愛し、生ききってみたいものです。意識、無意識の両領域においても主と共に歩ましていただいて、ただ主を見つめ、全てを主を中心にし注ぎきり、この方をこそと思い、この方のみことばを聴き生きて行きたいのです。愛する会衆の皆さま、本年を主に掛けるとしといたしませんか。皆さまが主の聖書において約束された全ての祝福を共に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しょう。このように、2017年および残された人生の標的とし、後ろを振り返ることなく走りきる私たちとなりますように主の御名で祝福いたします。

 

「み言葉に生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7.01.01] 순종은 하늘의 복을 여는 유일한 길입니다(신명기 30:8 – 20)

순종은 하늘의 복을 여는 유일한 길입니다

 

새해 첫날, 첫 주일을 맞아 어떤 말씀으로 하나님의 복을 빌까를 생각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우리를 향한 마음이 어떠하실까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를 향한 당신의 뜻을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후서 5:16-18)

이 말씀 속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상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요? 지난 과거를 볼 때 우리는 대부분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과는 거리가 있어 왔습니다. 그 이유 중 한 가지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지켜야 하는 법과 따라야만 하는 방식과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거나, 무시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장 잘 아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두 말할 것 없이 그 길을 만든 분일 것입니다. 실수하지 않고 가장 정확하게 길을 가려면 그 길을 만든 분에게 묻고 그분이 가르쳐 주는 대로 가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이 세상과 인생을 창조하셨으니 예수님이 길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신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하거나 알면서도 불구하고 불순종하여 산 것이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배제시킨 불신앙인들은 인생의 길을 만드신 하나님께 물으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찾아 나선 길은 잠시 넓은 길이 펼쳐지는 것도 같고, 열리는 것도 같고, 그 때문에 잠시 행복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는 같지만 그 길은 애초 잘못된 길이었기 그 끝은 파멸이고 사망에 이르는 불행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길을 만드신 하나님께선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를 향해 신명기 30장을 통해 불행의 길로 가지 말고 하나님께 정하신 복된 길을 갈 것을 당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 앞에 생명과 복, 사망과 화를 우리 앞에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길로 순종하여 가면 생명과 복의 길을 걷게 될 것이고 만일 자신이 주도하려는 마음의 고집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라.”(신명기 30:15-16)

순종은 축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몸에는 연습하지 않아도 길들여져 있는 불순종이 배어 있어 순종을 연습하지 않고는 순종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불순종의 영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하고 지속, 반복적으로 순종을 연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순종은 쉽지 않습니다. 불순종의 영이 여전히 우리들에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생각처럼 힘들거나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불순종의 영이 우리를 속여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거운 것이고 지키는 것은 힘든 것이다. 불가능한 것이다. 그 말씀에 순종하다가는 바보가 되고 망하고 실패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 소리가 마침 자신의 생각인양 착각하고 속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키며 사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명기 30:11-14)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잘되고 행복하길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어렵게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은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렵다고 생각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고 이미 선을 그어 놓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을 정말 믿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면 당장 손해보고, 불이익을 당하고, 잘못될 거라는 생각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히 이야기 하면 내 만족을 위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를 결심하고 순종해보면 생각처럼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순종하면 반드시 순종에 따르는 하늘의 복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것을 맛보게 되면 순종은 더욱 쉬워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순종이 하늘의 복을 여는 길입니다. 저는 2017년 한 해는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쓰다가 하늘의 복이 임하는 것을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부담스럽고 어려운 것이 있어도 용기를 내서 순종을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2017년 한 해 말씀의 순종함으로 성경에 약속된 모든 것이 각자의 삶의 영역에 어떻게 이루어지는 그 축복의 증거를 간증하고 자랑하는 한 해가 되길 축원합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従うことは天の祝福を受けるただ一つの道です

年の初めの日、初の主日を迎え、どんなメッセージで神様の祝福を願おうか悩みました。特に愛する私たちに向けられた神様の御心はどのような心であるかを考えてみました。神様は聖書を通じて私たちに向けられたその御心をこのように明かしています。

「いつも喜んでいなさい。絶えず祈りなさい。すべての事について感謝しなさい。これが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神があなたがたに望んでおられることです。」

(テサロニケ人への手紙一5:16-18)

この御言葉の中には私たちが幸せに人生を生きて欲しいと願う神様の御心を伺うことができます。しかし私たちは実際にはどれほど幸せに生きているのでしょうか。過去を振り返ったとき、私たちはほとんどの時間を喜びと感謝とは距離のある生活をしてきました。その理由の一つは幸せな人生を生きるために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法と、従わなければならない方法、歩まなければならない道があるにもかかわらず、それを知らなかったり、もしくは無視したり、自分の考えを基準にして生きてきたためです。

この世で人間が幸せになれる道を誰よりも知っている方がいるのなら、それは間違いなくその道を創られた神様であります。過ちがなく、最も正確に道を歩むためにはその道を創られた神様に聞き、神様に教えられた通りの道を進めば、何の失敗もないでしょう。

 

イエス様はこの世に来られて、ご自分を次のように紹介されました。

「わたしが 道であり、眞理であり、いのちなのです。」と。イエス様が神様であり、神様がこの世と人生を創造されたので、イエス様が道であり真理であり命であることは当然なことです。この事実を知らなかったり、知っていても無視したり、不従順に生きてきたのが人間のすべての不幸の原因です。今も変わらず神様を自分の人生から完全に排除してしまった不従順なクリスチャンは、人生の道を創られた神様に問うこともなく、自ら探ろうとしています。そうやって自分なりに見つけた道は、一瞬広い道のようにも、開けた道のようにも見え、そのために若干の幸せを感じ、良い気分であるように思えても、その道は初めから間違った道であったために、その終わりは破滅であり死であり、不幸の道です。

そのために人生の道を創られた神様は、新しい年を始めようとする私たちに向かって申命記30章を通じて不幸の道ではなく、神様が定められた祝福の道を歩むことを願っておられます。神様は私たちが歩む人生の先に生命と幸い、死と災いを置いたと語っておられます。そして神様を愛し、神様の導きに従って歩めば、生命と幸いの道を得ることができ、もし自分が主となる心の意地を捨てずに神様の御言葉に従わないのなら、必ず滅びると約束されました。

 

「見よ、私は確かに今日あなたの前にいのちと幸い、死とわざわいを置く。私が今日あなたに、あなたの神、主を愛し、主の道に步み、主の命令とおきてと定めとを守るように命じるからである。確かに、あなたは生きて、その数はふえる。あなたの神、主はあなたがはいって 行って所有しようとしている地であなたを祝福される。」(申命記30:15-16)

 

従順は祝福にむかう近道です。愛する聖徒の皆さま。私たちの体には染みついている不従順があり、従うことを練習せずには従順な人生を生きることができません。不順準の霊が私たちの人生を支配しないように常に目を覚まし、持続、反復的に従うことを練習する人生を歩まなければなりません。従順は容易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不従順の霊が依然として私たちの中に生きているためです。しかし実は、思ったより大変であったり、難しいこと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わけでもありません。不従順の霊が私たちをだまし、このような考えを持たせるためです。“神様の御言葉は重くて、守ることは大変であり不可能である。その御言葉に従っていると馬鹿になり、失敗し、滅びるだろう”と。私たちはその声がまるで自分の考えであるかのように錯覚し、だまされてしまいます。神様の御言葉に従って、それを守りながら生きることは決して難し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そのため神様は次のように私たちに語られます。

 

「まことに私が今日あなたに命じるこの命令は、あなたにとってむずかしすぎるものではなく、遠くかけ離れたものでもない。これは 天にあるのではないから、「だれが私たちのために 天に 上りそれを取ってきて、私たちに聞かせて行なわせようとするのか」と言わなくても よい。また、これは海のかなたにあるのではないから「だれが私たちのために海のかなたに 渡り、それを取ってきて、私たちに聞かせて行なわせようとするのか」と言わなくてもよい。まことに、 御言葉はあなたのごく身近にあり、あなたの口にあり、あなたの心にあって、 あなたはこれを 行なうことができる。(申命記30:11-14)

 

私たちが常識的に考えても私たちを愛しており、良き道に進み幸せになってほしいと願う神様が、その御言葉を守ることを難しくさせてはいないでしょう。神様の御言葉を守ることは絶対に難し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難しいと考える理由は神様の御言葉を守ることは難しいとすでに線引きを行い、信仰生活を行っているためです。またもう一つは神様を信じずに、御言葉に従うことは損であり、不利益であり、間違いであるという考えを先に持っているためです。より正直に言えば、自らの満足のための欲のせいで神様の御言葉に従うことが難しくなるのです。善なる神様を信じ、従うことを決心し従順になると、思ったより難しいことではないとわかることができます。そしてより大事なことがあります。多少つらい時であっても、それに従順に従えば、必ずそれに伴う天の祝福を経験することができます。これを味わうと神様に従うことがより簡単になります。

 

愛する聖徒の皆さま。従順に従うことが天の祝福を授かることができる道です。私は2017年が愛する聖徒の皆さまが神様の御言葉に従うことに努め、天からの受けられる祝福を味わう一年となることを願います。少しは重荷に感じたり、難しさがあっても、勇気を出して従順になることを練習してみてください。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6.07.31] 마른 뼈도 말씀과 성령으로 살립니다 (에스겔37:1-10)

마른 뼈도 말씀과 성령으로 살립니다

(에스겔37:1-10)

담임목사 장 원규

에스겔 선지자는 어느 날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간 골짜기에서 마른 뼈들이 가득 차 환상을 보았습니다. 에스겔이 이 환상은 접한 것은 주전 580년경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채 모든 희망을 접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이 환상의 골짜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의외의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물으셨던 이 질문을 여러분들이 받았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니 과연 이 뼈들이 다시 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마른 뼈의 환상의 정황이 이 일본 땅이며, 바로 주님을 떠나 살고 있는 모든 영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과거 예수를 믿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난 경험은 있었지만 지금 생명의 기운을 다 상실한 영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생명의 기운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의 열정도 없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도 없고, 삶의 목적도 상실하여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면서도 불구하고 죽음 직전에 있는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영적호흡기로 의존하여 생명을 연명하는 영적 뇌사상태로 살아가는 그 모든 영혼들이 바로 이 ‘마른 뼈와 같다’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처방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전반부는 진단이고, 후반부는 처방입니다. 진단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처방은 두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과연 이 뼈들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겠습니까?

첫째 처방은 ‘주의 말씀을 대언하라.’는 것입니다.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37:4-8)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첫째 처방을 만나게 됩니다. 마른 뼈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재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마른 뼈라도 있으면 그것에 생명을 입히는 문제가 하나님 앞에 결코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에스겔은 순종하여 뼈들을 향해 대언했을 때 ‘마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지고 마침내 가죽이 덮여지고 생기를 불어넣을 때 살아나고 큰 군대가 이루어 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할 일은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여 말씀을 대언하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처방은 ‘성령을 향해 대언하라.’는 것입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겔37:9-10)

하나님께서 마른 뼈를 살리는 두 번째 처방은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대언에 따라 마른 뼈들이 맞추어 지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지고 가죽이 입혀짐으로 사람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기에게 대언하라는 것입니다. 생기가 누구입니까? 성령이십니다. 생기를 히브리어로 루아흐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성령으로 번역되면서 동시에 생기 혹은 호흡으로도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 생기는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을 때 그 생기와 똑같은 단어로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곧 성령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두 처방을 종합해 보면 죽어 있는 인간이나 혹은 죽은 공동체 즉 에스겔 시대의 이스라엘 더 나아가 죽어 있는 교회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말씀성령의 필요성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 성령이 임하실 때 그 순간이 완벽하게 죽은 자들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매년마다 성락성결교회와 로고스라이프교회는 연합으로 일본단기선교를 진행해 왔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드려 선교에 동참하는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 축원합니다. 선교는 인류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생명을 일으키는 사역입니다. 예수그리스도만이 생명이십니다. 오늘 이 세상이 필요한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들의 부족이 아닌 구원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죄로 비롯된 것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바램은 행복입니다. 죽은 자들에게 참된 행복은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죄로 인해 죽음이 온 것입니다.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죽은 영혼을 살리는 길은 없습니다. 죄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십자가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진리를 전하기 위해 선교팀은 리빙라이프 교회에 파송하는 것입니다. 선교팀이여! 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선교의 현장에 투입되는 여러분들이 무장해야 하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로 무장한다는 것은 나의 모든 삶의 방식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만 사역에 임하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과 성령만이 생명을 살리는 유일한 방식이자 길입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의 불행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의 공급의 부족이 불행을 불러옵니다. 말씀과 성령 이것만인 생명의 풍성함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로고스라이프 교회

……..

枯れた骨も御言葉と聖霊で生き返されます

 

預言者エゼキエルはある日神様の霊に導かれた谷で枯れた骨が積み上げられている幻を見ました。エゼキエルがこの幻を見た時というのは、B.C.580年頃、イスラエルがバビロンの奴隷として連れてこられ、すべての希望を失ったときでした。しかし、この幻の谷で神様は預言者エゼキエルに意外な質問を投げられます。「人の子よ、これらの骨は生き返ることができようか。」と。

神様がエゼキエルに問いかけたこの質問を、皆さんが受けたとしたら、皆さんはどのように答えますか?この骨たちが生き返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私はこの枯れた骨の様子がこの日本の地であり、まさに主のもとを離れて生きている霊であると考えます。さらに、過去イエスを信じてから死んでいた魂が生き返る経験はしたけれど、今その生命の気をすべてなくしてしまった魂を言っているのだと思います。今、沢山のクリスチャンが神様を信じながらも生命の気力をなくしたまま生きています。心に熱情もなく、神様の国に対する望みも、人生の目的もなくし、なぜ生きているのかさえも悟れずにいながらも、死の真近にいる自分の霊の状態を全く認識できずに、かろうじて生命を維持している霊的脳死状態で生きている魂たちが、まさにこの枯れた骨のよう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今日の本文はその処方箋を私たちに与えています。今日の本文は大きく二つの段落に分かれ、前半は診断、後半は処方です。診断は死んだということを言っています。処方においては二つのことを語っています。この枯れた骨がどのように生き返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

 

一つ目の処方箋は‘神の御言葉を予言し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

「主は私に仰せられた。「これらの骨に預言して言え。干からびた骨よ。主のことばを聞け。神である主はこれらの骨にこう仰せられる。見よ、わたしがおまえたちの中に息を吹き入れるので、おまえたちは生き返る。」エゼキエル書 3748

 

私たちはこの御言葉を通して、一つ目の処方を受けることができます。干からびた骨に向かって神様の御言葉を予言し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神様の御言葉は天地を創られた材料です。何もない中、人間を創造された神様にとって、枯れた骨に生命を着せることはなんの問題にもならないでしょう。エゼキエルはその御言葉に従い、骨に向かって叫んだとき、‘そして彼らは生き返り、自分の足で立ち上がった。非常に多くの集であった。’といっています。

皆さん。私たちがすべきことは御言葉に従うことのみです。私たちは全能なる神様を信じ、神様がおっしゃったとおりに御言葉を叫ぶだけでよいのです。

 

 

二つ目の処方は‘霊に向かって予言せよ’ということです。

「主はわたしに言われた。「預言せよ。人の子よ、預言して言いなさい。主なる神はこう言われる。、四方から吹きれ。よ、これらの殺されたものの上に吹きつけよ。そうすれば彼らは生き返る。」エゼキエル書 37910

 

神様が枯れた骨を生かされた二つ目の処方は霊に向かって予言し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御言葉の予言によって、乾いた骨が合わさり、筋が付き、肉が付き、皮膚がつくことで人の姿になりました。しかし一つだけ足りないもものがありました。それは何でしょうか。「その中には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そのために神様は霊に向かって予言し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霊とは何でしょうか。聖霊のことです。霊をヘブライ語でルアフといいます。この単語は聖霊と訳されながらも、息または呼吸として訳されることができます。この息は神様が土から人間を創られ、その鼻に息を吹き込まれたといったときのその息と同じ単語であり神様の呼吸のことです。この二つの処方を合わせてみると、死んでいる人々または死んだ共同体、つまりエゼキエル時代のイスラエル、また死んでいる教会を生き返すために、御言葉と聖霊の必要性を強調されたのです。御言葉と聖霊が臨まれるときに、その瞬間完全に死んでいた者の生命の歴史が始まるのです。

毎年、ソンラク教会とロゴスライフ教会は合同で日本短期宣教を行ってきました。自らの時間と物資とを捧げ、宣教に参加している兄弟姉妹に神様の恵みが溢れるよう、祝福します。宣教は人類の救世主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を伝え、生命を救う仕事です。イエスキリストだけが命であります。今日この世界に必要なことはこの世にある何かの不足ではなく、救いの問題です。人間の不幸はまさに罪によるものであると、人々に伝えなくてはなりません。世界のすべての共通の望みは幸福です。死んだ者にとって真の幸福は生命を得ることです。人間の不幸は罪による死です。人間の罪の問題を解決できなければ、死んだ霊を生き返らせる道はありません。罪を解決できる道はただ一つ、十字架のみです。今日私たちはこの真理を伝えるために宣教チームをリビングライフ教会に送るのです。宣教チームの皆さま、この使命に真摯に努め、成し遂げ、勝利してください。宣教の現場に送られる皆様がまとうべきは十字架です。十字架で武装するということは私のすべての人生の方法を下しておくことです。神様の方法で、働きにのぞむことです。ただ御言葉と聖霊だけが声明を生き返らせる唯一の方法であり道です。私たち各自の人生の不幸、またイエスキリストを通じた生命の供給の不足が不幸を呼び起こします。御言葉と聖霊、これだけが生命の豊かさを得る唯一の道です。

 

 

 

「み言葉に生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6.07.24]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2:7-15)|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2:7-15)

담임목사  장 원규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전도라고 합니다. 전도는 교회의 본질이자 성도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감당해야만 하는 사명입니다. 중요한 것은 전도는 인간의 수고와 노력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전도의 달인입니다. 평생을 전도하는데 바쳤고 바울 한 사람의 복음 증거 사역으로 이방인 선교의 길을 열어 영혼들을 살리는 구원의 큰 가교역할은 한 사도였습니다. 그런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전도가 무엇인지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면 이것은 꼭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가르쳐 주는 전도의 핵심은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과 꼭 준비해야 하는 것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전도는 인간으로 비롯된 모든 것을 버림으로 시작됩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전도의 무용지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도를 위해 반드시 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고전2:1) 이 말씀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기 위해서 나아갔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씀은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은 전도의 무용지물이다.’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말과 지혜의 탁월함을 가지고 전도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던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전도는 두 가지로만 열매를 맺습니다.

 

1)하나는 복음입니다.

사도바울은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 하였음이라.” 이 말은 ‘나는 고린도에서는 오직 예수님의 죽음, 부활’만을 전도의 유일한 근거만 삼겠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전도하는데 인간의 어떤 달변이나 설득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과 삼일 만에 부활하신 이 복음을 믿는 자에겐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영생을 얻습니다.” 이 복음의 능력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며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2)또 하나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사도바울은 전도에 있어서 꼭 준비해야 하는 한 가지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2:4)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누군가에 의해 설득 당해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오직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복음의 말씀을 듣는 자의 마음을 열어 믿음을 싹트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즉 사람의 어떤 설득이나 아름다운 지혜 때문에 생긴 믿음이 아닌 “다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비롯되었음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도는 세상에서 가장 미련 행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장 미련한 전도를 통해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 선교를 앞두고 시급히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전도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적하고 싸우는 것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악령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요 선교입니다. 이 전도에서 우리가 이기려면 복음 들고 나갈 때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도라면 꼭 해야 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강력히 명령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영혼구원은 영적 전쟁으로서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는 길은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합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영이 강력히 역사를 합니다. 사탄의 힘을 무력화시킵니다. 악령의 권세가 묶깁니다. 혼미한 심령에 생명의 빛을 비춰 죽었던 영혼을 살립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주 중에 있을 일본 단기선교를 앞두고 파송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이번 일본 선교를 앞에 놓고 우리의 소중한 어린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연결시켜 주신 리빙라이프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교회를 개척한 가정이 예수를 안 믿는데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여기에는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선 죽은 영혼들을 죽음에서 영생으로 옮겨 놓는 기적이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셨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복음과 성령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달변도 필요 없고, 지식도 필요 없습니다. 자신감도 필요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연결된 모든 다 끊고 그 미련한 복음만을 들고, 성령님만을 절대 의지하여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친히 행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神は伝道の愚かなことで世界を救うれます

 

魂を救う働きを伝導と呼ばれます。伝道は教会の本質であり、聖徒がこの世を生きる間耐えなければならない使命です。重要なのは、伝道は、人間の手間と労力、そして世界のどんな方法で行われることが決してないことを正しく知る必要があります。

使徒パウロは伝道の達人です。生涯を伝道するために捧げ、異邦人宣教の道を開いて魂を生かす救いの大きな架け橋の役目を果たした使徒でした。そのような使徒パウロは、私たちに伝道が何であるか、伝道をどのようにすべきかを教えてくれているので、これを忘れないで傾けます。 使徒パウロが教えてくれる伝道の核心は必ず捨てなければならない事と必ず準備するべき事の2つです。

一つ目、道は人としての全てを捨てる事から始まります。

사使徒パウロは福音を伝える私たちが必ず知るべきな事は問答無用がある事です。それは伝道のために必ず捨てなければならない事です。1節をご覧ください。

さて兄弟たち。私があなたがたのところへ行ったとき’(コリント人への手紙第一2:1) これは  ‘コリント教会の人々に福音を伝える時’を言うことです。そして続いた御言葉は私は、すぐれたことば、すぐれた知を用いて、神のあかしを宣べえることはしませんでした。とおっしゃっています。これは自分の口からな出るものと知道には必要ないと言うことです。自分の言葉と知恵の優れさを持って伝道しようとする考えを捨てたと言うことです。

二つ目、道は二つだけのを結びます。

1)一つは福音です。

使徒パウロは2節でこう言っています。

“なぜなら私は、あなたがたの間で、イエス・キリスト、すなわち十字架につけられた方のほかは、何も知らないことに決心したからです。”

これは ‘私はコリントでただイエスキリストの死、よみがえり’だけを伝道の雄一道として伝えると言うことです。使徒パウロがこのように言われるのは、転倒する人間のどのような達弁や説得は無駄がないということです。ただ「イエス・キリストが私の罪のために十字架で死んだ事と三日目に復活された、この福音を信じる者には、神様の子となることができ、永遠の命を得た。」この福音の力が救いの唯一の道であり、方法である事ます。

2)もう一つは聖の能力です。

사使徒パウロは伝道のために必ず必要な一つをこう言います。

“そして、私のことばと私の宣教とは、説得力のある知恵のことばによって行われたものではなく、御霊と御力の現れでした。”(コリント人への手紙第一2:4)

ここに集まった私たちは、誰かによって説得されここに来た人は誰もいません。それは不可能です。これは否定できないただ聖霊の働きです。聖霊は、福音の言葉を聞く者の心を開いて、信仰を芽生えする能力を持っています。 それで聖書は“説得力のある知恵のことばによって行われたものではなく” つまり人の説得や美しい知恵で信仰が出来る事ではなくただ聖の力で出来たことを言っています。

神様は伝道をこの世で最も愚かな行為と言います。しかし、神様は最も愚かなその伝道を通して魂を救う道具としてご利用になられました。

それゆえ、神はみこころによって、宣のことばの愚かさを通して、信じる者を救おうと定められたのです。”(コリント人への手紙第一1:21)

それでは私たちが伝道のために急いで準備するものは何でしょうか。伝道は、私たちの目に見える敵と戦うことはありません。目に見えない悪霊との戦いです。これが伝道であり、宣教であります。この伝導で、私たちが勝つために福音を持ち、聖霊の力が一緒にする必要があります。 それでパウロは伝道だけではなく聖徒であれば必ずするべきことに対してこのように強く命令しています。

すべての祈りと願いを用いて、どんなときにも御によって祈りなさい。そのためには絶えず目をさましていて、すべての聖徒のために、忍耐の限りをくし、また祈りなさい。”(エペソ人への手紙6:18)

魂の救いは、霊的な戦争としての人間の手間と労力で可能なものではなく、神の霊である聖霊のみ可能です。聖霊の満たし力を得る道は祈り以外の他の方法はありません。私たちが心を合わせて祈ると、神様の霊が強く働きます。サタンの力を無力化させます。悪霊の力が発揮できません。混迷した心霊に命の光を照らして死んだ魂を救います。

今日、私たちは今週中に行う日本短期宣教を準備し、送り礼拝として捧げています。私たちは私たちの前にいる我らの貴重な魂のために祈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神様が繋げて下さったリビングライフ教会のために祈るべきです。特に教会を作った家庭がイエスを信じないのにも関わらず教会を建てました。普段であれば、ありえないことでしょう。ここには特別な神様の働きがあります。そして、私たちは彼らのために心を尽くして祈るべきです。必ず神様は死んだ魂を死から永遠の命を与えて下さる奇跡を起こして下さいます。

この栄光なる福音を神様は私たちに任して下さいました。それのために福音と聖霊を下さいました。我らの優れた言葉も、知識も必要ではありません。自信感も必要ありません。人間的に繋がった全てを切り捨て、その愚かな福音だけを持って、聖霊だけを絶対頼り、従順すると神様がご自身で働き、栄光を捧げられます。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6.07.17]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결말을 본 사람들입니다 (야고보서5:7-11)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결말을 본 사람들입니다

(야고보서5:7-11)

담임목사  장 원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궁극적인 계획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성도들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고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통치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믿고 소망한다는 것은 곧 그 천국을 주시기 위해 다시 오실 주님을 매일 기다리면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여러 주제들이 있습니다. 그 주제들은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하고 그 주제에 따른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성경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의 핵심 주제는 영생입니다. 영생은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가장 많은 언급을 하고 있는 주제는 재물, 돈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많이 언급한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재림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1,845절이 재림에 관한 말씀이고 신약에서는 318절이 재림의 예언입니다. 신구약을 합친다면 재림은 2,100번이 넘게 언급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신앙의 본질인 구원에 관한 내용보다 왜 재물과 재림에 관해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이미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접하는 책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사람들이 성경을 읽다가 구원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경을 읽는 것과 말씀을 듣게 되는 경우는 믿음을 갖고 난 그 이후부터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을 받으라는 메시지보다 받은 구원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지켜 온전한 믿음에 서게 하고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지인 천국까지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물질과 재림을 그렇게 많이 언급했겠습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물질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정복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인생의 유일한 힘으로 삼는 온전한 믿음에 설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 즉 천국에 대한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그 나라에 이를 때까지 뒤돌아보지 않고 그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 인내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라면 재림의 신앙으로 무장해야 하고 재림의 신앙을 가진 자라면 반드시 그날이 임할 때까지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 성경이 재림에 대해 이렇게 많은 내용을 담아 두셨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라면 예수님의 재림이 속히 이 땅에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림을 소망하는 성도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떤 삶의 준비가 있어야 하는지를 바르게 아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그의 서신의 결론 부분에서 아주 중요한 한 주제에 우리 시선을 고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약5:7) 야고보 사도는 두 가지 면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강림 즉 재림이며 또 하나는 이 세상에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인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확증할 수 있는 여러 열매들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인내입니다. 이런 점에 대해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께 합격을 받은 대표적인 한 인물인 욥을 소개합니다.“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다”(약5:11)

 

그렇습니다. 욥의 믿음이 증명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욥의 고난을 끝내십니다. 그리고 불 시험을 통과 한 욥에게 축복의 제2막의 인생을 열어주십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그 온전한 믿음에 섰기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욥의 이 결말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도 현재와 미래에 어떤 시련과 고난이 주어진다고 해도 우리 모두의 인생의 결말, 역사의 결말은 주의 재림과 동시에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에게 열리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까지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인내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야고보 사도는 주님의 재림과 인내로 믿음을 굳게 하며 주님의 재림의 날까지 농부의 마음을 품고 살며, 서로 원망하는 않고, 지속적인 기도와 찬송의 삶을 살고, 진리에 떠나 있는 자를 돌아오게 하는 삶을 살라고 당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개인의 인생의 끝이 어디인지, 이 역사의 끝과 그 이후에 어떤 세상이 펼쳐지는지 그 결말을 다 본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일어나는 그 어떤 두려움에 대해 두려울 것도 없고, 그 어떤 고통스런 일을 만나도 아파할 것도, 그 어떤 억울한 일을 만나도 속상해 할 것도, 가진 것 없어 가난해도, 힘이 없어 무능력 해 보여도 이제 우리는 이 역사의 끝에 이루어질 그 영광과 승리의 날을 기억하며 모든 것을 견디며 인내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을 멋진 인생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공동체

로고스라이프 교회

クリスチャンは、世界の結末を見た人々です。

神様を信じている人々に天国の希望と信仰がなければ、信仰生活は何の意味もありません。神様の世界に向けた最終的な計画は神様を完全に信じている信徒らを介して、新しい天と新しい地を建てて、キリストと共に世界を治めることです。天国を信じて望むということは天国を与えるために再び来られる主を毎日待ち望むことです。

聖書の中で語られる複数の主題があります。この主題は私たちがこの世を生きる間、私たちの信仰を守るために必ず知っておくべきことであり、その主題に従う生活を送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聖書の中で主も多く扱われている題材は何だと思いますか。

聖書の重要な主題は永遠の命です。永遠の命は聖書が私たちに与えた目的です。それにもかかわらず聖書の中で最も多くの言及をしている主題は、富、お金に関するみ言葉です。そして、二番目に多く言及した主題は、イエス・キリストの再臨です。新旧約聖書は再臨の約束で溢れています。旧約では1,845句が再臨に関するみ言葉であり、新約聖書では318句が再臨の預言です。新旧約を合わせた場合の再臨は2,100回以上言及している主題です。

では、聖書は信仰の本質的な救いの内容よりも、なぜ富と再臨について多く言及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聖書はすでに神様を信じる民が接する本です。神様を信じていない人々が聖書を読んで救われる場合もありますが、ほとんどは聖書を読むことやみ言葉を聞くことは信仰を持つようになってからです。では、すでに神様を信じる人々に必要なのは、救いを受けなさいというメッセージより、救われた信仰をどのように継続して全き信仰で人生の究極的な目的地である天まで至るのかということです。ならば、なぜ聖書が富と再臨を沢山言及していますか。世を生きる人間に富は神様の代わりにできる力を持っています。私たちはお金を征服することなく、ただ神様だけを人生の唯一の力とする全き信仰を持つことができません。

もう一つは、全き信仰はイエス・キリストの中で完成されている神様の国、すなわち、天国の約束を信じることです。全き信仰はイエス・キリストの中で約束されたその国に至るまで振り返らず、その目的地に向かって歩いていく人生をいうのです。ここに必ず付いてくるのが忍耐です。真の信仰を持つ信徒であれば、再臨の信仰で武装すべきであり、再臨の信仰を持つ者であれば必ずその日が臨む時まで忍耐し生きるべきです。なぜ聖書は再臨について非常に多くの内容が含まれているのかがその理由の訳です。

では、真の信仰を持つ信徒であれば、イエス様の再臨が早くこの地に臨むように切に望んで生きるべきです。何よりも重要なのは再臨を望む信徒が、この地に住んでいる間

どのような生活の備えが必要なのかを正しく知っておくべきです。そして、ヤコブ使徒は

彼の手紙の結論部分で非常に注目すべき重要な主題を私たちに示しています。「こういうわけですから、兄弟たち。主がられる時まで耐え忍びなさい。」(ヤコブの手紙57

ヤコブ使徒は2つの点を強調しました。一つは、主の降臨、すなわち再臨であり、もう一つは、この世でどのような況の中でも神の約束を信じて最後まで耐え忍ぶことです。私たちの信仰を確証することができるいくつかの実がありますが、その中の一つが忍耐です。忍耐にあってはヤコブ使徒が神様に認められた代表的な人物の中で一人を紹介しています。それはヨブです。

「見なさい。耐え忍んだ人は幸いであると、私たちは考えます。あなた方は、ヨブの忍耐のことを聞いています。また、主が彼になさったことの結末を見たのです。」(ヤコブの手紙5:11

 ヨブの信仰が認められたその瞬間、神様はヨブの苦難を終わらせます。そして火の試練に合格したヨブに祝福の第2幕の人生を開かせてくださいます。ヨブは神様が認めた全き信仰を持ったので、新しい世界を開いてくださったのです。ヤコブ使徒はヨブのこの結末を私たちに語っているのは、現在もしくは将来にどのような試練と苦難が与えられても、人生や歴史の結末は主の再臨と同時に新しい天と新しい地が私たちに開かれることを伝えています。なので、その日まで、私たちの信仰を最後まで守って忍耐することを言われたのです。

最後に、ヤコブの使徒は主の再臨と忍耐で信仰を堅くし、主の再臨の日まで農家の心を抱いて生き、互いに恨むことなく、継続的な祈りと賛美の生活を送り、真理から離れている者を連れ戻すような人生を生きなさいと勧めています。

クリスチャンは人生の終わりがいつなのか、この歴史の終わりとその後にどのような世界が広がるのか、その結末をすべて見た人々です。それでは、我々はこれから起こるどんな恐怖についても恐れることなく、あらゆる痛みに直面しても苦しむことなく、どんな悔しいことに遭っても落ち込むことなく、何も持っていなくて貧しくても、力がなくて無能力に見えても、この歴史の終わりに行われるその栄光と勝利の日を覚えて、すべてのことを耐えて忍耐して喜んで感謝する生活を送る素晴らしい人生を生きましょう。

 

「み言葉きる」ロゴスライフ教会

[2016.07.3]인생은 하나님만을 절대의존 할 때 복됩니다.

담임목사 장 원규

인생은 하나님만을 절대의존 할 때 복됩니다.
세상은 길을 통해 연결되고 목적지까지 이르게 됩니다. 인생도 진리에 이르는 길 있고 그 길을 따라가면 진리 즉 천국에 도달합니다. 길을 알면 아무리 먼 길도, 아무리 복잡한 길도 아무 문제없이 우리가 바라는 목적지까지 도달할 것입니다. 세상은 성공적으로 잘 살아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삶의 방식을 알며 인생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문제를 만나도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선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참된 인생의 길과 삶의 방식을 알려주셨는데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님이 인생의 길이며 또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면 영생이라는 목적지까지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만나도 예수님을 대입시키면 어렵고 힘든 모든 삶의 문제가 풀리고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잘 사는 길과 방식은 아주 간단하고 정확하고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인생 전부를 맡기는 의존적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껏 예수를 믿으며, 목사로 살면서 터득한 가장 중요한 진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살고, 자신이 주인이 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세상에서 승리하고 복을 누리지만, 자기 뜻과 욕심대로 살면 죽음이며 멸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불안과 초조와 걱정과 근심 그리고 고통과 아픔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이유도 그리고 그런 삶 때문에 결국 생명이 아닌 사망으로, 성공이 아닌 실패로,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치닫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지 아니하고, 교만과 욕심에 이끌리어 하나님을 거부하고, 부인하고, 믿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 인생을 조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내 인생을 하나님께 다 맡겨야 하는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로다.”(습3:17)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내 인생 전부를 맡기고 절대 의존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죄의 본질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면 피조물인 인간이 결코 앉아서는 안 되는 주인의 자리에 앉은 것입니다.
지금도 문제투성이인 인생을 살고 있다면, 부족함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고 있다면, 힘들고 고달프고 괴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우리가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인의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보시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다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능치 못하실 것이 전혀 없으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는 정말 믿어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을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만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말씀을 따라 인생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말씀만을 삶의 유일한 방식으로 삼아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나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 하지 않고, 인생의 결정권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 전부 맡기는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큰 은혜를 힘입게 될 것이며 이 땅에서도 천국의 평안을 누리고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멋진 인생을 우리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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